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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듣기 힘든 유물이야기(7)

박물관에 보관된 중국유물

전시장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박물관 측으로부터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여 점의 유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유물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가슴 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아 전시장 속 유물의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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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지난 9월 박물관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어설픈 한국어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중국 신화통신의 기자였다. 사연인 즉 한국인 기자에게 인천시립박물관에 중국의 범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취재에 응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어찌하다보니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는데 기자는 박물관 옆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자주 왔지만, 여기에 중국의 범종이 전시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하였다. 얼마 뒤 범종들이 박물관에 보관된 사연을 듣고 난 후 중국 범종을 바라보는 기자의 모습은 자못 숙연하기까지 하였다. 박물관에 보관된 중국 범종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중국 범종

일본육군 인천조병창
부평구 산곡3동 현대아파트 동쪽으로 캠프마켓이라 불리는 미군 군수기지가 있다. 이곳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전 일본군의 무기를 제작하던 조병창이 들어서 있었다. 일본육군조병창의 역사는 1879년 10월 화포무기의 제조를 위하여 설치된 포병공창에서 시작된다. 일본육군의 포병공창은 동경에 본부를 두고 오사카에 지창을 두었다. 1923년 3월 그 명칭을 일본육군조병창으로 고쳐 본부를 동경에 두고 오사카와 나고야에 각각 조병창을 건립하는 한편, 고쿠라와 평양에 병기제조소를 두었다. 조병창에서는 병기의 고안, 설계, 제작을 담당하였고, 병기제조소에서는 군도(軍刀), 소총 등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1932년 고쿠라병기제조소를 고쿠라조병창으로 승격시켰고, 중일전쟁 직후인 1938년 만주의 봉천(奉川;지금의 심양)에 남만주조병창을 신설하였다.

인천육군조병창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병기와 군수품의 보급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일본육군은 무기공장인 조병창을 증설하였고, 그 일환으로 부평의 인천육군조병창이 만들어졌다. 실제 부평지역에 조병창이 건설되었던 것은 1939년경이지만, 일본육군에서 인천육군조병창이라는 조직을 만든 것은 1940년 4월로, 이때부터 부평의 조병창에서 무기가 생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천육군조병창에서는 매달 소총 4000정과 총검 2만정, 소총 탄환 70만발, 포탄 3만발, 군도 2000정, 차량 200량 등을 생산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의 전쟁 물자를 조달했던 대표적인 병기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조병창의 주 영역은 부평1동 동아아파트, 대림아파트, 욱일아파트에서 산곡동의 우성아파트에 이르는 36만여 평이었고, 자재 적재소로 사용되었던 산곡동 현대아파트 부지까지 포함한다면 40만평에 달하는 규모였다.

개관 초기 인천시립박물관 정원에 옮겨진 중국범종

무기를 만들기 위해 쌓여있던 쇠붙이들
부평조병창이라 불리던 인천육군조병창에서는 주로 소총과 총검, 탄환 등의 경화기를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규모가 작은 화기라 하더라도 월별 생산량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양의 쇠붙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일본육군에서는 무기를 만들기 위한 금속류를 일본 본토는 물론 식민지였던 조선과 괴뢰정부가 들어서 있던 중국 전역으로부터 공출하였다. 일반 가정의 식기류를 비롯하여 학교에 세웠던 동상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화재까지 쇠붙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거두어 들였다. 이렇게 모은 쇠붙이를 녹여 불순물을 제거한 뒤 무기를 생산했던 것이다.

▲원대철제범종(元代鐵製梵鐘)
1298년, 높이 230cm 지름 153cm
중국 원 성종 3년(1298)에 중국 하남성 안양현(지금의 안양시)에서 주조된 종이다. 종의 윗부분인 종뉴(鍾鈕)는 두 마리의 용이 배부분에서 얽히어 서로 앞으로 향해 포효하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용뉴로부터 종 어깨에 걸쳐 당초무늬가 표현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8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몸통 상단에는 일정하게 구분한 사각형 안에 '황제만세 중신천추(皇帝萬歲重臣千秋)'의 큰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옆과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한 줄에 최대 15자씩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해방 직후 미군이 이곳에 주둔하기 전, 조병창에는 일본군이 미처 무기로 만들지 못하고 쌓아놓은 쇠붙이 속에 문화재가 섞여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인천시립박물관 초대관장으로 부임한 이경성의 회고에 따르면 부임 직후에 이 소식을 듣고 부평의 조병창에 가보니 쇠붙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다. 몇날며칠을 뒤진 끝에 이경성 관장은 미군 트럭을 빌려 쇠붙이 속에 섞여있던 철제범종을 비롯한 중국 유물을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일본군에 이어 이곳에 주둔했던 미군기지들이 하나둘 떠나간 자리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섰는데 건설 공사 도중에도 상당양의 중국 동전들이 발견되어 박물관에 인수되기도 하였다.

어디서 온 유물일까?
1945년 겨울 이경성 관장이 부평 조병창에서 인수해온 중국 유물은 모두 7점이다. 중국 원대와 송대, 그리고 명대에 각각 만들어진 철제범종 3점과 명대관음보살좌상, 동물모양 대포, 청동향로 2점이다. 향로 2점을 제외하곤 모두 명문이 남아 있어 이 유물들이 중국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유물에 남겨진 명문에 따르면 철제범종 3점과 동물모양 대포는 하남성에서 관음보살좌상은 산서성에서 주조된 것이다. 하남성과 산서성은 중국 화북지방에 위치하며, 특히 하남성은 일제강점기 인천과 뱃길로 연결되었던 산동성의 서남부와 맞닿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중국의 봉천지역에 남만주육군조병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유물들이 바다건너 부평조병창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이 유물들이 화북지방에서 인천까지 철도로 운송되었는지 선박으로 운송되었는지, 그리고 굳이 운송이 편리한 남만주조병창이 아닌 인천의 부평조병창으로 옮겨졌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나 중국 모두 당시 일본의 전쟁수행에 강압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이다.

늦은 여름 박물관을 찾은 중국 기자의 마지막 멘트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세 개의 범종을 앞에 두니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하였다. 지금 인천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아픔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박물관 정원에 남겨진 이 유물들만이 여행객에게 지나간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듯 하다. 서로 같은 역사의 상처를 지닌 한국과 중국 국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역사적 무게는 똑같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청대수형대포(淸代獸形大砲)
1861년, 길이 125cm 지름 81cm
중국 청나라 함풍 11년(1861) 여름 하남성 개봉지역에서 만들어진 동물모양 대포로서 구경에 비해 포신이 짧아 위력이나 조준에 신경쓰지 않은 포로서 실전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기 보다는 신호용이나 의식용 예포(禮砲)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표현된 동물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로 보인다. 동물의 복부 아래에 붙어 있는 걸이형 장치를 통해 원래는 포가(砲架)에 걸어서 바퀴로 끄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관음보살좌상(靑銅觀音菩薩坐像)
중국 명대, 높이 67cm 너비 44cm
중국 명나라 때 만들어진 청동관음보살좌상으로 이중으로 구성된 연꽃무늬 좌대의 위에 오른쪽 다리는 세우고 왼쪽 다리는 가부좌를 한 윤왕좌(輪王坐)를 취하고 있다. 대좌의 뒷면에는 양각으로 불상의 조성기(造成記)가 남아있다. 이를 통해 이 불상은 중국 산서성 양능현 경안리(京安里)라는 곳에서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