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입력 : 2014.02.27 05:30
김연아 은메달 사건으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공동 금메달 사건 조명… ISU, 12년 지났지만 바뀐 게 없어
당시 피겨스케이팅 페어에서 당초 러시아가 금메달, 캐나다가 은메달이었지만 프랑스 심판이 압력을 받아 러시아 선수들을 지지했다고 밝히면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까지 나서서 ISU(국제빙상연맹)를 압박해 결국 러시아와 캐나다 선수들이 공동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사태를 ‘봉합’했던 국제스포츠계의 대형 스캔들이었다. 판정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공동 금메달로 사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다분히 정치적이었지만 사태는 일단락됐다.
- 20일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김연아가 경기장을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솔트레이크에서는 넘어진 러시아 선수들이 클린 연기를 한 캐나다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가 나중에 공동 금메달이 됐다. 미국과 캐나다 중계방송사는 캐나다 선수들이 연기를 마치자 “완벽한 금메달” 연기라고 했지만, 채점 발표 후 러시아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자 “말도 안되는 판정”이라고 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러시아 선수들이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USA투데이를 비롯한 미국 신문들은 “공산 진영 국가 심판들의 냉전식 담합 판정”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9명 심판 가운데 공산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중국 폴란드 우크라이나 출신 심판 4명이 러시아 조를 1위로 채점했고, 서방 진영의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심판 4명이 캐나다 조를 1위로 채점했다. 이렇게 점수 분포가 갈린 가운데 승부의 키는 러시아 조를 지지한 프랑스 심판이 쥐었다.
- 20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 여자싱글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러시아가 아이스댄싱에서 프랑스를 지지하는 대가로 피겨에서는 프랑스가 러시아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다. 나중에 이 프랑스 심판은 자신의 발언을 전면 부정하기에 이르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상태였다. 결국 ISU는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고, IOC는 공동 금메달이란 해법으로 이 사태를 정리했다.
지금도 당시도 국제빙상연맹회장은 친콴타… 1994년부터 회장, 1996년부터 IOC 위원도
당시 ISU 회장은 지금도 회장을 맡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오타비아 친콴타(76)였다. 친콴타는 1994년부터 빙상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IOC위원은 1996년부터 맡고 있으며 2018동계올림픽 조정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 아이스하키와 스피드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했고, 화학업계 비즈니스맨으로 사회활동을 하다 스포츠 행정인이 됐다. 그는 회장 취임후 스포츠 마케팅 능력을 발휘해 ISU의 재정을 풍요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솔트레이크시티 사태 당시 그는 “피겨 스케이팅쪽은 잘 모른다”고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국제빙상연맹 친칸타 회장. 1994년 회장이 된 뒤 20년 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바뀐 것은 누가 채점했는지 모르게 익명으로 채점표를 공개하는 방식뿐이었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특정 심판이 어느쪽에 유리하게 채점했는지 공개함으로써 다음에 보상을 받는 담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치에선 오히려 이 익명 방식이 심판들이 마음놓고 담합할 수 있었던 안전장치가 됐다는 의혹과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판정에는 러시아 피겨연맹 회장 부인이 심판으로 참가했다. 상식이 통하는 민주화된 조직이라면 해당 국가의 선수가 출전하는데 이 같은 심판 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판정 조작 의혹으로 자격정지를 받았던 우크라이나 심판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아이스댄싱 경기가 열리기도 전에 선수들이 어떤 순위에 오를 것인지를 떠벌리다 그 이야기를 녹음한 테이프가 공개돼 자격정지를 당한 전력이 있다. USA투데이는 12년전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구 소련 국가 심판들이 냉전적인 판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12년전 올림픽 퇴출 경고까지 받았던 국제 피겨계가 똑같은 비판을 받은 것이다. 특정 국가가 무조건 자국 혹은 자기 진영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한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12년전과 똑같은 논란이 있어도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항변할 뿐 그 같은 의혹을 낳는 시스템을 고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현재 판정 시스템 9명 심판 익명성 보장, 누가 편향된 판정내렸는지 알 수 없어
미국 USA투데이는 22일 익명의 피겨계 고위 관계자를 인용, “심판진의 구성이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유리하게 돼 있었다”며 “이것이 러시아의 힘”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테크니컬 패널 또한 러시아 피겨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러시아인이 맡아 심판진이 소트니코바에게 고의로 높은 점수를 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고위 관계자는 “테크니컬 패널의 총괄자가 러시아인이라는 것이 그림을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 지난 9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피겨 단체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관람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국제빙상연맹 친콴타 회장(오른쪽).
피겨스케이팅은 크게 미국과 캐나다를 한 축으로 하고 그 반대쪽에 구소련 국가들이 강세를 보여온 종목이었다.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통해 아시아에서도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심판과 코치, 전문가들의 수와 영향력의 크기는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스포츠계가 유독 이렇게 부조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소수의 이너서클에 의한 폐쇄성이 주원인이다. 수십년 동안 영향력을 미쳐온 인물들은 때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기득권을 지키는 분야에서는 단합한다.
대규모 횡령 비리 아니면 사법 대상 되지 않아… 심판진들도 실력자들 영향력에 속수무책
검찰이 개입할 만한 대규모의 횡령과 비리가 아니라면 이들이 검찰이나 사법의 대상이 될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판정과 관련한 전력(前歷)이 있어도 몇년 뒤면 다시 돌아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김연아의 경기 후 올림픽을 2연패했던 카타리나 비트 등 피겨의 전설적인 선수 상당수가 나서서 “잘못된 판정이 나고 나면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반드시 이번 문제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자신들이 청춘을 바쳤고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피겨의 어두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강하게 담겼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도록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은 국제스포츠의 잣대로 보면 북반구 국가들중에서도 북유럽과 러시아,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회원국이 형성된 크지 않은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작은 이너서클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한 스포츠 종목이라고 해서 상식의 잣대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규모가 큰 부조리를 접하게 된다. 대표적인 종목이 축구다.
국제 스포츠계 이너서클 존재… FIFA, 2018 러시아·2022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도 부정 의혹
소치올림픽 기간 UN보다도 많은 209개의 회원가맹 협회를 자랑하는 FIFA(국제축구연맹)에서는 때 아닌 ‘동계 월드컵 논란’이 있었다. 2월9일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이 한 인터뷰에서 “2022년 카타르월드컵 개최 시기를 6~7월에 하긴 힘들다. 11월15일부터 1월15일 사이에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단 한번도 북반구의 겨울에 해당하는 11~2월에 열린 적이 없다. 월드컵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로 활약하는 유럽의 프로리그 일정이 쉬는 6월과 7월에 열렸다. 하지만 카타르 여름 온도가 50도에 이르고 무더위로 카타르 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론 줄곧 개최 시기를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카타르가 2022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2010년 12월3일 이었다. 당시 2018월드컵은 러시아, 2022월드컵은 카타르로 결론이 나왔다. 당시 국내외 언론의 분석은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블라디미르 푸틴(당시엔 총리)의 힘, 카타르는 엄청난 오일달러였다. 당시 카타르에 6표 차로 패배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일 백악관에서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지는 오일머니를 꼬집으며 카타르와 러시아를 선정한 것은 FIFA가 깨끗하지 못한 조직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당시 FIFA 선거는 집행위원 22명의 투표로 이뤄졌다.
그런데 이에 앞서 FIFA는 각국에 실사단을 보내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론은 “카타르는 조직적인 관점에서 월드컵과 같은 국제대회를 열 만한 능력이 없다. 숙박과 교통에 충분한 여유가 없다” 평가를 했다. 카타르가 경기장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는 안을 내놓았지만 6월에 월드컵을 열기 어렵다는 판정을 내렸었다.
중동 혹서기 6월 월드컵 개최라니…IOC보다 자금·마케팅 능력 큰 조직 FIFA 집행위원들, 자체 실사단 평가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선택
IOC보다도 자금과 마케팅 능력이 더 큰 조직으로 평가받는 FIFA의 집행위원들은 자체 실사단 평가에도 불구하고 카타르를 선택했다. 카타르 왕족들이 전세기로 FIFA 집행위원이 있는 나라들을 몇차례씩이나 방문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누가 봐도 제때 월드컵에 여는 것이 불가능한 곳을 개최지로 선정해 놓고 뒤에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주먹구구식 행정이 FIFA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개최 등 국제적인 현안을 고작 20명 안팎의 집행위원이 결정하는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IOC처럼 올림픽 개최지를 회원국이 모두 참가하는 총회에서 결정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를 FIFA가 귀담아 들었던 적은 없다.
FIFA 집행위원들의 과반수는 제프 블래터 FIFA회장의 영향력 하에 있는 사람들이다. 블래터 회장은 1998년 제 8대 회장에 당선된 이후 4선을 통해 16년째 FIFA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는 2002년 재선됐을 때 그의 심복이자 넘버 2인 사무총장으로 부터 뇌물 수수혐의로 고발당한 적도 있다.
블래터는 1974년부터 1998년까지 24년간 재임했던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 시절 사무총장 등을 맡으며 재정 분야를 담당했다. 그래서 그가 후임 회장이 됐을 때 아벨란제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다.
FIFA 집행위원 과반수 제프 블래터 FIFA회장 영향력하… 블래터 회장, 1998년 회장 당선된 뒤 4선을 통해 16년째 FIFA 좌지우지
유럽을 중심으로한 개혁파와 손잡고 2002 한·일월드컵 개최를 성사시켰던 정몽준 의원도 블래터에게 고배를 마신적이 있다. 정의원은 2011년 1월 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총회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직에 나섰다 5선에 실패했다. 정 의원의 단독 출마가 예상됐지만 알리 빈 알 후세인(36) 요르단 왕자가 나서 전세를 역전했다.
- 2010년 12월 2022년 월드컵 카타르 개최를 선언하는 블라터 회장. 당시 그는“뇌물 스캔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재투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블래터 회장이 집행위원과 회원국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돈 덕분이다. FIFA는 회원국에 100만달러씩의 축구발전 기금을 지원하며, 회원국들은 FIFA가 주관하는 연령별 남녀 월드컵 개최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다. 공공연히 자신의 지지의사를 흘리기도 하는 블래터가 손을 들어준다면 월드컵 개최가 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탐사 전문기자인 앤두루 제닝스는 집요하게 스포츠계의 비리를 파헤치는 역작들로 주목받았다. 1992년에는 IOC위원들이 막강한 파워를 앞세워 돈벌이에 나서는 ‘올림픽의 영주들(The Lords of the Rings)’, 2000년에는 2002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의 비리를 폭로한 ‘거대한 올림픽 사기(The Olympic Swindle)’, 2006년에는 블래터와 전임 아벨란제 FIFA회장의 부정을 폭로하는 ‘파울, FIFA의 비밀: 뇌물(FOUL! The Secret World of FIFA:Bribes)’란 책을 내놓았다. 그의 역작들은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긴 했지만 스포츠계의 변화는 위에서 지적한 일들처럼 서서히 진행되거나 정체돼 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스포츠계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라”고 주문한 국내 스포츠계가 어떤 변화과정을 걷게 될지 주목되는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