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 용황택지지구 층수제한 15층서 25층까지로 완화 ㆍ“유적과 도시 조화 깨진다” “재산권 행사 침해” 논란
경북 경주시가 도심 북쪽 끝자락에 25층짜리 고층 아파트 건립이 가능하도록 층수 제한을 완화했다. 경주 도심에서 처음으로 25층 아파트가 지어지게 된 것에 문화재 전문가들은 “천년고도의 유적지가 훼손된다”며 우려했다.
경주시는 용강동과 황성동 일대 용황택지개발지구(6만7000여㎡) 내 (주)협성건설이 신축할 예정인 아파트의 층수제한을 기존 15층 이하에서 25층까지로 완화했다고 16일 밝혔다. 아파트 부지는 2종 일반주거지역인 용황지구에 위치해 있다. 경주시는 25층짜리 13개 동을 포함해 16~25층짜리 15개 동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 건축허용 여부를 결정할 경북도 건축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면 2016년까지 아파트가 신축될 예정이다.
용황택지개발지구 반경 1~2㎞에는 동남쪽으로 굴불사터 사면불상(보물 제121호)과 탈해왕릉(사적 제174호)이 있다. 서북쪽으로도 진덕왕릉(사적 제24호), 나원리5층석탑(국보 제39호) 등 신라시대 유적들이 위치해 있다.
경주시는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2011년 개정돼 기존 15층까지만 허용된 건축물의 층수제한이 폐지됐고, 이에 맞춰 지난해 3월 관련 시조례가 개정됨에 따라 고층 아파트 건립을 허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주시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역사문화도시의 특성을 고려해 지역에 따라 아파트 층수를 15~20층 이하로 제한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이례적이다.
용황지구에는 2개의 공동택지구역이 추가로 개발 중이어서 고층 아파트 허가신청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서 경주시는 지난 3월 (주)부영주택과 경주·울산의 접경지역인 외동읍에 15~30층짜리 임대아파트 3230가구를 건립하도록 업무협약을 맺는 등 올들어 고층 아파트 건립을 계속 유도하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역사도시의 이미지를 크게 흐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54·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추진단 자문위원)은 “경주는 사방이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유적이 산재해 있고, 신라시대에는 황룡사 9층 목탑 같은 고층 건물이 1~2개뿐이었다”면서 “즐비하게 들어설 고층 아파트는 경주를 역사문화도시가 아니라 다른 도시와 다름없는 곳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배 소장은 “일본 교토가 역사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도시를 관리해왔는지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역사 가치관이 반영된 도시를 유지하려면 통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 전 회장(70)도 “용황지구는 신라시대 수도 중심지 왕경의 끝자락에 해당하며 주변에 유적이 많은 곳인데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유적과 도시의 전체 조화가 깨진다”고 말했다.
반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인 재산권 보장도 존중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정수씨(55·경주시 노동동)는 “유적 보호를 이유로 국민이 누려야 할 재산권 행사가 침해되면서 언제까지 도시가 슬럼화하는 것을 놔둬야 하느냐”면서 “역사문화를 보존하면서도 현실에 맞는 도시개발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경주시 관계자는 “협성건설의 아파트 건축과 관련해 지난달 교수·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주시 건축·도시공동위원회의 심의회의에서도 위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건축부지가 도심 유적과는 제법 거리가 떨어진 데다 25층 정도까지는 허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