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은평뉴타운 공사중 의상대사가 창건 입증 유물 발견 ㆍ땅 임자 SH공사는 이전 주장… 관청들은 떠넘기기에 급급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화엄 사찰 10곳(화엄 10찰) 중 하나인 청담사(靑潭寺) 터(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429번지 일대)가 서울시(SH공사), 은평구, 문화재청의 떠넘기기 행정으로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화엄 10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화엄사상을 널리 펴기 위해 세운 10개 사찰을 말한다.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전>에는 청담사를 비롯해 해인사, 범어사, 화엄사 등 10개 사찰이 언급돼 있다. 이 중 청담사 터는 그 위치를 알지 못했으나 2008년 발굴조사에서 화엄 10찰 중 마지막으로 확인돼 큰 주목을 받았다.
최치원의 화엄10찰 중 마지막으로 발견된 청담사 터의 현재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펜스 안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나무들이 보인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 20일 찾은 청담사 터는 한마디로 흉했다. 펜스가 둘러쳐진 유적 2500㎡에는 온갖 잡초,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소주병 등 각종 쓰레기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문화재보호구역임을 알 수 있는 표지를 찾아다녔다. 한참 헤맨 끝에 뒤집어져 흙속에 절반 넘게 파묻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곳은 문화재보호구역입니다. 무단출입이나 훼손 시 문화재관리법에 의거 형사 처벌(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게 됩니다’라고 적힌 표지판이다. 안으로 더 들어가자 주민들의 밭농사에 쓰인 비닐과 농사 도구들이 흩어져 있었다. 입구 쪽에 있는 전각 자씨각(慈氏閣)도 녹슨 자물쇠가 열려 있어 안에 봉안된 석조보살입상의 훼손이 우려됐다. 무릎만 남은 석아미타불좌상은 바깥에 방치돼 있다.
청담사 터는 2008년 서울시의 은평뉴타운 사업 예정지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됐다. 북한산 자락 응봉 능선 하단부 구릉지에서 ‘삼각산청담사삼보초’라는 명문의 기와편들과 석조보살입상과 석아미타불좌상 등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청담사는 <법장화상전>에 “해동의 화엄의 큰 학문 장소로는 10군데가 있으니 한주의 부아악(負兒山·북한산 줄기인 북악을 가리키는 옛 이름) 청담사(靑潭寺)도 그 중 하나다”라는 대목이 나왔을 뿐 그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명문 기와편 10여점이 발견되면서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청담사의 위치가 밝혀졌다. 당시 문화재청은 “서울시내 유명 사찰 터가 발굴된 첫 사례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현재 이 기와편 중 8점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문화재위원회는 2008년 청담서 터 유적과 그 인근의 신라 말~고려 초기 석조 미륵불상을 현장에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하면서 은평구에 보존 계획을 제출하라고 했다. 이후 서울시문화재위원회는 2011년 청담사 터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자씨각 안의 석조보살입상을 서울시 유형문화재, 석아미타불좌상을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했다.
2008년 청담사 터를 발굴했던 현장 모습(위쪽)과 현재 모습이 대비된다. | 이석우 기자
땅의 소유자인 SH공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이곳 불상들의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부지는 당초 상업용지였다가 문화재보호구역이 되면서 반경 50m 지역까지 건축물 높이 제한을 받는다. SH공사 관계자는 21일 “(개발 한계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문화재를 옮겨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이익 때문에 문화재를 훼손한다는 여론에서 자유롭지 않고, 사업 시행자가 발굴·보존을 책임지게 되어 있어 SH공사는 그동안 보존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시와 은평구 또한 청담사 터에 대해 나몰라라 해왔고, 문화재청 역시 어떤 행정지도도 내리지 않았다. 관리주체인 은평구는 뒤늦게 “보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치구를 통해 보수·정비를 요청할 수 있지만 서울시 문화재가 1000건이 넘는 상황이라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청담사 터의 현재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개발이익이 큰 곳이라 SH공사에서는 많은 방법을 강구하겠지만 문화재위원회 심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금부터라도 지도·감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발굴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이날 “문화재위원회도, 문화재청도, 서울시도 보존하라고만 했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니까 이런 실정”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