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춘 가옥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 농장주 구마모토가 건립

시마타니 금고 등지에서 일본인 농장주들의 소유욕을 보았다면 당시 일본인 농장주들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곳은 군산간호전문대학 안에 자리한 이영춘 가옥(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00호)이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물든 풍경이 좋아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명소이자 서양의 통나무집을 닮은 독특한 외양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의 배경으로 간간이 등장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의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에 의해 1920년대에 건립되었다. 가을 수확기에 일본에서 건너와 머무는 동안 기거할 용도로 지은 별장용 건물이었다. 백두산에서 가져온 낙엽송을 이용해 통나무 벽을 올리고 지붕에는 얇은 박석을 깔아 기와를 대신했다.
온돌방과 다다미방, 서양식 거실 등이 혼재된 모양이 혼란스런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와 가구 등은 모두 유럽에서 수입한 것으로 당시 건축비가 총독부 관저에 버금갈 정도였다 한다. 구마모토는 당시 이곳 개정을 중심으로 군산과 김제, 정읍 등 5개 군 26개 면에 걸쳐 1200여 만평의 대규모 농장을 소유해 당시 동양척식회사가 운영하던 농장을 제외하고는 일제강점기 개인농장으로는 최대규모였다.

1934년 당시 군산부의 토지의 90%(221정 2927보)가 일본인의 소유였고, 옥구 지방의 경우는 전체 농경지 62%가 일본인의 소유였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헐값에 사들인 땅에 농장을 설치하고, 농장주-지배인-주임-소작농민으로 이어지는 기업형 경영을 했다. 농토를 빼앗긴 조선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해 일본인 농장에 '인부'로 고용돼 낮은 임금에 품을 팔아야 했다.
구마모토 역시 기업형 농장경영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낼 목적으로 소들을 돌볼 수의사를 두기도 했다. 소는 당시만해도 제일 중요한 농업자본이었기 때문이다.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농장의 수의사들에게 인부들이 치료를 받기도 했던 것이다.
이를 본 구마모토는 조선인 의사를 초빙했다. 그가 바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조선인 의사 이영춘(1903∼1980)이었다. 구마모토가 의사를 데려온 이유는 농장일꾼들의 건강이 곧 생산력증대로 이어져 자신의 부를 키워주리라는 나름의 계산 때문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영춘은 이곳에 머물며 농촌진료활동을 펼쳤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릴 만큼 그의 의료활동은 헌신적이었다. 가난하고 병든 농민들로 그의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영춘 박사는 의료활동과 더불어 후진양성에도 힘써 지금의 군산간호전문대학의 토대를 일구기도했다.

- 구 군산세관 본관
일제강점기 군산으로 몰려들었던 쌀과 돈이 낳은 건물

군산이 일본으로의 쌀 수출항이 되면서 일부 공장들은 큰 호황을 누렸다. 벼의 도정을 위한 정미업과 보관을 위한 창고업들이었다. 이 공장들은 운송이 용이한 철도변이나 해안가에 즐비하게 자리했다. 이 역시 모두 일본인들의 차지였다.
토지를 뺏기고 농촌을 떠난 농민들은 군산항 주변의 창고와 정미소 등지의 매갈이꾼(벼를 매통에 갈아 겉겨만 벗겨내 매조미쌀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과 미선공, 혹은 잡역부와 하역원이 되어 '토막집'에서 도시빈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몰려드는 쌀과 돈으로 인해 군산의 풍경은 날로 바뀌었다. 일본인들이 세운 은행과 세관 등지의 서양식 건물이 들어섰다. 지금도 당시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구 군산세관 본관(전라북도기념물 제87호)을 중심으로 한 '개항장'일대이다.
붉은색 벽돌 건물로 시선을 먼저 끄는 구 군산세관 본관이다. 1908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군산항을 드나드는 배들의 통관과 세무업무를 위해 세워진 2층의 건물로, 벽돌을 벨기에에서 수입할 만큼 당시엔 큰 구경거리였다. 독일인이 설계한 이 건물은 서울역사 건물과 한국은행본점과 어깨를 나란히 견준 '신식'이었다. 지금은 호남관세전시관이 되어 있다.
“여그 이름이 왜 장미동인지 알어?” 세관 앞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이 질문을 던진다. “이 근방서 난 쌀을 늘 산더미처럼 싣고와 쟁여놔서 '장미동(藏米洞)'이여. 속 모르는 사람들은 꽃 이름인 줄아는디, 알고보먼 그런 한가한 이름이 아녀. 그 쌀이 다 어디로 갔간디? 저 세관 거쳐 배로 일본으로 빼내간 것이여. 조선 백성들 굶어죽든 말든 등골을 빼내간 것이여.”
맞은편 신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제는 이곳에 구 일본 제18은행(등록문화재 제372호, 1914년 무렵 신축)과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제374호, 1923년 신축) 등 경제수탈을 위한 금융기관들을 세웠다. 하나같이 모두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을 접한 자리이자 전주와 군산을 잇는 철도의 마지막 지점에 위치해 있어 수탈이란 설립 목적을 확연히 드러낸다.

특히 이들 금융기관 중 조선은행 군산지점의 역할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도 돈을 빌린 많은 조선인들이 헤어날 수 없는 빚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에서 짚어볼 수 있다.
일제는 1926년 군산으로 몰려드는 쌀 물량이 증가하자 더 많은 쌀을 효과적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항을 증축한다.
이때 3차 증축공사를 축하하기 위해 쌀가마니를 산처럼 쌓아 기념탑을 쌓아놓은 풍경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또렷하게 남아 일제의 수탈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당시 3차 축항공사를 위해 뚫은 터널이 바로 지금의 해망굴(등록문화재 제184호)이다.
이 해망굴을 지나면 당시 군산최대의 번화가였던 '본정통'이 있다. 해망굴 옆에 자리한 흥천사는 옛 일본인 사찰인 안국사가 있던 자리였고, 그 옆으로는 옛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신사로가는 옛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지금도 골목길로 이용되고 있다.
신사 앞 광장이 있던 곳은 군산서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바뀌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