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홍무18년 총통’ 문화재청 직권 재감정 촉구 파문 ㆍ1998년 이후 4차례 감정 불신… “최무선 활약 당시 총통 확신” ㆍ전문가 참여 공개 감정 요구… 과학심포지엄서 논문 발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고려시대 총통으로 추정되는 ‘홍무18년 총통’에 대한 문화재청·서울시 문화재위원회의 감정 결과에 반발, 일부 전문가들이 문화재청의 직권 재감정을 촉구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려말 총통이 확실함에도 문화재청·서울시는 ‘중국제’ ‘위작’이라고 하는 등 오락가락해 신뢰할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특별 공개 감정까지 요구했다.
정명호 덕난문화유산연구원 원장(80·전 동국대 교수)과 채연석 한국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63·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등은 3일 “역사를 다시 쓰게 할 ‘홍무18년 총통’의 진위 논란이 16년째나 계속돼 한심스럽다”며 “총통의 중요성이나 우리 역사를 위해 이젠 결론을 내릴 때로, 나선화 문화재청장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잘못된 감정으로 총통이 해외로 반출될 위기에까지 처했다”며 “반출될 경우 문화재청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채 교수는 8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리는 제4회 ‘세계과학관 심포지엄’에서 ‘고려 총통 연구’란 논문 발표를 통해 ‘홍무18년 총통’을 소개한다.
전문가들이 문화재청의 직권 재감정을 요구하고 있는 ‘홍무18년 총통’.
■ ‘홍무18년 총통은’
문화재청에 따르면 청동제인 이 총통은 길이30.2㎝, 총구의 바깥지름 4.6㎝, 무게 2846g으로 총신에 4줄의 죽절(마디)이 있는 원통 형태다. 특히 총신에 ‘洪武十八年 乙丑七月日 楊廣(內)(廂)造 元帥王(興)’(홍무십팔년 을축칠월일 양광내상조 원수왕흥)이란 19자의 명문이 4행으로 음각돼 있다(괄호 안의 글자는 해독상 논란 중인 글자). ‘홍무18년’은 1385년, 고려 우왕 11년을 말한다. 명문대로라면 한국 최초의 화약·화포 발명자인 최무선(1325~1395)이 활약할 당시이자, 그의 건의로 화약·화기 제조관청이던 ‘화통도감’(1377)이 설치된 이후 제작된 총통이다. 진품임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 총통이자, 가장 오래된 총통”이라며 “한국 총통의 기원 등은 물론 중국 등 동아시아 병기사를 새로 써야 할 사료”라고 강조한다.
현존하는 총통은 모두 조선 총통으로 18건, 20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경희대박물관 소장 2점도 고려 총통으로 알려져 있으나 명문 등이 없어 공인받지 못하고 있다. 이 총통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8년 5월 서울지검이 형사사건의 증거물로 압수한 총통에 대해 문화재청에 감정을 의뢰하면서다. 이후 총통은 검찰 압수물 창고에 8년간 보관되다 2005년 소장자 김병국씨(67)에게 돌아갔다.
‘홍무18년 총통’의 새겨진 ‘洪武十八年’ 명문 부분.
■ 진위 논란은
이 총통은 지난 9월까지 문화재청과 서울시로부터 모두 4번의 감정·심의에서 ‘중국제’ 또는 ‘현대에 만든 위작’으로 판정받았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관련 논문까지 발표하며 진품임을 강조한다.
문화재청은 1998년 서울지검의 감정 의뢰에 ‘고려 총통이 희소해 비교감정 불가능’ ‘중국제 총통으로 추정’ 등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이 감정은 2003년 대법원으로부터 ‘(문화재청의) 감정 근거가 빈약하고 고려시대 것이 아니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됐다. 2003년엔 서울고검의 감정 요청에 ‘고려나 중국형이라 보기 어렵다’ ‘조잡한 명문, 불필요한 손잡이와 마디 등으로 가치 인정 곤란’으로 판정했다.
이후 소장자 김씨는 2008년 서울시에 문화재 지정 심의를 신청했고 서울시는 ‘명문이 서로 통하지 않고’ ‘명문 조성방식이 조선의 사례와 부합하지 않으며’ ‘사용 가능성이 매우 낮은 점’ 등을 들어 ‘중국제 모방 현대작’으로 판정했다. 지난 9월 재심의에선 ‘너무 많은 마디 수, 불필요한 손잡이 부착’ ‘고려시대 총통으로 제작돼 사용됐을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반면 전문가들은 <고려사> 등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명문의 근거와 내용, 양식적 특징 등을 들어 이들 감정 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한국 초기 화기연구> 등을 출간하며 총통 등 화약무기와 로켓 권위자인 채연석 교수는 “총통은 내부구조가 핵심”이라며 “이 총통의 내부구조를 조선과 중국 원·명 총통, 14세기 유럽 것들과 비교분석한 결과 고려말 총통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8일 발표할 논문에서도 “내부구조의 여러 특징, 세종대에 개량된 ‘이총통’과 같은 직경 등 연구결과 고려에서 제작된 ‘이장군(二將軍)’포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이 총통을 원형 복원해 발사까지 성공했다”며 “문화재청이 관련 전문가들로 특별위원회라도 구성, 제대로 평가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홍무18년명 고려 총통의 양식에 대한 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한 정 원장은 ‘홍무’ 중 ‘무(武)’자를 피휘(문장에 선왕 등의 이름자가 있을 경우 글자를 변형시키는 것)하고, ‘양광’이 고려 고유의 지명이며, ‘내상’은 조선초까지 이어진 군사 단위 구성체인 점 등을 들어 “분명한 고려 총통”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식 분석에서도 문헌자료인 <국조오례서예(國朝五禮序例)>의 ‘병기도설(兵器圖說)’ 등과 중국 원·명 총통을 비교조사한 결과도 고려말 총통”이라며 “국내외 비교를 통한 ‘양식상 특징’과 명문이 표현하는 ‘시대적 특징’이 관련 문헌이나 역사적 상황과 모순없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과 채 교수는 “두 기관의 판정은 서로 오락가락하는 데다, 감정·심의에 참여하는 인사들이 한정돼 직권 감정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총통 진위의 중요성을 감안, 문화재청은 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 모두가 인정하는 결론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 소장자 김씨는 “오기가 생겨 해외로 나가 검증을 받을 생각도 있지만 전문가들이 만류해 참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화재계 인사들은 “감정에 참여하는 전문가가 빤한 상황에서 1차 감정 결과가 번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더욱이 서울시가 문화재청의 판정을 뒤집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문화재위원은 “총통 전문가와 금석학·역사학·금속학자 등 여러 전문가들로 감정단이 구성돼야 한다”며 “국보로 지정(1992년)됐다가 위작임이 드러나 국보가 취소(1996년)된 ‘귀함별황자총통’ 사건도 이 총통 감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문화재청은 “국보 취소 사태 이후 총통에 대한 국가 문화재 지정은 발굴품을 제외하고는 유보되고 있다”며 “1995년 ‘현자총통’(보물 1233호)이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지정된 총통은 없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