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매에 출품된 보물 중 가장 비싸게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건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쓴 하피첩이다. 추정가 3억5000만~5억5000만원. 다산이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시절 양평에 있던 부인 홍씨가 시집 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를 보내왔다. '하피(霞帔)'는 '노을(霞)빛 치마'란 뜻이다. 다산은 이 치마를 재단해 서첩으로 만들어 '병든 아내 낡은 치마를 보내/천리 먼 길 애틋한 마음 부쳤네…'로 시작하는 아들들에게 주는 훈계의 메시지를 적었다.
'하피첩'은 6·25 전쟁통에 사라져 기록에만 전해져 내려오다가 2004년 경기도 수원에서 발견됐다. 모텔 리모델링 공사장에 파지를 수집하러 온 할머니의 수레에 실려 있던 고서(古書)를 건물주가 파지 대신 넘겨받았다. 건물주는 2년 후 TV 고미술품 감정 프로그램에 이 고서를 내놓았고, 감정 결과 다산의 '하피첩'임이 밝혀졌다. 당시 감정가는 1억원.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는 "박물관 등 각종 기관이 응찰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인석보'의 추정가도 하피첩과 마찬가지로 3억5000만~5억5000만원 사이. '월인석보'는 한글 창제 직후인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부처의 일대기다.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으로 조선 초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 때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는 뜻의 '무가지보(無價之寶)'라 불리며 화제가 됐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보물이 한꺼번에 한 경매에 쏟아져 나올 수 있었을까? 위탁자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이기 때문이다. 예보가 부산저축은행 등 파산한 저축은행으로부터 압류해 관리 중인 고서·고서화 등 613점을 이번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예보는 "이번 경매를 통해 회수된 금액은 파산 저축은행에 배당돼 피해 예금자 보호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경매를 통한 기대 회수액은 25억~50억원이다.한형구 예보 청산회수 1부 팀장은 "파산 은행으로부터 미술품을 압류하는 것은 은행이 대출 담보로 잡은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거나 은행이 건물 인테리어용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경우 또는 은행 임직원이 파산에 대한 부실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할 경우 등"이라고 말했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미술품은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경매에 출품된 보물 19점 중 18점이 김민영 전(前) 부산저축은행장의 개인 컬렉션에서 나왔다. 김민영 전 부산저축은행장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 불교박물관 건립을 염두에 두고 관련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