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신동엽 가옥 터와 문학관
향그러운 흙가슴으로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中 -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조용히 읊어 본다. 작게 읊조리던 소리는 점점 힘 있는 큰 소리로 바뀐다. 어떠한 배경지식 없이 읽더라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 시는 신동엽 시인의 대표 시다. 신동엽 시인은 이 시에서 4·19혁명의 민주화 열망이나, 동학농민혁명의 순수한 민중적 열정이 퇴색해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읽는 이에게 순수한 민족정신을 되찾자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신동엽 시인은 193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를 개인에 한정하지 않았다. 늘 민족과 국가를 생각했고, 비극적 현실을 질타하면서 미래를 낙관했다.
부여 신동엽 가옥 터(등록문화재 제339호)에 파란 기와집이 복원돼 있다. 사실, 신동엽 시인이 태어나 자라고 신혼을 보낸 생가는 초가집이었다. 1985년에 부인 인병선 시인이 초가집으로 복원했고 지금 모습은 기와집이다. 처음 모습을 간직하지 않은 생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다가, 신동엽 시인이 보고 자랐을 생가지 주변 모습을 주의 깊게 둘러본다. 가옥 터는 주택가 한 골목에 있다. 예전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에는 복원해 놓은 생가만 덩그러니 있어,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2013년 5월, 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신동엽 문학관이 들어선 것이다.
가옥 터에 난 통로를 따라 신동엽 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동엽 문학관에 들어가자마자 반겨주는 것은 신동엽 시인의 동상. 펜을 쥐어든 손과, 무언가 결의하는 듯한 얼굴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 전시는 신동엽 시인의 일대기와 함께 다양한 전시품으로 구성했다. 신동엽 시인의 일대기, 시 세계는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형성됐다. 특히 4·19혁명은 신동엽 시인의 시 세계를 좌우했다. 4·19혁명이 일어나자, 신동엽 시인은 《학생혁명시집》을 엮었다. 그의 대표작인 <껍데기는 가라>, <산에 언덕에>에서도 4·19혁명을 읽어낼 수 있다. 신동엽 시인은 시에서 암담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다가올 미래만은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
- 신동엽 <산에 언덕에> 中 -

신동엽 문학관은 큰 규모는 아니다. 그렇지만 신동엽 시인의 흔적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신동엽 시인이 지녔던 물건, 그가 읽었던 책들, 육필 원고, 사진 등 전시품 사이에 편지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부인 인병선 시인에게 보낸 편지다. 한자를 섞어 쓴 편지의 글씨체가 다정하다. 남성적 어조의 시를 많이 남긴 것과는 다른 인상이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쓰디쓴 미래지향적 의지를 시로 남긴 신동엽 시인. 그 역시 누군가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가옥 터와 신동엽 문학관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신동엽 문학관을 나오는 길, 그의 시 세계가 발목을 잠시 붙든다. 문학관에서 나오면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떠올린다. 신동엽 시인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계속 혁명을 외치고 있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中 -

- 영동 농민문학기념관
농촌 가까이 농민문학을 기념하다

영동 농민문학기념관이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노천리 버스정류장 뒤의 큰 느티나무는 600년 시간 동안 마을을 지켜봤다. 우직하게 마을을 지켜보며 마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느티나무. 농민문학기념관으로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느티나무가 반갑다. 한 그루 느티나무에서 농민과 농촌의 문제, 현실을 다뤘던 농민문학의 존재를 읽어낸다.
농민문학기념관은 흔히 상상하는 문학관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어느 노 작가의 작업실이라고하면 딱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입구에 농민문학기념관이라는 작은 표지판마저 없었다면, 이곳이 문학관임을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농민문학기념관은 2층 주택에 꾸몄다. 소설가이자 교수로 활동한 이동희 작가가 자신이 하나 둘모아 온 농민문학 관련 자료로 만든 문학관이다.
이동희 작가는 <땅과 흙>으로 1회 무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농민문학기념관은 작지만 문학관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 농민소설가와 향토 시인의 작품 자료, 충북 영동 지역작가의 작품 자료, 농민문학기념관을 만든 이동희 작가의 작품 자료 이렇게 세 테마로 전시를 구성했다. <제1과 제1장>으로 유명한 이무영 작가, <빈농>의 유승규 작가, <방아골 혁명>의 오유권 작가 등 농민문학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의 작품 자료를 볼 수 있다. 2층 발코니 한 벽면에 이들의 액자 흉상이 걸려 있다. 재치 있는 웃음을 지닌 이무영 작가의 얼굴이 정겹다.

2층 한쪽에 전시한 북한 단행본, 잡지도 눈길을 끈다. 꺼내 보고 싶은 자료가 있으면 허락을 받고 볼 수 있다. 다른 문학관과 달리 전시 상자가 없는 만큼 전시품을 더 가까이 자세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주의도 필요하다.
농민문학기념관은 주택에 만든 것이라 다른 문학관들보다 크기가 작다. 그만큼 전시가 오밀조밀하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천천히 둘러보아야 농민문학기념관의 참맛을 느끼고, 재미있는 전시품들을 볼 수 있다. 작가들 손길이 직접 닿은 수첩, 필기도구 등도 농민문학기념관의 소중한 자료다.
농민문학기념관은 현재,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아직 정리하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다. 안내해 준 우명환 관장의 말에 따르면, 책 무게가 엄청나, 2층 바닥이 기울었다고 한다. 그랬을 정도니, 개인이 모은 자료라고 하기에 그 양이 방대하다.
마당에 제멋대로 자란 풀들은 방치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둔 것이다. 한쪽에 대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자세히 바라보면 뒤편으로 오죽이 보인다. 대체로 문을 열고 있지만, 혹시 모르니 먼 발걸음 헛되지 않도록 먼저 전화하고 찾아가는 것이 좋다.

- 대전문학관
대전 대표문인 5인을 만나다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한국전력공사 방면으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대전문학관이 나온다. 대전문학관은 대전을 대표하는, 대전에서 유일한 문학관이다. 흔히 문학관이라고 하면 작가 중심 문학관을 떠올리기 쉽지만 대전문학관의 테마는 조금 특별하다.
개관 전, 개관준비위원회를 꾸려 대전 대표문인 5인(운문: 박용래·정훈·한성기, 산문: 권선근·최상규)을 선정했다. 근현대 시기 활동한 문인, 1950년대 이후 등단해 활동한 문인, 작고 문인 등의 기준을 정해 선정했다. 상설전시실 전시는 이렇게 선정한 대전 대표문인 5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대전문학의 뿌리, 대전의 현대문학사, 대전문학 현황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전시 내용 중 가장 주목할 건, 박용래 시인에 관한 전시다. 1925년 논산에서 출생한 박용래 시인은 1948년 보문중학교 교사로 전근하며 대전에서의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55년에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 선생의 추천을 받았고, 이듬해 <황토길>, <땅>으로 3회 추천을 완료했다. 그리고 1969년 첫 시집 《싸락눈》을 한국시인협회 주관 오늘의 한국시인선집으로 출간하고, 시 <저녁눈>으로 《현대시학》사 제정 제1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1980년 심장마비로 작고할 때까지, 박용래 시인은 《강아지풀》, 《백발(白髮)의 꽃대궁》 등 시집을 통해 다양한 시를 세상에 내놓았다.
박용래 시인은 독창적이면서 향토적이었다.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해 압축의 묘미를 살리는가 하면, 사라져 가는 것에 관한 애틋한 정서를 작품에 담곤 했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저녁눈> 中-

이러한 박용래 시인의 시 세계를 잘 반영한 작품이 바로 <저녁눈>이다. ‘소묘법(素描法)’이라는 표현 방법과 반복, 병렬에 의한 민요적 구조를 통해 독창적 시 세계를 개척한 천재 시인. 한편으로는 ‘눈물의 시인’이라 불릴 만큼 자연주의적 서정 세계를 개척한 대전 대표 향토시인 박용래. 그가 사라져 가는 것에 애틋한 정서를 담았듯,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사라진 그를 추억해본다.
박용래 시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대전문학관에서는 현재 상설전시실과 더불어 꾸준히 새로운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토요일은 문학과 놀자’, ‘시낭송회’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