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7 05:37
["국산 소나무로 문화재 복원" 목소리 커도 쓸 나무 없어]
광화문 15%, 경복궁 27%… 복원에 수입 소나무 사용
일본처럼 비축林 조성… 목재 조달 장기대책 필요
지난달 28일 광화문 2층 문루. 신응수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이 손가락으로 위쪽 충량(기둥머리와 들보 중간에 걸치는 보)을 가리켰다. 녹색 단청을 칠한 면이 흠 없이 비교적 매끈했다. 반면 국산 소나무를 쓴 창방은 사선으로 굵게 갈라져 있었다. "국산 소나무는 옹이가 많아서 나뭇결도 휘어져 있어요. 갈라져도 옹이를 비켜서 갈라지니까 크게 갈라지기 쉽지. 반면 미송은 직결(直結)이라 상대적으로 얇게 직선으로 갈라져요."
신응수 대목장 얘기처럼 지금 광화문을 떠받치는 대들보에는 북미산(産) 소나무인 미송(더글러스 퍼)이 많이 들어갔다. 문화재청이 백두대간을 샅샅이 뒤져 소나무 26그루를 간신히 확보했지만 대들보에 쓸 만한 크고 굵은 나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화문에 외국산 소나무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문화재청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2011년 발간한 보고서 한 귀퉁이에 '광화문 복원에 쓴 나무의 15.19%는 북미산 소나무'라고 슬그머니 밝혔다. 고주(高柱)·보 같은 크고 굵은 부재를 구하지 못해 전체 17만8013재 중 2만7097재가 북미산 소나무를 수입해 썼다.
- 왼쪽 기둥은 국산, 오른쪽은 북미産 소나무 - 울산시가 2011년 9월부터 공사비 100억원을 들여 복원 중인 태화루 현장. 지난달 말 찾은 태화루에 아직 단청을 하지 않은 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왼쪽 옹이가 많이 보이는 기둥이 국산 소나무이고 오른쪽은 북미산 소나무 더글러스 퍼(美松). 전문가들은“더글러스 퍼가 국산 소나무보다 내구성이 더 강하다”고 분석했다. 내년 3월 완공될 태화루 복원 공사엔 더글러스 퍼가 전체 15% 쓰인다. /남강호 기자
◇외국산=부실 복원?
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역사적 목조 건축물의 수리·복원 사업에 사용될 목재는 축조 당시에 사용된 동일 수종, 동일 품질의 재목, 동일 축조 기술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조선의 목조건축은 국내산 소나무로 복원돼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희망 사항이자 원칙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토로한다. 재질 특성상 목조 문화재는 수리가 자주, 많이 필요하지만 대경목(大徑木·지름 45㎝ 이상 큰 나무)을 구하기가 갈수록 힘들기 때문이다. 병해충과 기후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성 고사 현상으로 소나무 숲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도 한 원인. 문화재 수리 표준시방서에도 '불가피한 경우 동등 이상의 수입 목재를 대체해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본지 취재팀이 경복궁 근정문, 근정전, 흥례문 등을 돌며 기둥·서까래 등 나무 상태를 점검한 결과 고종 때 중건한 굵은 기둥은 3㎝ 이상 갈라진 곳도 보였다. 신응수 대목장은 "원래 통나무는 다 갈라지게 마련이다. 갈라진 부분은 톱밥으로 메우거나 다른 나무를 끼워서 틈을 메운다"고 했다. 반면 지난 2003년 복원한 근정전 경내의 네 기둥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았다. 공사한 지 10년이 지났으나 미세하게 금이 가 있을 뿐 갈라짐이 거의 없이 매끈했다. 모두 북미산 소나무 더글러스 퍼를 사용했다.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경복궁 1차 복원 사업에 사용된 5600㎥의 목재 중 산림청 국유림에서 조달한 목재는 288본(340㎥), 6%뿐. 산림청은 2001년 39곳(면적 918ha)에 총 22만그루(약 9만5500㎥)의 소나무림을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우리도 매번 복원 때마다 나무를 급구할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일본 사례는 좋은 교훈이다. 미에(三重)현의 이세(伊勢)신궁은 서기 690년부터 20년에 한 번씩 기존 건물을 부수고 그 옆 터에 똑같이 고쳐 짓는다. 이런 전통이 1300년간 지속된 데는 건축용재 조달용 비축림이 있다. 야마모토 히로카즈 도쿄대 교수는 "20년마다 10만본(10만㎥)의 식년천궁용 목재를 조달하기 위해 5626㏊의 비축림에서 편백나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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