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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듣기 힘든 유물이야기 (19)

박물관에서 사라진 유물

인천시립박물관은 본관에만 1만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4개의 분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합한다면 3만점이 훌쩍 넘는다. 박물관은 3만 점이 넘는 유물들을 어떻게 소장하게 되었을까? 박물관이 유물을 소장하게 되는 경로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흔한 방법이 예산을 들여 유물을 구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개인이나 사업자 또는 경매를 통해 구입하기도 한다.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유물을 기증받는 경우도 있고, 발굴 등의 조사과정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수습하기도 한다. 박물관은 유물을 수집하고 이를 보존, 전시하는 기관이지만, 때로는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오는 4월 1일이면 시립박물관이 개관한지 70년이 된다. 개관 당시 364점이었던 소장유물이 100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버린 유물도 있다. 오늘은 70년의 시간 속에 박물관을 떠나간 유물들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 사진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서구청에 옮겨 보관되고 있는 중심성사적비 대석

포격으로 소실된 중심성사적비
1950년 9월 15일 새벽 월미도와 인천 시가를 향해 연합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자유공원 꼭대기를 장식하던 두 양관 건물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개관한지 4년째 접어든 인천시립박물관이었다. 그리고 야외전시장에 서있던 오석 재질의 비석하나도 포탄에 소실되고 말았다. 그 비석의 머리에는 ‘중심성사적비(衆心城事蹟碑)’라 새겨져 있었다.
1949년 7월 7일 인천시립박물관장 이경성은 징매이 고개 마루턱에 서있던 중심성사적비를 자유공원의 박물관 정원으로 이전하였다. 중심성은 1883년 10월 부평부사 박희방을 비롯한 주민들이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계양산 정상에서 맞은편 중구봉까지 일자로 쌓은 석축성이다. 부평부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축조한 성으로 중심성(衆心城)이라는 한자에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쌓은 성’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한 중심성의 축조와 관련된 내용을 비석에 새긴 것이 중심성사적비이다. 비석에는 성을 쌓게 된 경위와 공사감독, 모금액 등이 새겨져 있고, 검은색 오석(烏石) 재질에 크기는 높이 151cm, 폭 36cm, 두께 25cm이며 당시 부평부사 박희방(朴熙房)이 글을 썼다. 인적이 드문 징매이 고개 정상 부근에 문루의 초석과 함께 남아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중심성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라는 자료적 가치가 컸었기에 인천시립박물관 정원으로 옮겨 보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비석을 받쳐주던 대석은 그대로 둔 채 비신만 옮겨졌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의 포격으로 비석은 손실되었지만 대석만큼은 제자리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석마저도 1990년대 초 제자리를 떠나 서구청으로 옮겨졌다.

궁중화원 변상벽, 한종유가 그린 김재로 영정(최근 그의 아들 김치인의 영정으로 밝혀졌다.)

대표 유물이 떠나가다
박물관에 첫 출근 하던 날, 이러저러한 교육을 시켜주던 선배가 서화실에 걸려있던 두 점의 영정을 가리키며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김재로 영정으로 우리 박물관의 대표유물이지요”라고 알려주었다.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사 김재로(金在魯) 선생의 영정은 모두 두 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점은 조선의 궁중화원이었던 변상벽(卞相壁)과 한종유(韓宗裕)가 함께 그린 것이고, 다른 한 점은 김재로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청의 시옥(施玉)이라는 화원이 그린 것이다. 김재로 영정은 1990년 당시 인천에 거주하던 후손이 그가 저술한 책자 등의 유물을 일괄로 기탁한 것으로 기탁기한은 10년이었다. 기탁 당시에 후손은 10년 기한이 끝나면 유물을 모두 인천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시에서는 그 의사를 존중하여 영정 2점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던 것이다.

청나라 화원 시옥이 그린 김재로 영정

그로부터 8년 뒤인 1998년 10월 어느 날 문중의 제사에 선생의 영정을 사용하기 위하여 영정의 일시반환을 요구하는 후손의 부탁이 있었고, 박물관에서는 규정에 따라 3주간의 일시반환을 허가하였다. 반환일이 다가올 무렵 ‘유물감정을 하는 TV프로그램에 역대 최고의 감정가를 기록한 유물이 나왔다’는 뉴스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그 유물이 바로 김재로 영정으로, 제사를 핑계로 하였지만 속내는 감정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후손이 찾아와 영정을 반환하면서 그 감정가에 영정을 매수해 줄 것을 인천시에 요구해왔다. 후손의 사정을 들어보니 딱한 상황에 처해있음은 분명했다. 실수로 선생의 묘가 있는 운연동 일대의 선산이 남에게 넘어가게 되는 상황에서 후손에게는 이를 막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결국 반년 뒤인 1999년 5월 기탁연한을 불과 1년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김재로 선생의 후손은 영정을 비롯한 기탁유물 전체를 반환해갔다. 그리고 한때 시립박물관의 대표유물이었던 그 영정은 지금 서울의 모 사립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심각한 훼손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목조 어선
2000년 6월 장마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직원주차장 앞 야외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던 목조 실치잡이 어선의 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있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 오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대충 육안으로 보기에도 선체를 이루고 있는 목재의 부식이 심각하였고,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인사사고의 우려가 커보였다. 부랴부랴 직원회의를 소집해 목조 어선의 보존처리를 논의했다. 목조 어선의 보존처리에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은 선체의 목재를 최대한 살리는 범위에서 보존하는 것이었고, 이를 염두에 두고 전문업체에 의견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이 목조 어선이 그만한 예산을 들여서 보존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보존가치가 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다.

실치잡이 목조 어선

목조 어선은 충청남도 서산군에서 실치잡이에 투입되던 무동력 어선으로 1960년대 초 만들어진 것을 1990년 12월 극동정유, 삼성화학, 현대화학 등 3개 회사에서 시립박물관에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었다. 구체적인 기증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실시하면서 시행사 측에서 주민들의 폐어선을 헐값에 매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에서는 탈염처리 및 도색 후 목조 어선을 야외전시장에 전시하였는데 보호시설이 없어 상온과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레 부식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차례에 걸친 전문가 회의에서 전통적 조선방식에 따라 건조된 어선이 아니고 이미 상당 부분의 선체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식이 진행되고 있어, 보존처리에 많은 돈을 들이기보다는 차라리 폐기처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에 따라 그해 7월 결국 이 실치잡이 어선은 유물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모든 유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수명이 있기 마련이다. 박물관의 기본 역할 중 하나가 유물이 제 수명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인력, 예산,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기만 했던 시절, 몇몇 유물은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소실되기도 하였다. 이제 항온항습 시설이 갖추어진 수장고는 물론 각종 보존처리 장비를 갖추고 유물의 보존을 전담하는 전문 인력까지 보유할 정도로 질적 성장을 이루었기에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유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