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다 못해 푸르른 청마의 빛깔

갑오년 올해를 육십갑자 음양오행으로 풀이하여 ‘청마(靑馬)의 해’라고 한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털이 푸른 청마가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며 세간에 말이 많다. 우리는 검은색을 띠면서 푸른색을 ‘검푸르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말을 ‘가라(加羅)’라고 하는데, 이 말은 털이 검다 못해 푸른빛이 돈다. 흔히 말하기를 청마는 없다고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청마라는 용어는 엄연히 존재한다. 『세종대왕실록』 49권(1430년) 9월 13일 2번째 기사에 보면 “병조에서 아뢰기를… 흑오명웅마와 철청웅마(鐵靑雄馬), 즉 주둥이도 검고, 눈도 검고, 불알도 검으며, 발뒤꿈치도 검은 것과, 결백웅마 등 세 가지를 거세를 금하고 번식에 쓰도록 하시기를 청하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兵曹啓 :… 黑五明雄馬 及鐵靑雄馬、烏.·烏眼·烏腎·烏蹄·潔白雄馬等三色… 亦禁作..息。 從之)”하여 수컷 청마에 대하여 번식을 간청하고 있다.

춘원 이광수의 수필 <우덕송>에서처럼 우리 선조들은 죽음, 공포, 절망, 암흑, 음흉함을 상징하는 검은 흑색(黑色)을 밝고 환하며 활기차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이고 희망적인 푸른 청색(靑色)으로 에둘러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지혜를 담아냈다. 더구나 ‘철(鐵)’자는 흑금(黑金)의 ‘쇠-철’자로서 쇠는 공기와 접하게 되면 까맣게 변하는 것을 상정하여 검은색을 흑(黑)이라 하지 않고 철로 표현하였다. 청마라는 순수한 한자용어는 고서에도 있다.

1544년 어숙권이 지은 『고사촬요』 중권에 마색(馬色)으로 기록된 청마, 일명 총마(.馬)와 허목이 1663년 펴낸 목장지도(牧場地圖) 중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의 청색마(靑色馬), 일명 총마가 그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학자에 따라서는 철청마를 청총(靑.) 또는 총마라 주장하기도 하고 청마는 바로 청총이라 역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장지도의 채색화 21마리 말 중에는 흑색이나 황색 또는 회색의 말은 있어도 말의 몸 일부라도 청색으로 채색된 말 그림은 없다. 이는 총마(.馬) 또는 청총이 피모가 새까만 가라로 태어나 1년에 2번씩 털갈이를 하면서 흰 털과 검은 털이 혼재하기 시작하여 서서히 피모가 흰색으로 변색되지만 전신이 순백색이 되지 않고 머리, 허구리, 등, 갈기, 다리, 꼬리 일부에 까만 털이 남아 있는데, 이는 백마 내지 회색마에 가까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여러 사실을 유추해 보면 청마는 가라이며, 철청마나 청총은 청마가 아니다. 왜냐하면 청총이든 철청마이든 이들은 모두가 태어날 때는 분명히 피모가 새까만 가라말 흑마(黑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마를 우리말로 ‘간자말’ 또는 ‘찬간자’라 하고, 한자로는 찬간자-방(.)을 써 방마(.馬)라고 하지만, 사실상 푸른 털을 가진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사전적 의미를 ‘온몸의 털이 푸르고 얼굴과 이마만 흰말’이라고 풀이하고 있어 국어사전에서조차 검은말인 청마의 모색에 혼동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라의 선발과 보존이 쉽지 않은 이유

말의 피모는 개체 식별의 중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말 자체의 위용을 나타내는 징표다. 제주마는 검은말 가라, 밤색 말 적다, 갈색 말 유마, 회색 말 고라, 흰색 말 백마, 얼룩말 월라, 원모에 백모가 섞인 부루, 백색 피모에 흑, 적, 갈색 털이 혼재한 총마 등이 있으며 이들 8종을 기본으로 다시 3~5개의 종으로 나뉘어 총 20~30여 종이 된다. 이렇게 말의 털색깔이 다양한 것은 모색을 결정하는 요인인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멜라닌세포자극호르몬(MSH), 멜라노코르틴-1-수용체(MC1R) 및 아구티신호단백질(ASIP)이 어미 말과 아비 말에서 자식 말에게 유전될 때 아주 다양하게 조합되어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피모가 흑색인 가라의 경우에도 여름철 영양상태가 좋거나 어릴 때 아주 짙은 흑색을 띠는 ‘흑가라’, 까마귀의 깃털같이 광택이 나는 ‘먹가라’, 봄에는 검은색이지만 점차 변색되어 적흑색을 띠되 특히 허구리가 적색인 ‘보통가라’, 봄부터 가을까지는 흑색, 겨울에는 ‘회흑색’, 그리고 봄철에는 회적색을 나타내는 ‘추가라’ 등 4가지 표현형이 출현하게 된다. 이들 가라 중 가장 최고로 치는 가라는 바로 먹가라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먹가라와 흑가라는 전문가조차 구별이 쉽지 않아 근간에 발간된 저서에서도 혼동하여 기록한 실정이다.

가라말은 1966년에 전체 제주마 중 8.9%를 차지하던 것이 1971년에는 7.3%로 줄어들고, 1989년에는 6.2%로 매년 감소되었지만 그래도 2002년까지는 이 수준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2011년에는 피모가 새까만 가라가 전체 제주마 중 0.16% 정도에 지나지 않아 1,000마리 중 한 두 마리에 불과한 아주 귀한 말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제주도에는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마에 흑가라나 먹가라는 없고 보통가라와 추가라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먹총이나 청총 그리고 제주마로 등록되지 못한 채 가라의 고유색을 간직한 말은 다수가 있다. 이렇게 된 이유를 보면 먹가라와 먹가라 사이에서도 먹가라나 흑가라 이외에 먹총이나 청총이 나오고, 백총 어미에게서 흑가라나 먹가라로 태어나 생후 3개월부터 털갈이를 하면서 먹총이 되고 다시 청총이나 백총이 되기도 하고 청부루가 되기도 하는 유전적 특성으로 가라의 선발과 보존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이런 점에서 청마의 해를 맞아 우리 모두는 그간 잊고 지냈던 제주의 검은 보물인 청마를 잘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를 새삼 다짐해야 되겠다.

글 이흥식(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사진 장덕지(제주마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