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창덕궁 낙선재 권역 일부 전각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인 '궁(宮)스테이'가 사실상 무산됐다.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위원장 최성락)가 지난달 12일 문화재청이 신청한 궁스테이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압도적인 반대로 '보류'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 A씨는 14일 본지 통화에서 "이날 비공개 회의에 출석한 위원 10명 중 1명만 찬성했고 나머지 9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며 "결론만 '보류'일 뿐 사실상 '부결'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추진 단계에서 문화재위원회가 불가(不可) 판정을 내렸으니 사실상 이 사업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다.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은 심의 일주일 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게 원칙이지만, 문화재청은 이날 회의 안건 중 '궁스테이' 부분만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화재청은 '보류' 판정 이후에도 예산안을 추진하는 등 사업을 강행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당초 지난 6월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은 창덕궁 낙선재 권역의 석복헌과 수강재를 고급 숙박시설로 개조하는 사업안을 냈다.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 못지않게 내부를 활용하겠다며 '하루 숙박료 1000만원'까지도 고려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내부에서도 '궁궐 훼손 우려' '목조건축물의 화재 위험성'을 들어 반대가 있었으나 문화재활용국에서 "문화재는 보존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추진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A위원은 "궁궐을 개조해서 돈벌이 숙박시설로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온 국민이 아직 숭례문 화재 참사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창덕궁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이 스스로 궁궐에 샤워·난방·주방 시설을 넣고 호텔로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게 우려스럽다"고 했다. B위원은 "창덕궁은 사적이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모두가 공유해야 할 문화재를 비싼 돈 내고 일부만 향유할 수 있게 혜택을 준다는 건 세계유산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고, C 위원은 "문화재를 활용도 해야 한다는 기본 취지는 좋지만 그 대상이 왜 꼭 '궁궐에서 숙박'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열린 사적분과 회의에선 문화재청 김대현 문화재활용국장이 "해외에서도 스페인 파라도르 등 고성(古城)을 개조해 호텔로 운영한다"며 위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 위원은 "유럽의 고성은 석조건축물이고 우리 궁궐은 화재 위험성이 큰 목조건축물이다. 그 둘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도 한심하지만 스페인의 고성과 조선 왕궁인 창덕궁의 격이 어떻게 동급인가. 영국 버킹엄 궁전을 '1박 1000만원' 상품으로 내건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