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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듣기 힘든 유물이야기 (17)

불법 반출되었다 돌아온 수탈문화재

외국에 살고있는 친구를 방문할 때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도자기를 선물로 준비하여 출국한다면, 아마도 비행기에 오르지도 못하고 보안심사대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될 것이다. 정부에서 문화재보호법 제60조 ‘일반동산문화재 수출 등의 금지’ 조항으로 우리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제정된 1962년 이전까지만 해도 문화재 반출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없었기에 문화재의 해외반출이 무분별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빼돌려진 우리 문화재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 하니 당시 일본은 경제수탈, 인적수탈에 이어 문화재의 수탈까지도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글, 사진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일본인의 정원에 서있던 삼층석탑
지난 2000년 봄, 충남 보령시로부터 문화재반환을 요구하는 공문이 도착했다. 내용인 즉,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일제강점기 보령에서 불법반출된 것이기에 이를 반환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인천부의원을 지냈던 고노 다케노스케[下野竹之助]의 집이었던 송학장(松鶴莊; 지금의 인천역사자료관) 마당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6년 신포동의 공보관 앞으로 옮겨 세웠다가 1990년 시립박물관 이전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삼층석탑

보령시에서 이 석탑의 반환을 요구한 것은 '한국문화재수난사'라는 단행본에 일제강점기 보령에서 무단 반출된 석탑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당시 보령의 향토사학자들이 “석탑의 원 소재지는 보령시 대천면 남곡리이고, 1916년 당시 인천부의원이었던 고노가 자신의 집 정원으로 옮겨간 것”이라는 책의 내용을 토대로 보령시에 민원을 제기했던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인에 의한 우리 문화재의 불법반출 사례를 다루었는데 고노의 석탑반출건은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마침 박물관 자료실에 1949년 당시 이경성 관장이 직원 이현숙씨를 국립박물관으로 보내어 인천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한 문서가 보존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문제의 보령 석탑 밀반출건과 관련하여 1916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에서 작성한 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서는 1916년 6월 5일 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의 사무관 오다 미키치로[小田幹治郞]가 인천 고노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가 작성한 출장복명서와 비밀보고서이다. 문서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박물관에 전시 중인 삼층 석탑은 고노가 보령에서 반출했던 그 석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당시 고노의 집에는 보령뿐 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무단으로 옮겨온 다양한 석물이 정원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하는데 박물관 삼층석탑도 그 중 하나로, 비록 보령에서 반출된 석탑은 아니지만 다른 어딘가에서 무단으로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존심 때문에 반출했던 북관대첩비
박물관 3층 서화실 한켠으로 ‘북관대첩비’ 탁본이 전시되고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鄭文孚) 장군이 의병을 모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을 무찌른 전투를 기록한 전승비이다.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로 1,500자가 새겨져 있는데 1707년(숙종 34)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면에 세웠다.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 제2사단 17여단장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가 일본으로 가져갔고, 그 후 야스쿠니 신사에서 보관되었다. 1978년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이 이를 발견하여 국내학계에 알리면서 반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정부도 수차례에 걸쳐 반환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하다가, 지난 2005년 10월 영구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었고, 이듬해 3월 1일 북한에 인도되어 원래의 자리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북관대첩비 탁본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 비석을 반출했던 것은 일본의 패전을 담고 있는 비석의 내용이 자칫 러시아와의 싸움에 동원될 일본군의 사기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일본으로 반출된 북관대첩비는 한동안 황실에서 보관하다가 전몰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졌다. 지금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탁본은 1946년 박물관 개관당시 러일전쟁 유물과 함께 인천향토관에서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1905년 비석이 일본으로 반출될 때, 탁본해 두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북관대첩비는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때 인천에 살고 있던 누군가가 탁본하여 기념으로 보관하였던 것이다.

짝을 잃고 외로이 돌아온 문인석
1997년 3월 인천청년회의소로부터 유물기증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 내용인 즉,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淸水市] 청년회의소의 회원이 자신의 음식점 마당에 서있는 문인석 1점을 한국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 절차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현지의 감정결과 조선시대 문인석으로 판명되었다고 하며, 동봉해 온 사진으로 보기에도 우리나라의 문인석이 분명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임에 틀림없었다. 인천과는 연관이 없는 유물이었지만,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문인석을 기증받기로 결정하였다. 그 해 4월 26일 기증절차를 마치고 일본에서 돌아온 문인석은 박물관에 입고되었고, 5월 31일 인천청년회의소에서 주최하는 기증식이 진행되었다.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북관대첩비(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문인석은 2m에 달하는 크기로 보아 권세가 꽤 있었던 집안의 무덤에 세웠던 것일 가능성이 높고, 옷의 주름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한 섬세한 조각기법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것으로 보인다. 원래 두 점이 한 쌍을 이루었던 것인데 하나는 어디론가 없어져 버리고 남은 한 점만이 외로이 돌아오게 되었다.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홀로 서있는 문인석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 보이는 것이 그 때문이 아닐까? 마음이 더욱 짠해지는 것은 문인석이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 어떤 이유에서 바다건너 일본까지 흘러가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인석

아직 우리나라에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불법반출 문화재가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 그나마 최근 들어 뜻있는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문화재의 반환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한번 반출된 문화재를 다시 찾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병인양요 때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사례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더 이상 이 땅에서 불법으로 반출되는 문화재가 없도록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