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박물관 측으로부터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여 점의 유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유물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가슴 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아 전시장 속 유물의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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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12간지 중 신(申)에 해당하는 동물이 원숭이이기에 올해 태어난 아가들은 모두 원숭이띠가 된다. 어렸을 적 자주 불렀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노래가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빠알개, 빨가면 사과’라는 가사가 마치 끝말잇기 하듯 이어지다 마지막에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로 연결되는 이 노래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미있는 가사 때문에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 시절 TV 외화 속 주인공 ‘타잔’을 따라다니던 침팬지 ‘치타’도 온 동네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귀여운 캐릭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원숭이는 어렸던 나에게 다른 무엇보다 친근하고 귀엽게 다가온 동물이었다.
동국무원(東國無猿)
동국무원이라는 말이 있다. 東國(우리나라를 지칭함)에는 원숭이가 없다는 말이다. 침팬지, 고릴라 등 원숭이과의 동물들은 대개 적도를 중심으로 열대와 아열대지방에 분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기후에서는 서식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원숭이 분포지역 중 최북단에 해당하는 곳은 일본이다. 일본 원숭이가 비슷한 기후를 가진 중국 화북지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서식하지 않고 유독 일본에서만 서식하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화산활동으로 온천이 발달한 일본의 지리적 특징이라 설명하고 있다. 어쨌거나 원숭이가 동국무원의 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근한 동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인간과 닮아있는 모습 때문이다. 실제로 원숭이는 인간 못지않은 모성애와 부부애를 가진 동물이라 한다. 국보 제270호로 지정된 ‘청자 모자 원숭이 모양 연적’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청자연적으로 어미 원숭이의 품에 안긴 새끼 원숭이가 한 손을 들어 어미 원숭이의 볼을 만지며 보채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배가 고파 엄마의 볼을 꼬집는 아가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원숭이의 모성애를 표현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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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간송박물관 소장) | |
원숭이의 모성애가 미술품에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다는 의미인 ‘단장(斷腸)’에 얽힌 고사에도 원숭이의 모성애가 등장한다. 중국 남북조시대 진나라의 환온(桓溫)이 초나라를 치기 위해 배로 양자강을 거슬러 오를 때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를 붙잡아 왔다. 이를 본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한 채 강가의 험난한 벼랑을 따라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100여리를 거슬러 오르던 배가 강변에 정박하자 어미 원숭이가 그대로 배에 뛰어올랐지만 곧 죽고 말았다.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었던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은 새끼원숭이를 풀어주고 그 원숭이를 잡아온 병사를 벌주었다. 자식에 대한 원숭이의 사랑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인간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원숭이기에 우리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영리함과 지혜의 상징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영리하고 지혜로운 동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중국의 고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이다.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도와 천축국에 불경을 구하러 가면서 매 순간 닥쳐오는 위험을 영리하고 재치있게 극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깃덩이를 서로 먹기 위해 다투던 이리와 여우가 판결을 부탁하자 원숭이가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는 척하며 결국은 제가 다 먹어 버렸다는 원숭이 재판관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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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원숭이(원주시립박물관 소장)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원숭이를 매우 길한 동물이라 여기기도 했다. 이것은 원숭이를 뜻하는 후(猴)라는 한자와 제후를 뜻하는 후(候)의 발음이 같기 때문으로 원숭이는 곧 높은 벼슬을 의미한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에는 소나무 가지로 두 마리의 게를 잡는 원숭이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이갑(二甲)’은 두 마리의 게를 뜻하는데 ‘甲’은 과거에서의 장원을 가리키는 한자이기도 해서 소과(小科)와 대과(大科)에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리석은, 그리고 응큼한...
원숭이가 지혜와 성공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에서 원숭이는 어리석은 동물로 그려지고 있다. 중국 송나라의 저공(狙公)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먹이인 도토리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어느날 저공이 원숭이들에게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말하자 모두 화를 내며 반발했지만, 곧 말을 바꾸어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좋아했다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고사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 속의 원숭이는 재주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 탈춤에서 원숭이는 응큼한 동물로 묘사된다. 은율탈춤, 봉산탈춤을 비롯한 여러 탈놀음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대사 없이 춤사위로 사람의 흉내만 내고 있는데 한결같이 인간의 외설스럽고 음험한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이른바 양반층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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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율탈춤 원숭이탈
현대, 너비 23cm 높이 25cm
은율탈춤은 황해도 은율군에서 전승되어 온 가면극이다. 6.25전쟁 때 월남한 연희자들에 의해 남한에서 복원되어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원숭이탈은
은율탈춤 제4과장 양반춤에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양반 3명, 새맥시 1명, 말뚝이와 원숭이, 최괄이가 등장한다. 원숭이는 외설스럽고 음험한 표현을 통해 양반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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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김유신묘 12지신상 중 원숭이 탁본(인천시립박물관 소장) | |
수호신 원숭이
원숭이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땅을 지키는 12신장(神將), 또는 12지신의 하나이기도 하다. 12지신은 도교의 영향을 받아 12방위에 해당하는 동물을 신격화 한 것으로, 주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들어 김유신 묘의 호석에 12지신상이 조각되면서 무덤의 하단에 이 신상이 새겨진 호석을 두르는 묘제가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시대 들어 기단부에 12지신상이 조각된 석탑의 양식도 유행하여 이 시기 불교와 도교의 습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난간이나 계단에 12지신상을 조각하여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였고, 특히 원숭이 조각은 궁궐이나 사찰의 지붕 처마 위에 올라 집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잡상 중 하나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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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잡상(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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