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15 03:06
日帝때 아사미가 가져간 것… 고미술 관계자 입수, 들여와
"친필여부 신중히 결론내야"
- 1385년 정몽주가 지인에게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 일제강점기 아사미 린타로에 의해 반출됐다가 최근 국내에 들어왔다. /김연정 객원기자
고려 말인 1385년 유학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가 지인에게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판사로 일한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1869~1943)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국내 한 고미술 관계자가 입수해 한국에 들여왔다. 이 관계자는 "아사미의 후손이 갖고 있던 것으로 일본의 한 미술관이 구입하려다 최근 쓰시마 불상 등 악화된 한·일 관계 때문에 보류됐다"고 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저명한 고문서 수집가였던 아사미 린타로의 소장품이라는 게 역설적으로 이 유물의 가치를 말해준다"면서도 "정몽주 친필 실물이 워낙 희귀해 글씨만으로 진위 여부를 결론 내기는 어렵다"며 신중론을 폈다.
편지는 9행 127자. 나라가 망해가도 손쓸 수 없는 충신의 절절한 마음을 종이에 행초서(行草書)로 써내려갔다. 수신자는 알 수 없으나 '족하(足下)'라는 경칭으로 볼 때 지인에게 보낸 서신으로 추정된다. "울타리 아래는 꽃이 피고 술독에 술이 익어가니 당신은 흥취가 적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늙은이는 나랏일에 매여 있어 당신과 더불어 이 즐거움을 함께할 수 없으니 하늘은 무슨 뜻인지, 멀리서 바라보며 부러워할 뿐입니다." "회옹(晦翁·주자)의 책은 이미 다 보셨을 터이니 돌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에는 "홍무(洪武) 18년(1385) 7월 16일 몽주(夢周)"라고 썼다.
편지를 검토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주자 책을 서로 빌려볼 만한 사이라면 수신자는 조선 개국 공신 중 한 명일 가능성이 있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쓸 때 주자 책을 일부 표절했을 정도로 당시 그들 사이에서 주자 공부가 유행했다"고 했다.
특히 주목되는 건 편지의 소장자가 아사미 린타로라는 것. 아사미는 한국의 옛 문헌 2000여종을 수집해 일본으로 반출했고, 이후 자료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에 팔려 '아사미 문고'를 이뤘다. 안 교수는 "아사미는 한국학에 조예가 깊어 수집한 책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며 "아사미가 갖고 간 편지라면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종이 재질을 분석한 결과도 진품 가능성을 높여준다. 서지 보존처리 전문가는 "종이를 빛에 투과해보니 발의 간격이 조선시대 이후의 종이보다 넓고 섬유질이 고르지 않게 뭉쳐 있는 등 14~15세기 종이의 특징이 확인됐다"고 했다.
문제는 글씨. 하영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정몽주 글씨는 대체로 납작하고 짜임새가 조밀한데 이 글씨는 길고 둥글둥글해 서풍이 다르다"고 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성인록' '근묵' 등 기존에 알려진 정몽주 글씨와 미감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추사 진품을 가짜라고 하는 일이 흔했다. 추사체가 워낙 다양해 말년의 글씨만 추사체로 보고 20~30대 글씨는 가짜라고 보는 일이 많았다"며 "정몽주 친필 자료는 목판으로 새긴 것까지 포함해 4~5점뿐이라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출처:프리미엄 조선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15/2015011500082.html?pmlet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