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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소반장은 동네에서 망가진 소반을 수리해주다 전라도의 원도읍이었던 나주의 전래 나주반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뒤 공방을 차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소반장 김춘식씨

손자는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예법상 아버지와는 겸상을 못 했다. 손주는 할아버지로부터 숟가락질·젓가락질을 익히고, 식사 예절을 배웠다. 너그러운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밥상머리’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우리 민족은 상(床)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아이를 점지해달라는 정화수 상이 있었고,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삼신상이 산모의 방을 장식했다. 백일상과 돌상이 아이의 성장과 함께했다. 아이가 그 상에서 무얼 맨 먼저 집느냐를 보고 아이의 미래를 점치는 돌상은 온 가족의 정성이 응축됐다. 자라면서 생일상을 받았고,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동뢰상을 사이에 두고 절을 했다. 나이가 들면 환갑상을 받았고, 죽고 난 뒤에는 제사상을 받았다.

아버지 여의고 4살때 일본으로
해방뒤 귀국, 상 고치는 기술 배워
솜씨 좋아 공장 차렸으나 실패

‘용머리 장식’ 전설의 나주반 주문
전통장인 못찾아 직접 재조립 공부
손가락 마디 잘리는 혼신으로 재현

나주 소반은 가볍고 단단한 은행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상판의 테두리를 따로 만들어 끼워서 판이 잘 휘지 않고 튼튼하고, 상판 아래 조각된 운각은 절제미가 돋보인다. 김춘식 장인이 만든 나주반들.

상 가운데 특히 소반은 식기를 받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쓰는 작은 상으로 일상에 필수적인 생활용품이었다. 나무로 만든 소반은 작은 목공품 가운데 가장 흔한 기물이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하고 아담한 소반은 흔했지만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다.

중요무형문화재 99호인 소반장 김춘식(79)은 우리의 3대 소반인 통영반, 해주반, 나주반 가운데 나주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임금님도 소반에 잡수시고, 서민도 이 소반에 먹었습니다. 거지가 밥 빌러 와도 멋진 개다리소반에 상을 차려주는 것이 인심이었어요. 그러니 소반이 얼마나 친밀했을까요?”

김씨는 “예전에는 예닐곱살이 되면 독상을 받았어요.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라며 독상의 의미를 설명한다.

장인의 손길로 완성을 기다리는 소반들.

김씨는 누구로부터 전통의 나주 소반을 배운 적이 없다. 스스로 배웠다.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4살 때 형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다. 해방이 되자 후쿠오카에서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가 나주로 돌아온 그는 제대를 한 뒤 집안 형님의 권유로 상을 수리하는 기술을 배웠다. “상 고치는 기술을 배우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며 기술자를 소개해줬다. 손기술이 좋은 그는 곧 마을에 상을 잘 고치는 젊은이로 소문이 났고, 내친김에 영산포에 상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새 상을 만들어 놓아도 판매할 길이 없어 결국 망하고 말았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불려다니며 사랑방 거처를 하면서, 헌 상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나주 소반의 ‘전설’을 들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온 손님이 다리를 용 모양으로 장식한 제사상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했다. 나주에서 만든 상이라며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다리마다 용이 휘감고 올라와 상판에 이르러 두마리씩 마주 보는 모양을 한 상을 재현해낼 기술자를 찾기는 어려웠다. 서울 손님은 기술자 찾는 경비로 쓰라며 당시에 거액인 500원을 맡기면서까지 그에게 매달렸다.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는 사라진 나주 소반을 부활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주 지역에서 상을 수리해달라고 맡기면, 일단 해체했다. 상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헌 상을 해체해서 때를 벗겨내고 곱게 다듬어 제대로 조립했어요. 워낙 정성 들여 해주니 소문이 나서 헌 상이란 헌 상은 죄다 모여들었지요.” 다양한 종류의 상을 접할 수 있었고,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과정에서 상의 구조를 잘 파악하게 되어 기술이 그만큼 빨리 늘었다. 그는 옛 나주 소반의 구조와 제작법을 익히며 제대로 된 나주 소반을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옛날 스승들은 제자가 상을 만들어 오면, 문밖으로 홱 내던졌다고 해요. 다리가 부러지면 풀칠하고 못 박아 쓸 수 있는데, 이음새가 빠져서 덜렁거리면 그대로 밟아서 아궁이에 넣어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음새를 중시했고, 엄격하게 장인을 기른 셈이죠.”

종업원 20명을 두고 영산포에서 광주상집을 운영했던 그는 1977년 2월 광주에서 나주반 전시회를 개최했다. 자신이 수리하며 복원한 70여개의 나주반을 세상에 보인 것이다.

“나주반은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게 가장 큰 장점이지요.” 그의 오른손 검지 끝마디는 자리를 비웠다. 젊음을 바쳐 일한 흔적이다.

나주/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소반장이란

조선시대 좌식용 다리 달린 상 발달
중국 식탁·일본 쟁반과 다른 특징

김춘식 장인은 젊은 시절 나무를 다루다가 오른손 검지의 한 마디를 잃었다.

소반장은 밥상 등으로 쓰인 상을 만드는 장인이다. 고구려 벽화에는 음식을 나르는 상과 도마 같은 굽 달린 그릇이 나온다. 소반이 지금 소반의 형태로 완성된 것은 조선시대 좌식문화 때문이다. 중국은 식탁을 쓰고, 일본은 다리 없는 목판을 바닥에 놓고 식사한다. 한민족은 앉아서 식사하기에 딱 좋은 높이의 다리가 달린 소반을 만들어냈다. 좌식이면서도 다리를 가진 절묘한 높이의 밥상이다.

소반은 상판 모양으로 네모난 사우반과 책상반, 둥근 원반, 8각반, 10각반, 12각반이 있다. 다리 모양으로는 다리가 안으로 휘어진 개다리소반과 밖으로 우아하게 휜 호족반, 말 다리처럼 씩씩한 마족반, 대나무의 마디처럼 장식한 죽절반 등이 있다.

또 용도별로는 운반용 밥상인 공고상, 주안상, 밥상 옆에 숭늉 등을 놓는 낮은 높이의 곁반이 있다. 또 냄비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전골상, 반찬을 두는 짧은 다리의 찬반(찬상), 잔을 올려놓는 구멍이 뚫린 작은 잔상, 크고 푸근한 형태의 12각반의 돌상 등이 있다.

산지를 중심으로는 나주반은 간결하며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이고, 통영반은 남성적이고 중후하다. 해주반은 다리를 아름답게 조각한 통판 두개로 처리한다.

이길우 선임기자
출처:한겨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02241.html

거지에게도 차려주던 ‘개다리소반’ 정성들여 고치니 ‘명품’ 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