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방색만큼 그 빛깔도 참 다양하다!

어느덧 18년의 시간이 흘렀다. 서이지 교수가 안팎으로 한국을 탐구한 세월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녀의 연구는 멈출 줄 모르는 열정의 현재 진행형. 그 중 13년은 한국에 터전을 두고 온전히 몰입하는 과정을 밟았다. 한국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내일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한국인들에게 진짜 한국을 가르치는 전문가가 됐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한국 문화’에 대해 감탄과 경의를 표하는 그녀의 한국사랑 만큼, 뒷전으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발라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중가요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판소리를 듣고 ‘전통’이 지루하다 얘기하는 경우는 있죠. 다양한 한국 문화 속에서 좋고 싫음의 취향은 존재할 수 있지만 ‘전통’ 전체를 싫다 말하는 건 무관심한 태도예요.”

숭고한 종묘제례악, 역동적이고 신명나는 탈춤, 전문적 능력을 요구하는 판소리, 풍부한 이야기와 퍼포먼스가 집약된 굿, 어느 과정 하나조차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공예품들까지 각각의 매력을 제대로 들여다 보고 나서야 ‘지루함’을 따져봐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다.

“학자가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묻는 건 무의미한 질문이에요. 오히려 외국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의문을 갖고 심도 있게 주제를 들여다볼 수 있죠. 또한 저 같은 경우 외부, 내부에서 한국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한층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했어요.”

연구를 위해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인연을 맺은 공연자들은 서이지 교수에게 더 이상 인터뷰 대상자가 아니다. 마음과 정서를 나누는 벗으로 남았다. 한국 문화도 그녀에게 마찬가지의 의미다.

내일이 더 빛나기 위한 ‘문화 사랑’의 첫 걸음

서이지 교수의 연구 및 수업 명제에는 한계가 없다. 근대사, 한국 문화유산, 민속학, 공연이론, 한류 등 방대하다.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문화 전승과 발전의 발판이라고 서이지교수는 굳게 믿고 있다. 김치와 같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과 유산은 물론 현재 가장 한국인들에게 사랑 받는 문화, 반대로 한국적 문화의 비주류에 속하는 다문화, 여성의 사회적 제약, 노숙자 문제 등도 다각도로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이슬람을 믿는 한국 사람’ 혹은 ‘입양아’, ‘가출 청소년’을 인터뷰하며 ‘한국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왜 한국사람들 한국 문화 사랑하지 않아요? 왜 배우고 싶지 않아요?”

서이지 교수의 마지막 질문은 강렬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절규다. 2004년부터 연구하기 시작한 탈놀이에 대해 집필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탈놀이의 개념 설명보다 보존과 전승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늘과 내일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각종 보존회의 문화사업은 전승은 물론 젊은이들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서이지 교수는 긴급 제안에 나섰다.

“오늘 집에 가서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으세요. 그것은 한국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한 시간의 대화로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한국의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즐거움을 나누세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5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한 가족의 역사를 듣는 동시에 소원하기만 했던 우리의 가족 관계를 풍성하고 끈끈하게 잇는 계기가 될 거라며 숙제를 던졌다.

글‧최용미 사진‧안지섭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