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내 깊숙한 후원 한 공간에서 양동호 단장이 나무토막 하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굳은 얼굴에서 근심 한 가닥이 엿보인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와서 창덕궁 전각들의 상태를 관찰하던 중에 부용지 뒤편 어수문에서 발견된 겁니다. 오랜 세월 풍우(風雨)를 견뎌내다 이제야 떨어져 나온 거죠. 우리 목조 문화재들도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어요. 한시라도 빨리 찾아서 고쳐내야죠.”

직영사업단의 역할에 대해 그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를 요하는 고궁 전각들과 종묘, 서울과 경기 일원에 있는 능(왕과 왕후의 무덤)들을 살피다보면 ‘미리 일찍 알았더라면 이렇게 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고. 1969년 창경궁(당시 창경원)에서부터 시작해 40여 년 넘게 고건축물 보수·정비 업무를 담당해온 그이기에 문화재는 각별함을 넘어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됐다. 작은 나무토막을 자꾸만 매만지는 그에게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후손에게 문화재 사랑을 전해주고 싶다

문화재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관심과 정성이 깊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랑의 어원이 ‘생각하다’, ‘살다’인 것처럼 문화재를 사랑한다는 말은 문화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뜻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양동호 단장은 고건축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중세의 연금술사와 같다. 닳거나 틀어진 곡장(曲牆, 나지막한 담)이나 팔작지붕의 기와도 그의 손을 거칠 때 비로소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새벽 5시 30분쯤 출근해 직원들과 함께 간단한 아침을 들고 바로 작업에 나섭니다. 관람객들을 방해하지 않고 집중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이른 시간에 시작해야 하거든요.”

직영사업단의 인력은 약 40여 명으로, 그중 문화재수리기능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 23명이다. 고건축물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 없이는 접근도 허락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인원 충원 뿐 아니라 전문가적인 능력을 기르게 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고건축물이요, 그것이 문화재”라고 말하는 양동호 단장. “그래서 문화재에 애정을 갖게 되면 보다 완벽한 보수·정비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1980년 6월 기동보수단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직영사업단은 이후 조경사업단, 직영보수단을 통합해 2008년 2월 현재의 조직으로 확정됐다. 지난해에는 고건축물을 비롯한 문화재 시설물 243건, 조경정비 32건 등을 보수하고 정비했다. 매년 300건 정도의 보수·정비를 하는데, 숫자로만 봐도 하루가 멀다고 이뤄진 땀방울의 결과다. 올해 초 동해안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로 고택 문화재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때 긴급히 달려가 복구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수명을 다한 고목이 쓰러져 궁궐담을 재빨리 보수하거나, 폭우로 봉분이 쓸려 내려간 광릉에 출동해 지게와 삽으로 일일이 작업하던 일은 그저 추억담일 정도다.

“직원들에게 ‘언젠가 할 일이면 지금하고, 누군가가 할 일이면 내가 하자’라고 말하곤 해요. 그런 책임감 없이는 어려운 일이죠. 그래도 창덕궁 후원이며 동구릉과 같은 멋진 정원을 벗 삼아 일할 수 있으니 이만한 혜택도 또 없을 거예요.”

남들에게는 힘들고 궂은 일이더라도,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힘써 보전한 문화재를 보고 감동을 느끼는 관람객들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는 양동호 단장. “우리나라에 뛰어난 문화유산이 있음을 감사할 후손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글 이종철 사진 이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