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박물관 측으로부터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여 점의 유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유물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가슴 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아 전시장 속 유물의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글_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도는 생활필수품이다.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펼쳐 놓는 것이 지도이며, 낯선 곳을 운전할 때 없어서는 안될 네비게이션도 지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지금이야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들고 또 구할 수 있지만, 전통시대의 지도는 함부로 만들어서도, 사용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정보가 많지 않은 시대에 요충지의 지도가 적국의 손에 넘어간다면 때에 따라서 매우 심각한 지경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천하도(天下圖), 중국을 중심으로 그려진 세계
지도는 부족이나 국가의 영역, 즉 영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고, 영토전쟁이 활발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조선 때부터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지도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의 것이다. 그나마 전해지는 것은 없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는 일본 류코쿠[龍谷]대학에 보관되고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이다. 이 지도는 1402년 제작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도 묘사하고 있다. 지도의 중심에 중국을 두고 주변 국가를 작게 표현한 중화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하면서도 우리나라의 크기를 유독 크게 표시하여 조선의 주체성을 강조한 지도라 평가받고 있다.
한편 조선후기에는 원형으로 구성된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가 널리 유포된다. 원형의 「천하도」는 조선에서만 제작된 지도로 당시 우리 사회의 고유한 세계관이 반영되었다. 17세기 초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의 과학지식이 유입되었고, 그 가운데 지구설에 입각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등의 지도류도 조선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조선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설과 세계지도에 표현된 미지의 세계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세계지도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원형의 「천하도」이다. 이 지도에서 표현하는 원은 둥근 지구를 상징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표현한 것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천하관에 입각한 것이다. 그리고 지도의 중앙에는 여전히 중국이 자리하고 있어 조선전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표현된 중국 중심의 세계 인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국토의 곳곳을 살피기 위해 그린 조선전도(朝鮮全圖)
전통적인 세계관을 살필 수 있는 지도가 「천하도」등의 세계 지도였다면, 국토 전반의 모습을 묘사한 전도(全圖) 등의 지도는 당시의 국토관을 살필 수 있는 지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고려시대의 「오도양계도(五道兩界圖)」나 조선전기의 「팔도도(八道圖)」등 이미 고려전기부터 전국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역시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전기에 제작된 전국지도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는 북쪽으로 만주지역과 남쪽으로 제주도, 대마도까지 표시하여 당시의 국토관을 엿볼 수 있다.
조선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영토의식이 높아지면서 전국 지도의 제작이 활발해졌다.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되는가 하면 압록강, 두만강 일대의 영역도 지도에 포함시켜 일본, 중국과의 영토 경계를 명확히 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8세기 중국을 통해 새로운 지도제작법이 유입되면서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지도들이 만들어졌다. 그림으로 표현되던 지도가 축척에 기초한 방안격자 위에 그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훗날 「대동여지도」등 대축척지도 제작의 바탕이 되었다. 한편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정치와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되던 지도들이 이제는 유람과 교육을 목적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보급을 위해 목판으로 찍어낸 지도들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한글로 만들어진 지도도 등장하였다.
.jpg)
▲조선전도(朝鮮全圖)
19세기 후반, 가로 22cm, 세로 15cm
조선 8도의 도별지도와 전도를 포함하여 모두 9매로 구성된 지도첩으로 경기도와 충청도를 1폭에 그린 반면 함경도는 2폭으로 나누어 그렸다. 산천과 함께 전국 각 군현 및 역(驛)의 명칭을 한글로 표기한 한글지도로 그 말미에 표기된 “이 지도를 가지고 유람하면 매우 편할 것이다”라는 문구로 볼 때, 민간 보급용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제작된 순 한글 지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고지도에 표현된 인천의 모습
조선시대 인천지역은 강화도를 제외하곤 군사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 고지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18세기 중엽 전국적으로 지방 군현지도가 제작되면서 인천지역의 지도도 함께 만들어졌는데 대개 관아를 중심으로 산과 하천, 섬 등의 자연지형과 성곽, 길 등의 인공구조물이 표기되어 있다. 축척이나 방위를 무시하고 그린 채색지도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정확한 지리정보를 얻기는 어려우나 당시 인천의 영역과 지형 등의 파악은 가능하다. 강화도의 경우 조선후기 왕실의 피난처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고지도가 남아있는 편이다.
조선시대 제작된 고지도 중에서 인천의 모습이 상세히 표시된 지도는 1879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도진도」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 인천이 개항장으로 거론되고 있던 상황에서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를 일본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인천과 부평의 해안 방어를 담당할 화도진과 연희진이 설치되었다. 「화도진도」는 인천에 설치된 화도진과 그 관할 포대 8개의 위치를 표시한 관방지도로 인천도호부와 화도진의 관아배치는 물론 포대에 설치된 포의 개수와 화망까지 묘사하여 관련 유적을 복원하는데 기초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채색 군현지도와 마찬가지로 축척을 무시한 채 제작되었지만, 방위에 입각하여 제작되는 등 이전의 지도에 비해 지형 등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전통시대의 지도는 그것을 제작한 주체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국토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과의 논쟁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것도 조선시대 제작된 우리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jpg)
▲인천부지도(仁川府地圖)
19세기, 가로 58cm, 세로 71cm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지도로 인천지역의 산천과 도서, 도로가 표기되어 있다. 관아와 문학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세 및 인근지역과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18세기 중엽에 그려진 「해동지도」 및 「여지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방위를 무시하고 그린 것으로 보아 19세기 전반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