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박물관 측으로부터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여 점의 유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유물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가슴 저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박물관을 다시 찾아 전시장 속 유물의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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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


  그릇은 무언가를 담기위해 만들어진다. 먹고살기 위한 음식을 담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술과 차를 담아두기 위해 만든 그릇도 있다. 장신구나 화장품을 담기 위해서, 또는 아름다운 꽃을 꽂아두기 위해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사람의 타액이나 배설물을 버리기 위해 담았던 그릇도 있다. 냄새나고 더러운 배설물을 굳이 그릇에 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매화틀, 임금님의 건강검진을 위한 그릇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에 가짜 광해군 노릇을 하던 하선(이병헌 분)이 곤혹스러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궁궐생활이 익숙지 않은 하선이 측간을 찾지 못해 무려 이틀 동안이나 용변을 보지 못하자, 내관은 다음부터 ‘매화틀’을 가져오게 하면 된다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하선은 줄지어 엎드린 나인 앞에서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 위에 앉아 용변을 보아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매화틀은 ‘매화’라 불렀던 임금님의 용변을 담아내기 위한 장치로, 나무로 만든 사각의 틀과 조각배처럼 생긴 금속재질의 매화그릇으로 구성된다. 사각 나무틀은 임금이 용변을 보기 위해 걸터앉는 장치이고, 그 아래로 임금의 용변을 담아냈던 매화그릇이 놓인다.
  그렇다면 조선의 임금들은 굳이 매화틀 위에서 용변을 보아야 했을까? 그것은 임금의 용변을 버리기 전, 이를 통해 임금의 건강상태를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매화틀을 담당하는 궁중 나인은 잘게 썬 여물을 매화그릇 안에 담아 틀 안에 넣어두고, 임금이 용변을 마치고 나면 이를 다시 여물로 덮어 꺼내었다. 그렇게 꺼낸 매화그릇은 그대로 내의원으로 옮겨졌고 어의(御醫)들은 그 모양과 색깔로 임금의 건강상태를 체크하였다. 다시 말해 매화틀은 임금의 용변을 처리하기 위한 그릇이자, 임금의 건강검진을 위한 그릇이었다.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 속 매화틀 장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매화틀(사진제공_국립고궁박물관)

▲청자변기(靑磁便器)
길이 53cm, 높이 13cm
용기의 양쪽 끝부분이 중간부분보다 위쪽으로 솟아 있고 가장자리가 살짝 오므라져 있어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였다. 옅은 녹청색의 유색을 띠며 부분적으로 환원이 이뤄지지 않은,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고려청자의 제작기술이 절정기에 있던 12~13C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청자기형 중 하나이다.

자원 리사이클링의 효시, 똥장군
  ‘장군’이라는 그릇이 있다. 나무, 도기, 도자기 등 다양한 종류의 재질로 만들어진 이 그릇은 통통한 원형몸통의 중앙에 주둥이가 튀어나온 재미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외관 때문에 정확한 쓰임새를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 알려진 장군의 쓰임새 중 분명한 것은 인분을 옮기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도로 사용되는 장군을 ‘똥장군’이라 부르는데 보통 나무나 질그릇으로 만들어진다. 측간에 보관된 인분을 담아 이를 지게로 옮겨야 했기 때문에 똥장군의 경우 50~70cm 정도의 크기가 대부분이다.

▲도기장군[陶器缶]
길이 55cm, 지름 35cm
질그릇으로 만든 장군으로 근대기 인분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했던 똥장군으로 보인다. 한쪽 면을 평평하게 만들어 세울 수 있게 하였고, 반대쪽에는 삿갓 모양의 돌기를 두어 장식미를 더하였으며, 인분을 퍼담는데 용이하도록 주둥이를 넓게 하였다. 

  “한 그릇 밥은 남을 주어도 한 삼태기 재는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재란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논밭에 뿌리는 거름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인분은 가장 많은 양분을 함유하는 고급 거름이었기 때문에 밭일을 보다가도 반드시 자기네 측간에 와서 용변을 보았으며, 소변도 가급적이면 자신의 논이나 밭에 보아야 했다. 농가에서는 거름을 만들기 위해 측간에 똥항아리를 묻고 인분을 모았고, 이렇게 모아진 인분은 똥장군에 담겨 논밭근처의 구덩이로 옮겨졌다. 구덩이 안에서 5~10일 정도 충분히 썩힌 다음, 여기에 재를 섞으면 거름이 완성되고, 이를 경작지에 뿌렸던 것이다.
  매화틀이나 청자변기가 임금이나 귀족층이 사용했던 변기였다면, 똥장군은 농사에 쓰였던 일반 서민층의 그릇이었다. 그 재질도 나무나 흙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재료로 만들어졌다. 한편, 도자기로 만든 장군도 있는데 이들의 경우 고급스런 재질과 작은 크기 때문에 ‘똥장군’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의 쓰임새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양반 가정에서 술이나 물 등의 액체를 담았던 그릇으로 추정하고 있다. 

똥장군으로 쓰이던 나무장군(시립박물관 소장)

술이나 물을 담았던 분청사기철화연당초문 장군(시립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