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과 편경

1116년, 고려 예종 11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文公美)가 신악을 가지고 고려로 돌아왔다. 대성부의 아악이라고 해서 ‘대성아악’이라 부르던 이 음악은 당시 송나라 휘종이 새로운 궁궐음악을 창궐해 쓰기 시작한 송의 궁중 의식(제례) 음악이었다.

“…바다를 건너 융숭한 공물을 보낸 간곡한 성의에 대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사례하는 바이오…”.

서신과 함께 휘종은 쇠(金), 돌(石), 실(絲), 대나무(竹), 바가지(匏), 흙(土), 가죽(革), 나무(木) 등 여덟 가지 재료로 만든 수십개 악기와 화려한 의복, 의물들을 보내왔다. 이는 당시 무엇보다 예술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던 송나라 사상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악(雅樂)은 말 그대로 ‘우아한 음악’, ‘바른 음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송나라로부터 대성아악을 건네받은 고려는 기존에 있던 고유 음악인 향악, 당나라 때부터 수입해왔던 당악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음악 아악이 생긴 것이다.

고려 역시 국가의 부강을 위해 이 아악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송나라에서 유교 예악에 따른 새로운 의식 음악이었던 것만큼 우리나라에서 아악은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축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바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 신위를 둔 문묘제례 때 연주되는 ‘문묘제례악’과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제례 때 연주되는 ‘종묘제례악’이다.

편경은 이 두 음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악기다. 종종 연례악에서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특히 엄숙한 제례 음악에서 돌을 재료로 한 편경 소리는 오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음색뿐만 아니라 편경의 외형 역시 보통의 사람 키를 웃돌다 보니, 시각적인 효과 또한 뛰어났다. 독특한 재료로 만들어내는 음색과 크기를 갖춘 편경은 점차 궁궐을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 잡았고, 다른 어떤 악기보다 소중하게 다뤄졌다. 조선 법전 『경국대전』에 “편경을 망가뜨리는 자는 곤장과 유배 3년에 처한다”는 법률이 있을정도였다.

‘편경’, 과학과 미학을 더해 독자적인 우리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편경은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악기로 자리잡게 된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 전반을 새롭게 정립한 세종은 그동안 돌을 구하지 못해 흙을 구운 기와 경을 달아 놓고 사용할 정도로 손상된 편경을 재건할 것을 강조했다. 돌이나 쇠로 만들어 음의 높낮이를 변형할 수 없는 편경이나 편종이 제대로 갖추 어져 있지 않다면,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당연히 조화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세종은 나라 음악 전체를 새로 정비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정확한 음정과 그에 따른 석경 배열, 그리고 궁궐의 상징을 이 악기에 모두 담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악공들은 무미한 나무틀을 화려한 새조각으로, 받침은 목오리로 장식했다. 오리는 뭍에서나 호수에서나 잘 지내고, 하늘까지 난다고 해서 소리를 멀리 전하고자 한 것이며, 부귀와 길상의 상징인 공작, 상서로운 상상 속의 새 봉(鳳), 동전 문양을 엮어 그린 매듭문 칠보, 꿩 꼬리로 장식한 수술 유소(流蘇) 등을 나무틀에 달아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고자 했다.

조선 악서 『악학궤범』에 있는 편경은 석경 수를 제외하고 오늘날 편경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편경과 관련한 기록 중에는 세종이 석경 하나의 미비한 음색까지도 잡아냈다는 일화가 있다. 새로 제작된 편경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12율 가운데 ‘이칙’음을 듣던 세종은 그 음이 약간 높다 하여, 몇 분을 감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말에 악공이 이칙 경을 보니, 실제 먹줄이 조금 남아 있었고, 이를 다 갈아내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음정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한 나라의 군주가 단순히 음악을 권위와 형식적인 상징으로서만 인식하지 않고 음 하나, 곡 하나에도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로써 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그 이면에 깃든 ‘섬세한 깊이’, 그리고 ‘기준’까지도 갖게 된 것이다.

현재와 내일을 살아가는 전통의 소리

편경을 만드는 김현곤 장인(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기능보유자)은 “편경을 제작하는 데에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기품”이라고 말한다. 경 장인과 목조각 장인, 단청 장인이 모여 하나의 악기를 만들어 낼 때 한국적이라는 공동의 감수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한때는 제작법 전승이 끊기고, 악기에 적합한 옥채석에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해 이제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제례 악기로서의 편경 제작법을 배우러 한국을 찾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의 한 대학에서는 석부악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석부악기는 많은 고대 국가들에서 종종 발견된다. 유럽은 돌에서 시작해 인위적인 재료로 변한 악기들을 다시 추적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어쩌면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음악에 담아 귀로 또 눈으로, 마음으로 들어 볼 수 있다면 수천 년 질곡의 세월을 함께해 온 땅의 소리가 조금은 더 가깝게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지않을까.

글‧정우정(음악평론가) 사진‧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출처:월간 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