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높은 경지의 예술을 목도한다. 우리네 궁궐을 보면 다른 나라 궁궐처럼 거만하게 자신을 내세우지도, 그렇다고 숨어들지도 않지만 그런 태연자약한 모습에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 궁궐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적인 면모보다는, 자연과 조화되어 더욱 품위 있고 경이로운 피조물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덕수궁은 가까운 다른 궁궐들보다는 약간 시선에서 비켜간, 그래서 조금쯤은 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대한문(大韓門) 앞에 서자마자 보기 좋게 무너진다.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벌어지고 북소리와 취타대의 연주가 화려하게 울려 퍼진다.

“화려한 수문장 교대식에는 우리의 궁궐 문화가 담겨 있어요.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은 조선 초기 의식이고,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은 조선 후기 의식이죠. 장수와 군사들의 의상과 깃발이 화려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상희 주무관의 막힘없는 설명이 쾌활한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2006년 문화해설사가 되어 문화재와 인연을 맺고, 2010년에 덕수궁의 안내 및 홍보 업무를 진행하다가 문화행사를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역할을 맡게 됐다. 말하자면 영화나 공연의 감독, 연출과 같은 일이다.

“덕수궁을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입니다. 또 덕수궁 내 많은 전각들의 문화적인 가치를 활용해 공연·전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특히 현대 예술을 통해 전통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관람객들의 반응도 아주 좋습니다.”

덕수궁 문화행사는 전통예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통의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현대예술 분야를 접목시켜 언론매체들의 비상한 관심을 일으켰다. 그로써 덕수궁은 열린 문화현장이자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특히 2009년부터 시작한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행사는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내용으로, 매회 200~400여 명의 일반인이 참가하는 간판 프로그램이 됐다. 수준 높은 강연과 함께 저명인사가 참가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이 행사는 1회 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을 시작으로 예술작가·문학작가·종교인·배우·방송인·운동선수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해왔다.

“함녕전 뒤에 위치한 개방된 전각임을 활용해 공개행사를 진행했는데, 훌륭한 명사들의 강연을 경청하고 공연도 감상하고 차 한 잔 마신다는 상상이 실현된 거죠. 앞으로 덕수궁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꾸준히 개최할 계획입니다.”

해에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는 덕수궁.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만큼 제대로의 가치를 알리는 일 또한 중요하다. “예전에는 문화유산의 보존·관리를 통해 관람객에게 개방하는 데 머물렀다면, 지금은 문화유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려해보는 추세”라고 말하는 이 주무관. 관람객이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공연·전시를 적극 시도해보겠다고 한다.

“옛날 궁궐에서 행해지던 모든 것들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을 겁니다. 오늘날도 궁궐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준 높은 궁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문화소외계층에도 손을 내미는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글 이종철 사진 이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