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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듣기 힘든 유물이야기 (13)

성냥, 그 화려한 날은 가고...

전시장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박물관 측으로부터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여 점의 유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유물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가슴 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아 전시장 속 유물의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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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집들이에 초대받았을 때, 아주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대개 휴지나 세제 선물을 준비해간다. 새롭게 마련한 집에서 가장 많이 쓰일 것 같은 물건을 선물하는 것이다. 이처럼 새집 살림에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이 집들이 선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 집들이 선물로 각광받았던 품목은 성냥이었다. 성냥은 당시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기도 했지만, 훨훨 타오르는 불꽃을 일으키는 성냥처럼 새로 장만한 집에서 가세를 일으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집들이 선물로 준비해가던 유엔표 팔각성냥

성냥의 도입, 그리고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은 불을 만들어 내는 발화도구로 1827년 영국인 J. 워커가 발명하였다. 그 전에는 부싯돌로 강철에 부딪쳐 그을 때 생기는 불똥을 마른 풀잎에 옮겨 붙여 불을 만들어 썼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어서 한번 만든 불씨는 가급적 꺼트리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불을 만들 수 있는 성냥의 개발은 사람들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에는 1880년 개화파이자 승려였던 이동인이 수신사 김홍집과 함께 일본에서 귀국할 때 이를 가지고 와 처음 소개하였다. 그럼에도 1900년대 초까지 성냥은 매우 비싸고 귀한 물건이어서 일반인들은 여전히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붙여야 했다.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생산한 성냥

성냥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성냥을 생산하면서 부터이다. 1917년 10월 4일 인천부 금곡리 33-2번지에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이 들어섰다. 자본금 50만원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인천 본점 외에도 신의주에 지점 겸 제재소를 두었다는데 여기서는 성냥의 원료가 되는 나무개비를 만들어 인천 공장으로 보냈다고 한다.
성냥공장이 인천에 들어선 것은 경인지역의 폭넓은 시장에 항만과 철도가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을 가진 입지조건 덕분이었다. 이 회사에서는 연간 7만 상자의 성냥을 생산하였으며, 인근으로 성냥갑을 하청 받아 만드는 민가가 500여 호에 달할 정도로 규모나 생산량이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이후에도 성냥 생산을 계속하였지만,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성냥공장이 생겨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1950년대 말 결국 문을 닫고야 말았다.

성냥 전성시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모 방송국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석유곤로가 등장한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가정에서 인덕션이나 가스렌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1980년대 초만 해도 연탄화덕이나 석유곤로가 일반적인 취사도구였다. 이들은 자체 발화장치가 없는 취사도구여서 성냥으로 불을 붙여야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성냥개비가 짧은 탓에 일으킨 불을 신문지나 폐지 등의 불쏘시개에 옮겨 붙여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난방도구로 각광받고 있었던 연탄보일러나 연탄난로, 석유난로 등의 경우도 성냥을 이용한 이 같은 방법을 사용했었다.

1980년대의 석유곤로

이 시기 성냥 이외에 불을 일으키는 도구로 라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금속케이스의 비싼 물건인데다 석유를 원료로 사용했기에 단순한 발화도구로 사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멋쟁이 신사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할 장신구로 여겨졌다. 1970년대 말 플라스틱 용기의 저가형 가스라이터가 보급되기 전까지 성냥은 일반 가정에서 불을 붙일 때 반드시 필요했던 생활필수품이었다.

성냥이 폭넓게 보급되다 보니 성냥개비는 단순히 불을 붙이는 용도뿐 아니라,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음식점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성냥개비는 이쑤시개의 대용품이었으며, 귀가 가려울 때면 귀이개 대신 성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성냥개비 탑을 쌓으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고, 신문에는 성냥개비를 활용한 퀴즈가 연재되었다. 성냥을 안에서 바깥으로 긋느냐, 바깥에서 안으로 긋느냐에 따라 성격풀이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 언제나 필요했고, 누구나 소지해야 했던 이른바 성냥의 전성시대였던 것이다.

1959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오락싸롱 성냥놀이'

홍보수단으로 사용했던 성냥갑
성냥이 폭넓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보관하던 용기, 즉 성냥갑은 기업이나 상점의 홍보를 위한 판촉물로 자주 활용되었다. 성냥갑을 이용한 홍보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는데, 주로 남성들이 자주 찾았던 카페나 주점에서 홍보용 성냥을 많이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담뱃불을 붙이는 데 필요했던 성냥은 주로 남자들이 소지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즐겨 찾는 카페나 주점의 홍보용 판촉물로 그만한 것이 없었다. 지금도 노래방이나 주점에서 가장 많이 제공하는 판촉물이 1회용 가스라이터임을 보면, 시간이 흐르고 내용물이 바뀌었어도 담뱃불을 붙이는데 필요한 발화도구는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효과적인 판촉물이 아닌가 싶다.

▲월미도 조탕 홍보용 성냥갑

그러다보니 성냥에 얽힌 웃지 못할 사건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법정에서 최초로 다루어진 음란물에 관한 재판이 바로 성냥갑과 관련된 것이다. 1969년 부산의 성냥 제조회사인 유연화학공업사는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나체의 마야’라는 작품을 인쇄하여 성냥갑에 넣어 팔았다. 당시 금액으로 한갑 당 25원이던 성냥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부산지검은 이 회사에 음화제조 및 판매죄를 적용하여 약식 기소하였고, 부산지방법원과 대법원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성냥이 주로 남성들의 소지품이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1970~80년대에는 판촉용 성냥수집의 붐이 일었던 적도 있다. 다방이나 카페에서 얻어온 성냥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취미가 생겨난 것이다. 성냥갑을 그냥 모아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날그날의 에피소드를 성냥갑에 적어서 보관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에피소드가 적힌 성냥갑은 이제 하나의 기록물로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동아일보 인천주안지국에서 만든 홍보용 성냥

2013년 11월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성냥공장인 경북 의성군의 성광성냥공업사가 문을 닫았다. 성광성냥공업사는 1954년 2월 8일 개업하여 ‘향로’라는 상표의 성냥을 제조, 판매해 온 회사로 폐업 다섯 달 전 경북도지사가 지정하는 경상북도 산업유산에 지정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극심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고 만 것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성냥공장이 단 한군데도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아날로그 방식의 성냥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온 국민의 생활필수품이었던 성냥이었던 만큼 성냥을 만들어내는 공장 하나정도는 남겨 두어야 하지 않을까?

▲월미도 카페 에버그린 홍보용 성냥갑
1988년, 가로 5.7cm 세로 2.7cm
1980년대 후반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 있었던 카페 '에버그린(Evergreen)'의 홍보용 성냥갑이다. 1988년 대학에 입학한 어느 청년이 1987년 12월부터 1990년 중방까지 인천과 서울의 다방, 커피숍의 성냥갑에 그날그날의 일들을 메모로 남겨놓았는데 2012년 인천시립박물관에 일괄 기증하였다. 이 성냥갑에는 “88.1.22 PM. 2:30~9:30 월미도에서. coffee와 빵, 우유, 파도소리, 그리고 창밖의 눈! 영미와.”라는 내용의 손글씨가 기록되어 있다. 기증가자 61개의 성냥가에 남긴 기록들은 1980년대 후반을 살았던 청춘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