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인생이모작’이란 단어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땅에서 1년에 작물을 한 번만 키우지 말고 두 번 키우고 두 번 거둬 수확량을 늘리듯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은퇴 후 새로운 제2의 일을 찾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보람있는 인생을 가꿔보자는 취지에서 이 말이 생겨난 것 같다.

그렇다면 ‘문화이모작’은 어떨까. 아마 들어본 이들도 있겠지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문화이모작 또한 인생이모작과 영 다른 말은 아니다. 주민 스스로 지역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자신이 생활하는 터전에 다시 한 번 문화의 씨앗을 뿌리게 하는 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01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올해로 4년차로 접어든 문화이모작 사업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단위로 기초과정에 485명, 집중과정에 248명의 수료자가 배출됐으며, 총 3억1천만 원의 지원금액 하에 41개의 사업이 진행됐다. 다양한 사업이 기획·실행된 만큼 뜻깊은 성과 또한 많이 창출됐고, 이러한 성과를 나누기 위해 지난 1월 17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지역문화성과공유포럼이 열려 그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지역문화성과공유포럼이 개최된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로비에는 지금까지의 문화이모작 사업 내용과 성과물들이 전시돼 포럼을 찾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포럼에서는 주민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문화이모작 사업의 성과 및 우수 사례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또한 우수 사례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및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상의 시상식도 이뤄졌다.

장관상을 받은 ‘할매, 할배 학교갑시다!’, ‘날아라, 청개구리’, ‘마음1장 돌1장 옹기종기 돌담길’의 3팀과 원장상을 받은 ‘도시로 간 농부’, ‘부비고 프로젝트’ 등 총 5팀이 성과 발표에 참여했는데, 우수사례로 선정된 만큼 모든 기획사업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찾아볼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3팀(할매 할배 학교갑시다!, 날아라 청개구리, 마음1장 돌1장 옹기종기 돌담길)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2팀(도시로 간 농부, 부비고 프로젝트)의 시상식을 마친 뒤 박광무 원장과 수상자들이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례 공유 발표에 앞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박광무 원장은 “오늘 이 포럼은 사업을 시작한 지 4년차 되는 해를 맞아 그동안의 성과와 사례를 공유하고 문화기획자의 성공 비결을 나누는 장이 될 것”이라며 “삶의 현장에서 숨어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문화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우리 삶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창조적으로 기획 및 운영해주신 문화기획자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덧붙여 “무엇보다 문화를 기획하고 일궈나가는 과정에서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화 인재를 키우고 그들의 능력을 북돋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문화이모작 사업은 바로 그와 같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럼에서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경남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의 ‘할매, 할배 학교 갑시다!’였다. 14년 된 폐교를 다시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에서 출발했다. 이 사업을 통해 마을 어르신들은 문예교실에 참여해 매주 저녁 시(詩)를 배우고 작품을 쓰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남 거창군 ‘할매, 할배 학교갑시다!’의 기획자인 김훈규 씨(왼쪽)와 박순규 사업추진단 대표(오른쪽)가 그들의 문화이모작 사업 성과물 앞에 서있는 모습이다. 김훈규 씨는 “오랜 세월동안 방치된 폐교의 공간을 활용해 학교를 다시 살리고 싶었고, 이 사업을 통해 특히 마을 어르신들은 직접 글을 써봄으로써 자신감을 많이 얻으셨다.”며 매년 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폐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으로 변신한 하성초등학교에서는 백일장이 열렸고 이 때 출품된 작품들은 한 권의 책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담아 글을 쓰고, 또 그 글이 책에 실리고, 마을 학교에 전시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어르신들에게는 희망과도 같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백일장에 참가했던 어르신이 포럼에 참석해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성초등학교 3회 졸업생이시라던 어르신은 시 낭송 후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사례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의 ‘날아라, 청개구리’였다. 연출을 하다가 귀촌했다는 기획자 서정호 씨가 산골에 살고있는 아이들에게 문화 환경을 조성해주고 방송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글쓰기 교실과 미디어 교육을 통해 시골 아이들이 팟캐스트(podcast)를 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고 한다.

아이들이 점점 흥미를 갖고 의욕적으로 참여하면서 공개방송까지 열 수 있게 된 ‘날아라, 청개구리’팀은 강원일보, 뉴시스, 연합통신, EBS에 소개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게 됐고, 주목할 만한 팟캐스트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주축이 돼 진행한 이 사업은 점차 마을의 소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가고 있다고 한다.

기획자 서정호 씨는 “이 팟캐스트 방송이 다른 지역에서도 마을의 공동체 문화를 다시 활성화시키고 각 마을을 홍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앞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교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귀촌하기 전에 연출가(PD)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날아라, 청개구리’팀의 서정호 씨가 사례 발표를 하는 모습. 그가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창출해낸 성과는 말 그래도 문화이모작의 인생을 멋지게 이뤄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의 ‘도시로 간 농부’팀은 자신을 귀농 8년차인 초보농부라고 소개한 기획자 송민우 씨의 사례다. 농촌에서의 삶을 꿈꾸며 귀농·귀촌을 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사람책 토크쇼 형태의 ‘도시로 간 농부’를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한다고 한다.

그는 이번 사업을 통해 “사업에 참가한 지역민들이 9명의 사람책이 돼 과거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며 “최근 고탄 지역으로 귀농·귀촌하신 분들이 처음에는 지역민과의 교류를 어려워했지만 이 문화이모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점 또한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도시로 간 농부’팀은 향후 귀농·귀촌의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을 고민 중이며 임대주택이나 임대농지 등의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 춘천 ‘도시로 간 농부’의 기획자 송민우 씨가 수상하는 장면이다. 이 사업에 참가한 도시민들에게는 귀농·귀촌의 생생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고, 사업 참가 지역 내 귀농·귀촌인들에게는 소통 창구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그는 이 사업의 가장 큰 성과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 만난 다양한 사례에서 ‘문화이모작’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볼 수 있었다. 분명 지역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그를 통해 문화 활동을 기획 및 실행하는 과정에서 지역민들이 ‘문화기획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전문 문화기획자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또한 창조적으로 사업을 기획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성과를 창출해낸 사례들을 통해 우리 지역문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마을주민, 마을리더, 시민활동가, 인생이모작 준비자, 예비 귀농귀촌인 등 문화 활동을 꿈꾸는 이들이 기초교육부터 집중교육, 실습과정을 거치며 지역에 대한 애정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현해볼 수 있는 문화이모작 사업이 2014년 올해도 꼭 풍년이 들기를 기대해 본다.

정책기자 한아름(프리랜서) hanrg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