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전 애니·미대 전공 살려 외부 전문가 도움 없이 제작 "270년간 스님들이 지킨 유산… 3000여장 그리며 힘들었지만 온 마음 담아내 뿌듯합니다"
시작은 차(茶)를 마시다 우연히 나온 "우리도 한 번 해볼까?" 였다. 그리고 1년 만에 비구니 스님들만의 힘으로 10분짜리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 경북 김천의 비구니 사찰 청암사(주지 상덕 스님)는 남한산성 축성(築城)과 수성(守城)에 얽힌 스님들의 노고를 그린 '남한산성의 소리'를 완성, 14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리는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서 공개한다.
"작년에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남한산성을 스님들이 지었고, 병자호란과 그 이후에도 270년 동안 스님들이 지켰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너무나 많더군요. 불자(佛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쉽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떠올린 거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상덕 스님)
외부 전문가의 도움 없이 애니메이션‘남한산성의 소리’를 만든 김천 청암사 비구니 스님들이 10일 편집과 더빙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고운호 객원기자
스님들이 직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들은 해냈다. 애니메이션 창작이 가능했던 것은 청암사 승가대에 출가 전 다양한 전공을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 청암사는 일찍이 태블릿PC를 강의에 활용하는 등 '스마트 캠퍼스'에 앞장섰고, 조계종 교육원이 주최한 '염불시연대회'와 '외국어스피치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등 열정 넘치는 학인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드림팀이 꾸며졌다. 애니메이션 전공자인 혜전 스님은 총감독, 잡지 편집을 해본 혜범 스님(3학년)은 시나리오, 미대 출신 2학년 범준 스님과 덕인 스님은 그림을 맡았다. 청암사 승가대학장 지형 스님은 "우리는 출가 전 특기와 전공을 살리도록 권한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의 얼개는 작년 10개월간 진행된 정동주씨의 '조선불교탄압사' 강의를 바탕으로 짰다. 인조 2년(1624)에 시작돼 3년간 계속된 남한산성 축성에 조선 조정은 전국의 스님들을 동원했다. 품삯과 식량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공짜 노동력이었기 때문. 그뿐 아니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스님들은 승군으로 동원됐고, 270년간 남한산성 수비에 동원됐다. 주인공 '국행 스님'의 일생에 남한산성의 역사를 오버랩시키는 스토리다. 산신령과 귀여운 호랑이 캐릭터도 등장한다.
작업은 속세의 표현으로 '열정 페이'였다. 특히 그림을 맡은 범준 스님은 1년간 겨울방학, 봄방학, 여름방학을 모두 반납하고 3000여장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뿌듯함은 그득한 듯했다. 범준 스님은 "방학을 통째로 바쳤지만 저에겐 큰 불사(佛事)였다 "고 했고, 혜범 스님은 "온 마음을 담았다는 것만 전달됐으면 한다. 저희에게는 남한산성을 짓고 지키다 입적한 스님들에게 올리는 천도재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스님들은 애니메이션에 중국어 자막도 달았다. 이유를 묻자 스님들은 "우린 '왜'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해야 할 것 같으면 그냥 해요"라며 웃었다. 무모할 정도의 순수함이 만든 작품이란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