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은 평화이다.

마당에서 우리들의 좁은 마음은 넓어지고, 우리들의 격한 마음은 숨을 고른다. 마당에 서게 되면 누구나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지며, 산란했던 마음이 정돈되는 것을 느낀다. 이런 마당에서 누가 쓸 데 없이 인색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모한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마당은 그런 점에서 치유의 땅이다.

마당은 침묵이다.

마당은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이 언제나 무심(無心) 속에서 살아가는 여여(如如)한 존재이다. 마당은 말을 넘어선 공간이고, 말 이전의 공간이기에 마당 앞에 서게 되면 모든 인간적 언어들은 잉여의 낙엽처럼 떨어져 내린다. 잉여를 없애고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곳, 잉여가 무엇이며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땅, 그곳이 마당이다.

마당은 일색(一色)이다.

마당은 이음매 없이 전체가 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무봉(無縫)의 땅이다. 마당에서 우리들의 조각났던 마음은 일원상(一圓相)으로 하나가 되며, 얼룩덜룩했던 마음은 본색(本色)을 찾는다. 마음이 제 갈피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 마음이 흩어져 분열의 아픔을 겪을 때, 마당의 일색을 깊이 사유하는 것은 뜻있는 일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분명 최초의 상처나지 않은 질박한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마당은 하심(下心)이다.

가장 낮은 곳에 머물며 모든 것을 포월(包越)하는 존재가 마당이다. 마당은 그의 에고를 내려놓은 지 오래된 존재이며, 에고 같은 것에 처음부터 영원까지 휘둘리지 않는 무아의 존재이다. 이런 마당에서 한 며칠쯤 서성거리며 머물러 보라. 그러면 우리도 어느새 마당의 하심을 닮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런 마당을 아예 품에 안고 일상의 나날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라. 그러면 끝도 없이 아상(我相)과 아만(我慢)에 휘둘리던 우리의 마음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고, 언제나 칭얼대던 불만과 결여의 마음 또한 봄눈처럼 사라질 것이다.

또 다시 말해보자. 마당은 열림이다.

마당에선 굳이 비밀스러울 까닭이 없다. 유별난 프라이버시를 넘어선 세계가 마당이다. 모두의 땅이면서 어느 곳으로도 열려 있는 곳, 그런 곳이 마당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함께 사는 일과 열림의 마음으로 사는 일을 배운다. 사람들끼리의 어울림은 물론 천지인(天地人) 의 어울림을 알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과도하게 자기만의 방에 칩거해 온 자폐적인 사람들은 문을 열고 마당에 나가 볼 일이다. 마당은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열어놓고 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급(上級)의 삶을 몸소 보여주며 당신들을 단절된 지대로부터 시원하게 해방시킬 것이다.

마당은 부동(不動)이다.

부동은 부동심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부동심은 우주와 자연과 삶의 이치를 알고 그것과 계합되었을 때 찾아오는 축복의 선물이다. 마당은 그가 우주임을 아는 존재이다. 그리고 자연임을 아는 존재이다. 그뿐인가. 마당은 그가 인간들과 인간사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아는 존재이다. 그러니 마당이 부동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마당은 부동의 얼굴로 그 어떤 외물에도 끌려가지 않고, 그 어떤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는 초탈한 자의 무게중심을 갖고 있다.

그런 마당은 그것을 보는 일만으로도 우리들의 흔들림과 방황을 멈추게 한다. 마당은 당신들의 연약한 흔들림과 방황이 어리석음의 산물임을 가르쳐주며 지금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법을 알게 한다. 당신이 그토록 가고자 한 저쪽이야말로 저쪽 사람들이 그토록 떠나고자 한 이쪽임을 깨닫게 하며 더 이상 먼 곳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애태우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마당은 한곳에서 죽음의 시간까지 산다. 그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지만 어떤 곳도 그립지 않은 초탈의 존재이다.

마당은 맨얼굴이다.

마당에서 우리는 어떤 장식도 발견할 수 없다. 마당은 인위를 멀리하는 무위의 땅이며, 교언을 멀리하는 자연스러움의 땅이다. 시골집과 절집의 흙마당은 이런 맨얼굴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일체의 색을 넘어선 정갈한 대지, 일체의 수식을 배제한 절제의 땅이 그곳이다. 누가 뭐라 해도 마당 가운데 으뜸은 흙마당이다. 흙마당은 마당의 원조일 뿐만 아니라 마당 가운데 단연 최고의 품격을 지닌 존재이다. 흙마당은 얼핏 보면 투박하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그 진미를 아는 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예술품이다. 잘 쓸어서 단련된 마당, 그런 마당은 명경(明鏡)과 같다. 지나가는 이의 모습이 어슴푸레 비췰 것만 같고, 마당가의 나무들이 제 얼굴을 비취며 쉬고 있는 듯하다. 이런 흙마당에선 깊은 빛이 난다. 마당이 내뿜는 그 빛을 ‘영광(靈光)’이라고 하면 안 될까. 그런 마당에서 우리는 존재가 정화되는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마당이 성소(聖所)로 변하는 신성을 경험한다.

또 다시 말해보자. 마당에 대한 사색은 끝이 없다. 마당은 허(虛)이다.

마당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의 공간이고, 유용이 아니라 무용의 공간이다. 그것이 손바닥만한 것일지라도 마당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이 비움과 무용의 가치를 알고 향유한다는 것이다. 비움은 버림이 아니고 무용은 무가치함이 아니다. 비움은 채움보다 윗길이며 무용은 유용보다 멋스럽다. 비움과 무용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곳에선 풍류가 싹트기 시작한다. 실용성과 효용성을 넘어선 경지의 아름다움이다. 물론 실용성과 효용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삶에 이들만이 존재할 뿐 ‘허’가 부재할 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질식된다.

마당은 음덕(陰德)이다.

건물이 양(陽)이라면 마당은 음(陰)이다. 양은 겉으로 드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음은 속으로 숨어 있기에 깨어 있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다. 세상은 언제나 음양이 함께 움직이는 이중성의 땅이다. 그 이중성을 함께 관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존재의 전모를 파악하고 편협되지 않은 중도의 삶을 살 수 있다. 마당은 그런 점에서 음의 덕성을 알려주는 세계이다. 마당이 소중하다면 그것은 이 음덕의 힘이 발현되는 땅이기 때문이다. 건물의 아래쪽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발밑에서 이 마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다른 존재들을 돋보이게 하고 살려내고 있다. 우리 시대가 불안정하다면 이 음덕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양기가 과도한 시대, 그것이 우리들의 시대이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마당은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푸근하고 편안하게 해준다.

마당은 일터이며 놀이터이며 쉼터이다.

가을날, 시골집 마당에서 농부들은 타작을 하고 거기서 거둔 곡물들을 가을볕에 말린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모여서 김장을 하고 그 김장을 마당가에 저장한다. 또한 그 마당에서 할머니들은 수탉이며 병아리들에게 모이를 주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느라 분주하다. 봄이 오면 아이들은 일제히 뛰쳐나와 마당에서 놀기 시작한다. 그 놀이는 여름으로, 다시 가을로 이어지며 때로는 겨울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봄이면 밖으로 나와 마당가에 꽃씨를 뿌리고 그 꽃들을 가을까지 공들여 가꾸며, 여름 저녁이면 느긋한 마당식사를 즐기면서 하늘의 별들과 공중의 바람결을 감상한다. 이때 마당은 놀이터이자 쉼터이다. 이웃집 사람들이 마실을 오고, 우물물에서 갓 건져온 수박이라도 한 통 자르는 날이면 마당식사와 마당에서의 쉼은 한결 정취를 더한다.

마당에선 강아지와 새들과 함께 노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한 식구가 된 것 같은 이들과 눈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는 일은 이 땅에 인간 이외의 무수한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한다.

마당은 나무랄 데가 한 군 데도 없다. 오직 우리가 그들을 버렸을 뿐, 마당은 언제든지 우리에게로 다가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전처럼 변함없이 우리와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마당을 불러낼 때이다. 그 ‘오래된 미래’를 사랑할 때이다.

글 정효구(충북대학교 국문과 교수) 일러스트 어진선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