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박물관 측으로부터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여 점의 유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유물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가슴 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아 전시장 속 유물의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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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킹콩의 대역습’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헐리웃에서 몇 차례 리메이크된 ‘킹콩’이 아니라 고 이낙훈씨가 주연을 맡은 한미합작영화로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3D 기법으로 제작된 입체영화였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라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킹콩이 집어던진 헬리콥터가 눈앞으로 날아오는 것 같아 깜짝 놀랐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와 같이 입체는 평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신기함과 생생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입체를 인식하고, 또 즐겨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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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1976.7.21)에 실린 영화 킹콩의 대역습 광고 | |
평면을 3차원으로 표현한 그림, 책가도
최근 세계적인 명화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트릭아트(trick art)’라는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는 효과를 빛의 조절, 반사 등 과학적 원리에 접목시켜 평면에 그려진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전통시대 우리 미술에도 이처럼 평면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었다. 책가도(冊架圖) 또는 책거리도라 불리는 이 그림은 책꽂이를 배경으로 서책, 문방구 등이 진열된 모습을 그린 것으로 18세기 후반 정조가 문치(文治)를 표방하면서 궁중 화원(畵員)들이 국왕의 의도를 적극 반영하여 완성된 것이다.
초기의 책가도는 사방탁자 형태의 커다란 서가 속에 서책을 중심으로 학문과 관련된 기물을 그려 넣은 유형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서가가 생략된 그림이 많아졌다. 아울러 학문과는 관련 없는 다양한 기물을 책과 함께 잡다하게 그려 넣는 양식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그림을 그린 주체가 달라진데서 기인하는데 초기의 그림은 대부분 궁중 화원들이 서양에서 도입된 투시화법과 명암법을 사용해 그린 것으로 고도의 사실감을 갖는다. 그에 비해 민간에서 그린 책가도는 투시의 규칙이 완전히 무너져 서책이나 사물의 앞면은 작게, 뒷면은 보다 크게 그리는 역원근법(逆遠近法)이 사용되었다. 이는 마치 책이 주체가 되어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책을 숭상하는 당시 유교사회의 전통과 토속 신앙이 어울려 독특한 그림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그려진 책가도는 평면에 익숙해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실물과 같은 입체적 사실감으로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입체를 즐기다, 스테레오 카메라와 입체경
책가도가 평면에 그려진 그림을 왜곡시켜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면, 개항이후 유입된 스테레오 카메라와 입체경은 과학적 원리에 따라 사물을 입체로 인식시켰던 기계장치였다. 사람의 두 눈은 사물을 입체로 바라보고 원근을 판단하는데,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여 만든 것이 입체 카메라이다.
사람의 두 눈간 간격은 대체로 6~7cm 정도이기 때문에 스테레오 카메라에도 두 개의 촬영용 렌즈가 7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두 개의 렌즈는 초점과 노출의 조절, 그리고 셔터의 작동이 서로 연동되어 하나의 피사체를 동일한 조건에서 촬영하도록 설계되었다. 렌즈가 두 개 달렸다고 해서 양안식(兩眼式) 카메라 또는 스테레오 카메라(stereoscopic camera)라고도 부르는데 1838년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 발명하고, 1849년 데이빗 브루스터(David Brewster)가 상품으로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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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Ica AG 카메라 회사에서 제작한 스테레오 카메라
입체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장면은 두 개의 사진이 나란히 배열된 형태로 인화된다. 한 장의 인화지에 동일한 두 사진이 인화된 것 같지만, 입체경을 통해 보면 하나의 입체적인 장면으로 보인다.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 또는 스테레오뷰어(stereoviewer) 등으로도 불리는 이 장치는 근대기 가장 인기있는 즐길 거리 중 하나였으며, 수백 만 장의 입체사진이 생산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이 발달하고 그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입체경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1950년에 이르러서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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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미국 Keystone view company에서 제작한 입체경
입체로 찍힌 근대의 인천
입체경의 인기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19세기 말부터 우리나라를 여행했던 외국인들은 이색적인 조선의 풍경을 스테레오 카메라로 찍었으며, 이를 입체경으로 즐겨보았다. 비교적 일찍 서구세계에 알려진 중국, 일본과 달리 조선은 개항 이후에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으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탐험가와 여행가들은 조선에 대한 여행기를 책으로 출판하기 시작했고, 생소한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책에 수록하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조선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자 입체경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던 기업과 사진작가들이 조선의 모습을 입체사진으로 제작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조선의 관문이었던 인천은 처음 발을 디딘 곳이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로 인천사람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그 촬영 대상이 되었다. 개화기 서구인들이 남긴 인천의 입체사진에는 사진작가의 이름과 발행기업의 표기는 물론 건물이름과 방위를 포함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인천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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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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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의 큰 거리
2010년 3D로 제작된 영화 ‘아바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우리는 이른바 3D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D 기능이 추가된 TV가 보편화되어 안방에서도 입체영상으로 축구경기를 시청할 수 있고, 이제는 3D 프린터로 만든 제품이 상용화되고 있다. 평면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신기함과 호기심에서 시작된 입체의 발견이 가져온 과학과 역사의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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