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시간’을 품고 있다. 오랜 세월을 품고 있어야 진정한 문화재급 보물이 된다. 그러나 관리가 소홀하면 보물이 자칫 ‘먼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배첩장 이수자 강성찬(47) 씨는 ‘시간’을 되살리는 사람이다. 꼬깃꼬깃 접히고 말려서 살점을 내주며 임종을 앞 둔 보물들이 ‘배첩’을 통해 젊어진다. 헤지고 찢기고 바래, 먼지가 될 뻔한 조상들의 흔적은 그의 손끝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다.
서화나 자수를 족자, 액자, 병풍, 서첩 등으로 만들어 주는 배첩장(褙貼匠)은 오래된 직업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배첩장은 장배(裝褙), 장표(裝縹) 등의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공조에 2인, 상의원에 4인, 도화서에 2인이 배정되어 어진(御眞), 서화, 서적의 배첩 뿐 아니라 복식류의 자수와 같은 장식품도 담당하였다.

강성찬 씨는 배첩장 이수자다. 그는 우리나라 유일의 중요무형문화재 102호 배첩장 김표영 선생의 유일한 제자다. 그의 손끝은 스승의 도제식 훈련에 의해 야물었다. 풀 쑤기 몇 년, 붓질하기 몇 년, 곰팡이 떼 내기 몇 년…. 그러한 수련 과정을 거친 후 그는 배첩장 이수자가 되었다. 그의 손길을 통해 작품의 미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면서 실용성과 보존성 까지 부여한다.
얼마 전 스승은 이 세상을 떠나셨고 그는 배첩장 이수자와 문화재 복원수리 기능자로 스승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공방에서 실행 중이다.
공방은 한국근대문학관 앞에 자리하고 있다. 요즘 인천에서 문화적 분위기로 가장 ‘핫한’ 동네 중의 하나인 아트플랫폼 옆에 이웃하고 있다. 이 거리는 며칠만 걸음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가게의 등장을 놓치기 일쑤다. 갤러리 등 문화와 관련한 공간이 계속 자리 잡고 있다. ‘문화 거리에 걸맞게 이쪽에 공방을 연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아니다. 아직은 세가 싸서 온 것뿐이다. 주변에 행사가 많으면 주차하기도 힘들고 시끄러워 작업에 불편할 뿐이다”라고 답변한다.
‘예상되는’ 답변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의 등장과 공방은 이 거리를 조금은 더 문화적으로 만든 것은 분명하다. 간판 자체도 예술적으로 한 몫 한다.     

공방 문을 열자 서늘한 기온과 적정한 습도가 잔잔하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 몸살을 앓아 온 문화재급 작품들의 보존을 위해 사시사철 같은 환경에 맞춰져 있다. 벽에는 다양한 종류의 붓과 송곳, 망치 등이 전시되듯 걸려 있다. 그는 공방 곳곳에 가득한 재료와 도구를 이용해 너덜너덜해진 보물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며 회춘시킨다. 배첩장은 마치 의사와 같다.
용어 자체가 한자투성이라 어렵지만, 배첩 작업은 배접(褙接)·회장(回裝)·보수(補修)의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배접에는 틀배접, 비단배접, 색지배접 등이 있다. 회장 작업에는 족자(주지의 사위를 비단으로 꾸며주는 작업), 가접이, 주머니 붙이기, 온배접, 수지칠하고 문지르기, 병풍 돌쩌귀 달기, 병풍에 주지붙이기 등이 있다.

고서적

공방 문을 연지 5년 째. 그의 손끝이 닿기를 기다리는 문화재급 서화들이 공방 곳곳에 있다. 그에게 오는 것들은 박물관 소장품이나 종갓집에서 오랜 시간 잠을 자던 조상들의 유품들이다.
그는 신문에 쌓여있는 물건 하나를 꺼낸다. 책을 덮은 나무 표지가 흉하게 바스라져 있고 그 안의 한지도 좀벌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낡아서 더 이상 보관이 어려운 상태로 오면 먼저 먼지를 털어내는 훈증 소독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은 덧대놓은 낡은 한지를 꼼꼼히 벗겨내 보수한 후 새 옷을 입히는 배첩 과정을 거친다.

마름과정

능화판

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