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백제의 고도(古都)인 충남 공주에서 초등학교 동창생의 여식 결혼식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 대전에 사는 친구들 다섯이 모여 한 차에 올라 공주로 향했다. 결혼식은 오후 1시부터였지만, 공산성(公山城)을 구경할 요량으로 일부러 친구들을 오전 10시에 집합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놀러 다니는데, 조금만 일찍 가면 공산성과 금강을 구경하고 예식도 본 뒤에 밥까지 먹을 수 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딨어?”

“그래, 맞다.”

“언젠가 밤에 이 근방을 지나치려니 공산성은 밤에 오면 더욱 운치가 있을 것 같더라고!”

친구들의 즐거운 이구동성 합창이 이어졌다. 이윽고 도착한 충남 공주의 관문에 위치한 공산성. 화사한 날씨답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꽤 많았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고 한다. 또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과 ‘공산성’으로 불렸으며,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도 불린 게 바로 공산성의 역사다.

공산성은 백제의 멸망 직후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였다고 한다. 아울러 조선시대엔 ‘이괄의 난(1623)’으로 말미암아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니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공산성인 셈이다. 공산성 성곽의 총길이는 2,660m로서 외성(外城)을 제외하면 2,193m나 되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을 자랑한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를 따라 공산성에 나들이 나온 어떤 아이는 뜬금없이 “여기가 우리나라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이야?”라는 말을 하여 그만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공산성은 어쩌면 중국의 만리장성을 능가하는 상징성과 위용까지 지니고 있다.

필자는 8년 전 모 문학전에서 수상을 하고 보너스로 중국으로 5박 6일간의 문화기행을 간 바 있다. 그리곤 만리장성에도 올랐는데 주지하듯 만리장성은 북쪽의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증축하면서 쌓은 산성이다. 또한 명나라 때는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자의적으로 만리장성이 공산성보다 못하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최초의 황제였던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에 천하의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천하를 통일해 놓고도 겨우 50세의 나이로 객사하기에 이르른다.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가 뒤를 잇지만 그러나 호해는 영리하지 못해 조고에게 죽음을 당하고 마지막 3세 황제엔 자영이 즉위하지만 그 또한 유방이 관중에 들어서자 항복을 했고 이후엔 항우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따라서 진나라의 역사는 일천(日淺)할 수밖에 없다는 셈법이 쉬 드러나는 것이다. 만리장성의 증축에 앞장섰던 명(明)나라 역시 주원장(朱元璋)이 원(元)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왕조지만 276년 동안 존속하다가 만주족 청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반면 백제는 B.C. 18년에서 A.D. 660년까지 한반도 남서부 지역을 점유하고 있던 실로 ‘우뚝한 국가’였다. 그러니까 무려 700년 가까운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막강 국가였다는 주장이다. 아무튼 날씨까지 너무도 화창한 데다가 공산성 정상에서 한 눈에 보이는 금강의 수려한 풍광까지 음미하자니 친구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친구들의 탄성에 고무된 필자는 친구들을 웃기자고 한 술 더 떠 아예 이런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옛날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그 바쁘신 와중에도 어느 날엔가는 여기 공산성에도 잠시 오셔서 이런 시조를 한 수 남기셨대?”

“교과서에선 안 배웠는데 그런 일도 진짜 있었니?”

친구들의 귀가 일제히 커다란 토끼 귀로 바뀌었다.

“공산성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한 잔 술의 내음은 나의 속을 끓나니….”

그러자 금세 친구들의 포복절도가 이어졌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곳과 인근에서 부여와 공동으로 ‘백제문화제’가 열린다고 하니, 올 가을에도 우리 또 오자.”

필자의 제안에 친구들도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한다. 한 친구는 공산성의 한가운데 위치한 천년 고찰 영은사 부근에서 냉이나물까지 쏠쏠하게 수확하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었다. 올 가을에 다시금 성대하게 열릴 ‘백제문화제’ 때는 가족들도 데리고 공주를 다시 찾을 요량이다.

글·사진 홍경석(대전시 서구)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