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 실현하는 문화재 위한 종합병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1층에 자리한 대형작업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사람의 키보다 몇 갑절은 높은 크레인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아래 커다란 책상 위에는 방금 전까지 쓰인 손때 묻은 기자재들이 놓여있다.

“여기가 바로 다양한 원인으로 훼손된 석조문화재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치료’하는 곳입니다. 석조문화재를 위한 종합병원인 거죠.”

무기물보존팀 팀장을 맡고 있는 김사덕 사무관은 석조문화재 보존에만 20여 년 넘게 작업해왔다. 석불과 석탑을 비롯해 석축, 암각화, 돌장승, 돌다리 등 다양한 석조문화재를 다루어오면서 그의 땀이 곳곳에 밴 이곳은 일의 공간을 넘어 삶의 터전이 됐다.

“돌의 성질은 단단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지요. 수천 년 비바람을 맞으며 매끄러웠던 표면이 거칠어지고 깨지고, 현대에 와서는 산성비, 기후영향 등으로 보존 환경이 더욱 나빠지고 있습니다. 후대에 우리 문화재를 전해주려면 지금이라도 빨리 서둘러야 하죠.”

1992년부터 근무하며 오직 문화재보존 업무에만 전력해온 김 사무관. 그동안 석조문화재의 보존처리 업무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보존 연구, 문화재 보수재료 약품개발과 기술개발 연구 등을 수행해왔다. 굵직한 실적만 살펴도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 보존처리(1997년), 개성 경천사지 10층석탑(국보 제86호) 보존처리(1995~2005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수리공사 보존처리(현재),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석가탑(국보 제21호) 및 감은사지 동·서석탑(국보 제112호) 수리복원(현재) 등 다양한 작업을 맡아왔다.

“석조물이 작업실로 들어오면 지그시 눈을 감고 하나하나 쓰다듬어 봅니다. 손길이 스칠 때마다 옛 석공들의 돌 다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적게는 수백 년, 많게는 천 년 넘게 홀로 서서 견딘 석조문화재를 볼 때마다 영원한 시간 앞에서 작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고. 억겁의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감내한 문화재를 보며 냄새 맡고 어루만지다보면, 주름 깊게 패인 노인의 살갗처럼 딱딱하지만 미묘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비바람 맞으며 막막하고 덧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깎이고 부서지는 풍화(風化)를 겪은 모습이 인간의 일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의 아름다웠던 그때를 상상해보면 얼마나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이었을까요. 문화재를 만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죠. 현재를 통해 과거의 모습과 본래 가치를 만나는 것 말입니다.”

초창기 때는 부족한 기술과 정보, 열악한 장비로 유물 하나하나마다 새로이 연구하고 보존 방법을 궁리하며 늦도록 작업실 전등을 밝혔지만, 최근에는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보존 전문업체도 생겨나면서 여건이 다소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은 여러모로 태부족인 상황이다. “시기를 놓쳐 마땅히 지켜야 할 문화재가 훼손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하는 김 사무관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문화재는 꾸준한 인내로 정성을 다해 지켜야 합니다. 한 차례 보존작업이 마무리 됐다고 해서 모든 관리가 끝나는 것이 아니죠. 문화재는 생명체와 같아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어서 빨리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이종철 사진 이서연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