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부터 현대까지 총망라 176점, 국내 환경 적응 위해 수장고에서 48시간 뒤 개봉 렘브란트·마티스·피카소 등 주옥같은 名畵도 대거 전시
런던을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온 수천년 전 인류 문화유산이 서울에 도착했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실. 나무 상자가 하나씩 열릴 때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유럽, 인도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년의 시공을 넘나드는 인류사 보물들이 포장을 풀고 제자리를 찾았다.
영국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유물 운반 책임자인 니나 해리슨씨 등 6명이 126㎏에 달하는 대리석상을 조심스레 꺼냈다. 로마의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두상이었다. 굽이치는 곱슬머리와 턱수염, 베일을 쓴 황제의 근엄한 얼굴이 드러났다. 운반 과정에서 흠이 생기진 않았는지 돋보기로 확인하던 이들이 "Great(완벽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유물은 조선일보사가 창간 95주년을 기념해 12월 11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개최하는 대영박물관전(展) '영원한 인간(Human Image)'에 나온다. 인류 역사상 영원불멸의 주제인 '인간의 얼굴'을 주제로 대영박물관의 방대한 소장품 중 최고 작품 176점을 엄선한 전시다. 얼굴로 보는 인류의 거대한 역사가 전시장에 펼쳐진다.
大英박물관 보물 176점 한국에 왔다 - 세계 최대의 문명사 박물관인 영국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보물이 한국에 왔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로마의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대리석 두상이 늠름한 모습을 드러냈다. 대영박물관 유물 운반 담당자들이 포장 상자에서 유물을 꺼낸 후 조심조심 확인하고 있다. 조선일보사가 창간 95주년을 기념해 개최하는 대영박물관전(展) ‘영원한 인간(Human Image)’은 12월 11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린다. 인류 역사상 영원불멸의 주제인 ‘인간의 얼굴’을 주제로 대영박물관의 방대한 소장품 중 최고 작품 176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이태경 기자
지난 26일 오후 2시 45분 1차 유물 154점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데 이어 다음 날 나머지 22점이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유물 해포(解包·유물의 포장을 벗기고 전시하는 일) 작업은 주말부터 시작됐다. 갑자기 포장을 뜯으면 수천 년 세월을 견딘 유물에 탈이 날지도 몰라 48시간 이상 상자 속에서 '현지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한다. 유물들은 섭씨 16~20도, 습도 40~50%가 유지되는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날 한쪽에서는 이집트 시대의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 여신의 좌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반 담당자들이 포장 박스에서 유물을 조심스레 꺼냈다. 폴리우레탄 폼에 겹겹이 싸여 있던 이시스 여신의 자태가 공개되는 순간, 얕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비로운 모성(母性)의 화신인 이시스가 옥좌에 앉아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젖을 먹이고 있다. 부드러운 장갑을 낀 그들은 어린아이 다루듯 작품을 살포시 올려놓으며 서류와 사진을 가지고 꼼꼼히 대조 작업을 했다.
(사진 왼쪽)젖 먹이는 이시스 여신 - 대영박물관 유물 운반 담당자가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 여신의 좌상’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950㎏짜리 석상 - 인간의 몸에 암사자의 머리를 한 이집트의 ‘세크메트 좌상’. 무게 950㎏의 이 거대 석상을 받침대 위에 올리는 데 무려 6명이 매달렸다. /이태경 기자
전시장 안쪽에서는 또 다른 담당자가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며 포장 박스를 열었다. 이집트의 '여인의 초상'을 담당한 알렉스 트러스콧씨는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이라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바스러질 정도로 유물이 약하다"고 설명했다. 렘브란트, 뒤러, 마티스, 피카소 등 서양 회화사의 주옥같은 작품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아시리아 궁전의 벽면을 장식했던 '아시리아 왕의 사자 사냥 부조', 이집트 여인의 '미라 관' 등 유물이 폴리우레탄 폼, 부드러운 특수 천 등으로 꼼꼼히 포장된 채 해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트러스콧씨는 "진열장 안에 조습제를 넣고 습도 40%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아름다움·개인·신·권력·변신·사랑 등 6개 테마로 구성됐다. 8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석고를 바른 두개골'부터 아폴로 두상 등 대영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장르도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현대 조각, 회화까지 다양하다. 특히 한국 관람객이 좋아하는 이집트 유물이 13점 출품됐다. 르네상스 3대 화가 중 하나인 라파엘로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드로잉, 독일의 초상화 대가 뒤러의 '남자의 초상', 입체파 거장 피카소의 동판화 '스튜디오에서' 등 회화 작품도 대거 전시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는 유물장이 없기 때문에 이번 전시를 위해 유물장 25개를 특별히 제작했다. 유물장 제작에만 4억원이 들었다. 홈페이지 humanimage.co.kr 예매 문의 (02)724-6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