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두려운가 마음이 두려운가

바다는 두려웠다. 1621년(광해 13) 명에 갔던 진향사 유간 일행과 진위사 박이서 일행이 중국해로와 귀국해로에서 익사했다. 바닷길 연행이 무서워 모두 차출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인조반정은 성공하였지만 조정은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다. 의지하여왔던 명은 흔들리고 있으며 후금은 명과 조선을 압박하고 있다. 연행사들이 가야할 바다는 포성이 멈추지 않는다. 이래서 바다는 더 두려웠다. 바다는 언제나 바다다.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오간 바다나 고려인들이 원나라에 오간 바다나 항상 그 바다다. 두려운 것은 마음이다. 그 두려운 마음을 평상심으로 통솔한 리더가 1624년 사은겸주청謝恩兼奏請정사 이덕형이다. 1624년(인조 2) 이덕형 일행은 선사포로 가는 길목에서 목욕재계하고 백상루에 올라가서 산신과 해신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치고 이덕형은 잠시 졸다가 깨어나 꿈 이야기를 한다. 한 신인이 봉투 한 개를 주어서 열어보니‘돌아올 환還’자였다는 것이다. 일행은 모두 바닷길 연행을 저승길로 가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두려워하였는데 이 꿈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환희심이 생기면서 모두 생사 문제에 초연해진다. 이것이 리더의 힘이고 제사의 힘이다. 이 연행길이 안전하고 무사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당시 북경에 무사히 다녀오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것은 마음이 무사해야 하고, 그 다음이 정보의 축적과 활용이고, 그 다음이 철저한 준비다. 이덕형은 선사포에서 바다로 떠나기 전 선박 등의 준비상황을 철저하게 점검하여 미비함을 보완하고 문제점을 지적하여 상부에 보고하게 하였다. 이들 일행 30여 명은 6척의 목선을 타고 관상감에서 택하여준 길일 8월 4일에 해신제와 산신제를 지내고 무사귀환을 기원하면서 출항했다. 선사포 출항장면의 그림은 정사 부사 서장관은 순국의 자세로 안연하였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실성통곡하는 소리를 그려낸 것이다.

창신創新인가 패션(fashion)인가

현전 <수로 연행도>는 어떻게 제작되어 어떻게 전승되어 왔을까. 표절과 모방과 패션은 같지 않다. 연행도와 연행록에는 창신과 패션이 공존한다. 새롭게 생산하는 부분과 유행양식 곧 패션에 해당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 거론하는 5종의 <수로 연행도> 같은 것은 창신에 속하며 여러 연행록에 들어 있는 궁성도 같은 것은 패션에 따른 것이다. 이글에서 거론하는 <수로 연행도>는 바닷길 연행에 두고두고 참고하기 위한 제작이다. 그림에는 두 가지 유형의 그림이 있다.

그 한 유형은 실용적 동기로 제작하는 기록화고 다른 한 유형은 미적 동기로 제작하는 예술화다. 전자는 제작 의도와 수용 방법이 모두 실용적인 것이고 후자는 제작 의도와 수용 방법이 모두 미적인 것이다. <수로 연행도>는 실용적인 기록화다. 1624년(인조 2)에는 두 번의 연행이 있었다. 6월에 사은겸주청사로 출발한 이덕형, 오숙, 홍익한 일행과 7월에 동지사로 출발한 권계, 김덕승 일행 등이 그 때의 연행사들이다. 이 중 이덕형 일행은『됴텬녹(미상)』,『슈로됴쳔녹(미상), 『곤(미상)』,『화포선생조천항해록(홍익한)』,『연행시(오숙)』, 『죽천조천록(항해일기, 민상사 재구)』,『조천록(죽천선조유고, 민상사 재구)』『, 연행도폭(항해조천도, 미상)국도본』,『항해조천도(미상)국박본』,『무제첨(항해조천도, 미상)국박본』,『제항승람 건·곤(미상)성원본』,『무제첨(항해도, 미상)군박본』을 생산하였고, 김덕승 일행은『천사대관』을 생산하였다. 이덕형 일행은 한글연행록 3종과 한문연행록 4종 도합 7종의 연행록과 수로 연행도 5종을 생산해냈다. 모두 12종을 생산해 낸 것이다. 지난 7백년간의 연행기록에서 그림과 글로, 한글과 한문으로 12종의 연행록을 생산해 낸 일은 이들 일행뿐이다. 이런 까닭은 연행 기록의 제작 의도와 가치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제작과 전승이 모두 실용적 가치 인식의 자장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시기는 물길로 북경에 무사히 다녀오기 위한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였던 때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였던 까닭은 당시 국내외의 상황논리가 설명하여주고 있다. 김덕승의『천사대관』말미에도‘전후항해로정前後航海路程’이 붙어 있어서 당시 바다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알리는 코드가 되고 있다. 결국 제작과 전승의 실용에너지가 12종의 결과물에 고루 작용한것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수로 연행도>의 처음 원본의 제작은 연행 도중 현장에서 절첩본 건·곤 2책으로 제작된 것으로 현전『연행도폭(항해조천도, 미상)국도본』이 그것인 것 같다. 오재순의‘항해조천도발’, 채제공의‘제이죽천항해승람도후’와『연행도폭(항해조천도, 미상)국도본』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그 전승과정을 알아보면 이런 추정에 이르게 된다.‘연행도폭’이란 제첨을 붙인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수차에 걸쳐 변형을 거듭하여 현존본으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 후 2종의 화첩본으로 제작된 것이『항해조천도(미상)국박본』,『무제첨(항해조천도, 미상)국박본』일 것이고, 원본에 가깝게 모사본으로 제작된 것이『제항승람 건·곤(미상)성원본』인 것 같다. 그리고 기록화에서 기호화嗜好畵로 전변 제작된 것이『무제첨(항해도, 미상)군박본』일 것이다.

미渼가 가치의 대상인가, 역사유적이 가치의 대상인가

<수로 연행도>의 구성과 그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당시 수로연행의 코스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선사포(평안북도 철산군 백량면 기봉동에 있었던 포구)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석다산(평안남도 증산군 석다리에 있었던 포구)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이다. 전자는 선사포-가도-신도-석성도-장산도-묘도-등주-내주-청주-제남-덕주-하간-탁주-북경의 코스인데 7종의 연행록과 연행도 5종을 생산한 이덕형 일행이 왕래한 노정이다. 후자는 석다산-가도-신도-석성도-장산도-여순구-철산취-쌍도-남신구-북신구-각화도-영원위-산해관-영평부-옥전현-계주-통주-북경의 코스인데 1636년『숭정병자조천록』을 남긴 서장관 이만영 일행이 다녀온 코스다. 이때의 성절천추진하 정사는 김육이다. 선사포 코스로 다녀온 『연행도폭(항해조천도, 미상)국도본』,『항해조천도(미상)국박본』,『무제첨(항해조천도, 미상)국박본』,『제항승람 건·곤(미상)성원본』의 구성은 모두 3부문 25장면으로 짜여 있다. 한국 선사포에서 중국 등주까지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연해안 경유 도서 5장면(선사포, 가도, 녹도, 삼산도, 타기도에서 등주외성), 제나라 12장면(등주부, 래주부, 유현, 창락현, 청주부, 장산현, 추평현, 장구현, 제남부, 제하현, 우성현, 평원현), 조나라 4장면(덕주, 경주, 헌현, 하간부), 연나라 3장면(신성현, 탁주, 연경), 선사포 회박 1장면으로 되어 있다. 바닷길은 섬을 근거지로 삼아서 연행 노정의 정보를 만들었고 뭍길은 역사 유적지를 근거지로 삼아서 연행 노정의 정보를 만들었다. 미의 창조가 가치의 대상이 아니며 자연과 역사유적을 근거로 새로운 실용적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치의 대상이었다.

절실하게 요청된 것은 무엇인가

1624년 당대 국가를 대표하는 한국 관인으로서 최고의 지식인 계층이며 지성인 계층인 연행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청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지 않고 안전하게 북경에 다녀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이 면복과 고명에 관한 외교적 임무의 성공적 수행이고 그 다음은 결과에 대한 또 다른 대비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용한 많은 정보가 요청되었다. 부사 오숙은 안전한 항해를 하려고 집에서 여러 가지 정갈한 제수를 준비해갔다. 수시로 해신제나 용신제 등을 지내면서 준비해간 제수를 차려 놓고 상황에 맞게 제문을 지어 낭독한다. 출발 초동단계에서 오숙이 탄 배는 심한파도에 떠밀려 6척의 선단에서 멀리 떨어져나가 나뭇잎처럼 나부끼는 위험에 직면한다. 그러나 항해 중에는 오숙의 배가 가장 안전했고 오숙은 시종여일하게 멀미도 않고 꼿꼿하게 정좌한 자세를 유지한다. 1636년 석다산으로 상륙한 김육도 오숙처럼 하였다.

<수로 연행도>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선사포에서 등주까지의 바다와 등주에서 북경까지의 내륙 정보가 알알이 박혀 있다. 노정의 거리 정보와 위치 정보, 자연과 자연 현상에 관한 정보, 인물과 풍습에 관한 정보, 역사 유적과 인심에 관한 정보, 노정의 주행 시간에 관한 정보, 가변적 정보와 불변적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그렸다. 특히 바닷길 정보에 중점을 두어 그렸다. 여기에 따른 뭍길정보는 바닷길 정보의 일환이다. 6척 선단의 출항과 정박 정보, 섬과 섬 사이의 거리와 풍향 풍속 정보, 파고와 파장의 정보, 파도의 속성에 관한 정보, 용오름이나 고래의 출현 같은 특이 정보, 노정에 들어 있는 섬들의 자연과 인물, 풍습과 현황 등의 정보를 그렸다.『수로 연행록』에도 대포소리와 같은 특이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상세한 바다 정보의 절실한 요청이 <수로 연행도>란 창신創新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수로 연행도>의 가치는 실용적 정보에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연행도폭(항해조천도, 미상)국도본』은 17세기 한반도와 요동반도 산동반도 사이의 바다정보를 상세하게 전해주는 보고(寶庫)라는데 그 가치가 있다

글·사진. 임기중(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두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