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05 05:51
[최종덕 문화재청 국장 폭로]
문화재청 숭례문 공사 완료땐 "대장간서 전통 못 만들었다"
실제론 불타고 남은 철물 재생
◇국민을 우롱한 대장간 퍼포먼스
2011년 2월 10일 숭례문 복구공사 현장. 한 쪽에 마련된 '숭례문 대장간'에서 실제 문루(門樓) 복원에 사용될 못 등 철물 제작 시연이 벌어졌다. 고용노동부 지정 고대제철 분야 숙련 기술 전수자인 이은철씨가 한복 입고 쇠를 두드리며 설명했다. "12시간 이상 사흘 밤낮을 끓여 흘러나온 쇳물이 무쇠가 되고, 바닥에 가라앉은 쇠는 괴련철이 됩니다. 숭례문에 쓸 쇠못과 정 등을 만드는 데 쓰는 것이 바로 괴련철입니다."
- 2011년 2월 10일 숭례문 화재 3주년을 맞아 숭례문 복구 현장에 마련된 ‘숭례문 대장간’에서 장인(匠人)들이 전통 철물 제작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이명원 기자
책은 한 달 뒤 숭례문 현장사무실에서 이씨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열린 전문가 자문회의 상황도 공개했다. 위원들은 "상형로(箱型爐·장방형의 전통 용광로)에 철광석을 넣고 제련한 것은 잘못이다. 상형로에는 사철(砂鐵)을 사용해야 한다" "A씨가 선철을 뽑기 위해 사용한 원형고로는 높이가 너무 높다. 조선시대 고로의 높이는 2m를 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씨도 전통 철물이 숭례문에 쓰이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씨는 본지 통화에서 "내가 기술이 없었던 게 아니라 전통 기법으로 제작하다 보니 작업 속도가 늦어졌다. 당장 목공사를 시작해야 해서 문화재청이 제작 중단을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숭례문 복구공사를 완료한 문화재청이 "대장간을 만들어 못 등을 직접 생산했다"고 발표한 것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씨는 "인건비 등으로 문화재청을 통해 1억2000만원 정도를 받았다. 포스코에서 지원받은 3억원 중 나머지 1억8000여만원은 현장에 숭례문 대장간을 짓고 홍보하는 데 쓰였을 것"이라고 했다. 전통 목조 건축물에서 철제 못은 추녀, 기와 등을 고정하고 건물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숭례문 복구에는 못, 꺾쇠 등 철물 31종 3만7563개(6.3t)가 쓰였다. 최 국장은 4일 본지 통화에서 "대장간에서는 기존에 불타고 남은 철물을 다시 펴고 재생하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신 대목장 제재소에서 켜온 판재를 썼다"
최 국장은 또 "목재를 다듬는 치목(治木)은 전통 기법으로 했다"는 기존 발표도 거짓이라고 폭로했다. 공사가 한창이던 2011년 신응수 대목장은 한 달간 목수들을 철수시켰다. 통나무를 전통 기법으로 톱으로 켜다 보니 노동력이 많이 들고 속도가 더딘데 공사 단가가 턱없이 적다는 이유였다. 최 국장은 "S(신 대목장을 지칭)는 이후 '목공사를 재개하겠다'고 하면서 '다만 이후 들어오는 나무들은 통나무가 아니라 제재목으로 들여오겠다'고 선언했다"고 썼다.
최 국장은 숭례문 복구에 쓴 판재와 각재 상당수를 숭례문 복구공사 현장이 아니라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우림목재에서 켜왔다고 책에서 밝혔다. 경찰은 숭례문 복구에 러시아산 나무가 쓰였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 중이다. 책을 검토한 문화재계 원로는 "이미 끊어진 전통 기법으로 복원하겠다고 공언해놓고 '5년 내 복원'이라는 시간제한에 걸려 벌어진 일 아니겠나. 단청 훼손 등 부실 복구 논란에 러시아산 나무 의혹을 조사하던 박모 교수의 자살에 이어 '대장간 쇼'까지 밝혀졌다. 숭례문 복원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나 싶어 씁쓸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