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밤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마 신사(高麗神社)에서 무형문화재 이재화씨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김수혜 기자
지난 6일 밤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의 호젓한 신사(神社). 일본인 150여명 앞에서 무형문화재 이재화(李在和·62)씨가 거문고 줄에 손을 얹었다.
이곳은 '고마 신사(高麗神社)'. 고구려 멸망 후 일본에 정착한 고구려 왕자 약광(若光)을 모신 곳이다. 서기 716년에 세워진 일본 최고(最古) 신사 중 하나이다. 19세기 말까지 고마노사토(高麗鄕·고려인 마을)라 불렸다. 약광의 후손이 대대로 고마 신사의 구지(宮司·신사 대표)를 지냈다. 60대손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49)가 현직 구지다.
이날 밤 고마 신사에서는 창건 후 처음으로 고구려 악기 거문고를 연주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내년 창립 1300주년을 앞두고 본전을 개축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다. 오랫동안 고마 신사를 후원해온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씨가 거문고 명인 한갑득(1919~1987) 선생이 남긴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탔다. 이어 이날을 위해 작곡한 '고구려의 혼을 찾아서'도 연주했다.
관객들이 70분 가까이 집중해서 듣고, 다섯 번 커튼 콜을 했다. 거문고 소리를 처음 듣는다는 한 관객은 "일본 전통 악기 샤미센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피리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악기 하나에서 이렇게 웅장하고 다채로운 소리가 나다니 멋지다"고 했다. 이날 공연은 한·일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 마련됐다. 올 초 고마 구지가 "한국 전통문화 공연을 여러 가지 해왔는데, 정작 거문고 연주회는 못 해봤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고마 구지와 친분이 깊은 한국 문화인들도 힘을 모았다. 고마 신사에서 8년째 김장 행사를 열고 있는 김치 연구가 안명자(60)씨, 일본 문화에 조예 깊은 서연호(74) 고려대 명예교수, 전통음악 전문 기획사를 운영해온 김선국(47) 저스트뮤직 대표 등이다. 거문고 명인 이씨가 흔쾌히 작곡과 연주를 맡았다. 안씨는 "처음 고마 신사에 왔을 때 '여기가 한국인가, 일본인가' 싶어 눈물이 났다"면서 "그만큼 (마을 전체가) 오랜 세월 한국을 뿌리로 여기며 살아온 곳"이라고 했다.
일본인들은 고구려 왕자 약광을 '슛세이묘진(出世明神·출세하게 해주는 신)'이라 부른다. 30대 총리 사이토 마코토(1858~1936)를 포함해 역대 총리 6명이 여기 와서 참배한 뒤 총리 관저 주인이 됐다. 참배객 중에 정치인·법조인·자위대 관계자가 많다. 한 해 40만명이 다녀가는 명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