삼국유사 임신본(왼쪽)과 파른본(가운데)에 보이는 ‘환인’ 글꼴. 오른쪽은 고려대장경의 ‘보인(甫因)’ 글꼴. /연세대 박물관 제공
환인(桓因)인가, 환국(桓國)인가. 삼국유사 고조선조는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昔有桓因]'고 서술한다. 그런데 보통 삼국유사 텍스트로 사용되는 임신본(本)의 글꼴은 '桓○'이어서 '환국'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그리고 재야사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고대에 환국(桓國)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연세대 박물관이 간행한 '파른본 삼국유사 교감'은 이런 논란을 종식시킨다. 임신본보다 100년 이상 앞서는 파른본(本)에서 해당 부분의 글꼴은 '桓○'이다. 士는 '大(대)'를 흘려 쓴 것으로, 고려대장경에도 같은 글꼴이 보인다.
'파른본 삼국유사'는 2013년 손보기(1922~2010) 전 연세대 교수의 유족이 연세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파른은 손 교수의 아호이다. 조선 초기인 1394년(태조 3년) 경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왕력(王曆)과 권(卷) 1~5로 이루어진 삼국유사 가운데 앞 절반이 온전히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2015년 보물 제1866호로 지정됐다. 삼국유사 조선초기본은 이전에 학산본, 범어사본, 석남본, 니산본, 조종업본이 알려졌지만 모두 일부분만 남아 있고 빠진 곳도 있어 파른본이 가장 우수하다. 임신본은 조선초기본을 토대로 1512년(중종 7년) 경주에서 간행됐고 여러 판본의 완질이 전해진다.
파른본 삼국유사는 이 밖에도 임신본의 잘못을 여러 곳 바로잡아준다. 임신본은 김춘추의 아버지를 '龍春卓文(1자 결)興葛文王'이라고 했는데 파른본에는 '龍春角干文興葛文王'으로 돼 있다. 삼국사기는 김춘추가 즉위하면서 아버지 용춘을 문흥대왕으로 추봉했다고 했다. 용춘이 원래 갈문왕이었다가 김춘추 즉위 후 대왕으로 추봉됐는지, 아니면 갈문왕으로 추봉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대왕으로 전해진 것인지 따져볼 거리를 파른본이 제공한 것이다. '문호왕법민(文虎王法敏)'조에서 '어인(於人)'으로 해석되던 것이 '여인(旅人)'으로 밝혀지는 등 임신본에서 흐릿하거나 뭉개진 글자가 파른본에 선명한 경우도 많다. 또 파른본은 여러 가지 이체자(異體字)를 사용한 경우가 상당수여서 이체자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교감을 맡은 하일식 연세대 교수(한국고대사)는 "파른본을 통해 임신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로써 번역이 달라지며, 그 결과 삼국시대의 사회상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