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전통주를 깨우다!

세계식품공정법에 의해 옛 문헌 속 20여 가지 한약재를 모두 되살릴 수는 없었지만 총 12개의 약재로 4년에 걸쳐 현대에 복원된 추성주는 까다로운 전통 제조법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순곡과 약초를 숙성시켜 1차로 발효주를 만든 후, 2번 더 증류를 거치는 복잡한 과정을 고수하고 있는 것. 공을 들인 만큼 추성주의 맑음은 맛 본 사람만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술맛이 어찌나 좋은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라 불리기도 했다. 그 명성만큼이나 추성주의 복원에 난항을 겪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약재’였다. 담그는 제조법도 복잡하지만 각각의 약재가 갖고 있는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그 효능과 풍미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를 덖고, 볶는 과정은 끝없이 이어졌다.

12가지 약초가 들어갔다는 생각에 자칫 쓰고 진한 전통주라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21세기에 다시금 태어난 추성주는 그윽하고 담백하다. 고려 초에 창건된 연동사 스님들이 건강을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로부터 시작된 배경 때문일 것이다. 두충, 구기자, 음양곽, 오미자 등의 약초가 들어가 강장과 혈액순환에 좋아 보양효과가 있으며 해열, 진정, 구충, 고혈압, 당뇨병, 신경통, 동맥경화 등의 성인병 예방 및 염증에도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폭주(暴酒)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술 문화 속에서 전통주가 각광받고 있는 추세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한 잔 그득한 향기로 머물고, 좋은 사람들과 여유에 취할 수 있는 그 길목에 ‘추성주’가 있다.

뿌리부터 열매까지, 자연에 물들다

추성주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가을을 의미한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벼의 물결은 잔 속에서 찰랑이는 추성주를 꼭 빼 닮았다. 약재를 통해 뿌리, 열매, 줄기가 다 들어 있는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맛이 자연스럽고 소박한 음식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추성주를 담그는 양대수 씨의 추천은 죽순회무침이다. 대나무의 고장답게 시원하고 개운한 죽순회무침에 향긋한 추성주가 더해진다면 화룡점정의 주안상이 될 것이다. 쫄깃한 식감에 담백함이 좋은 회 한 점과도 궁합이 그만이라는 추성주. 허영만 작가의 베스트셀러 <식객>에 소개된 젊은 우리 술꾼 류인수 씨는 ‘갈치조림’과도 꼭 한 번 같이 마실 것을 권한다. 강한 양념의 맛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동시에 생선의 부드러움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만 어울릴 쏘냐. 캠핑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그릴에 구워먹는 과일이나 채소가 건강식으로 많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 맥주가 아닌 추성주와 그릴에 구운 채소를 곁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 모두 자연에서 준 그대로의 조화를 보여줄 것이다. 자연이 하나의 열매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계절의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양대수 씨는 한국의 정신 역시 ‘인내’라고 강조한다. 그것을 음식으로 표현한 게 바로 ‘발효’라고. 전통주 또한 기다림의 연속에서 얻어낸 값진 열매인 것이다

글‧윤지선 사진‧안지섭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