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는 한국인의 두드러진 정서 중 하나다. 풍류는 네 것 내 것을 따지지 않고, 혼연일체가 되어 정을 나누는 데서 나온다. 지상에 있는 물건들은 고정되어 각각 구별되지만,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통한다. 풍류를 바람이라는 뜻의 풍(風)과 흐름을 의미하는 류(流)로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류라는 글자가 현재 남아 있는 문헌에 보이는 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나오는 것이 처음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풍류는 하늘사상에 근거한다. 한국인의 정서를 압축해서 표현한 것 중에 단군신화가 있다.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정신적 고향을 하늘로 설명한다. 하늘마음은 한마음이다. 한국인은 아직도 한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한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하늘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이다. 인내천사상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하늘이 하늘마음을 가지고 지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듯, 한국인은 한마음을 가지고 지상의 모든 가르침을 포용하여 하나로 융화시킨다. 그것이 풍류다. 풍류는 하늘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고상하다. 풍류는 지상을 초월해 있으므로 초월적이다. 풍류는 지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므로 포용적이다.

한류는 근래에 자주 오르내리는 새로운 조어로,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뜻한다. 풍류가 초월적이고 포용과 융합의 덕목을 갖추고 있으므로 결국 한류와 상통하는 개념이 된다.

근본적으로 한류는 멋의 개념이다. 멋이란 의미는 국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각기 다른 입장과 뜻이 있어 확실히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한 멋이 아니라 남을 이롭게 하는 멋, 초월적인 자유와 호흡을 맞춰 이뤄내는 조화의 멋이 바로 한류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풍류와 한류를 관통하는 한(恨)의 개념

풍류정신과 한류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려면 한(恨)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풍류와 한류는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와 맞물려 있다. 일반적으로 한은 지난 일이 원망스럽거나 원통하거나 억울하게 생각되어 응어리가 진 마음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의 한은 응어리진 것을 풀기 위한 앙갚음이나 보복이 아니다. 박경리 선생은 “한(恨)의 정서는 소망이고, 그 소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우리 한의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가 퇴보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왜곡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그런 뜻에서 한이란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 한을 실현시킬 때 신바람이 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신명(神明)이다. 국문학자 김열규는 “신바람은 태생이 워낙 신명과 쌍둥이다. ‘신명 난다’의 신명은 천지신명(天地神明)에서 비롯된 말이다. 모든 천지와 자연의 신령을 통틀어서 신명이라고 한다. 신바람도 신명도 원래 신의 몫이다. 그것들의 근본은 신기운이다. 인간이 신기운을 탄 게 신바람이다. 신바람이나 신명도 서로 다를 바 없이, 사람을 황홀경의 경지에 잠기게 한다”고 했다.

한국인은 신명이 날 때 한마음이 되고 풍류객이 된다. 이것은 한국인의 습성·예술·문학 등에서 두루 나타난다. 사물놀이나 농악을 연주하고 구경하면서 공동체적인 무아의 경지로 빠져 들어가기도 하고, 맺어지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한오백년’을 부르기도 한다. 해학과 애증이 담긴 판소리를 열창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한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이것이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 한류인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 전통문화가 녹아든 한류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마음을 챙겨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직도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고 아직도 풍류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근대 이래로 세상은 힘센 사람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제국주의의 결과로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사계절이 순환을 하듯, 역사도 순환을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몸을 챙기는 힘의 시대가 지나면 마음을 챙기는 시대를 맞이한다. 지금이 그런 때다. 일제강점기와 자학적인 식민사관(植民史觀)을 통해 묵살되었던 한국인의 문화가 이제 꽃을 피울 때가 되었다.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이 돋보이고 한국인의 풍류가 멋있게 느껴지는 때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유행인 한류는 우리의 풍류에 대한 세계인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해외 한류팬들은 한류에서 ‘열정’, ‘활력’, ‘다양성’, ‘개성’ 등을 느낀다고 한다(SBS-TV ‘아시아에서 부는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2001. 7. 21)’). 이러한 것들은 풍류에서의 신명과 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에 온 유학생들에게 한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가장 많은 답변은 ‘역동적이면서 창의적인 기법’이었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생활 태도’가 그 다음을 이었다. 즉 한류문화의 붐은 한류의 주체들이 창의적이고, 춤과 노래를 통해 풍류를 즐기는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유상철·안혜리 『한류 DNA의 비밀』, 생각의 나무 63페이지). 물론 이 풍류 기질은 몇몇 연예인에게서 강하게 나타나겠지만 한국인의 보편적인 기질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권상우 ‘한류의 정체성과 풍류정신’ 『동서철학연구』, 제42호).

한국의 드라마에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고, 한국인의 노래에도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 신들린 듯 움직이는 한국인의 춤에는 마음이 녹아 있다. 한류문화가 붐을 일으킨다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역사의 대 전환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한류문화가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류를 경제 개념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문화적인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평등한 교류의 차원에서 우리 풍류정신의 가치를 전파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풍류도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고, 한류를 통해 세계 문화를 주도할 기회가 왔음에도 그것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풍류정신을 잘 담을 수 있도록 모든 분야에서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잃을 뻔했던 풍류정신, 즉 한마음 회복을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한마음을 다시 회복하기만 하면 한국인의 풍류는 다시 살아나고, 한국의 한류문화는 점점 더 빛을 발할 것이다. 과거에 찬란히 빛났던 등불이 다시 켜질 것이다. 한국의 등불이 다시 켜지면 이제 아시아의 밝은 빛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글 이기동(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교수)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