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효사상의 원原뿌리와 정맥

우리 민족은 상고上古이래로 효를 하늘의 뜻으로 알고 정성으로 실천할정도로 큰 덕목으로 섬겼다. 이른바‘환웅칠훈桓雄七訓’은 단군조선의 통치원리이자 교육이념으로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그 조목들은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것으로, 그 조목을 살펴보면 부모에게 지극히 효도해야 하며 늙은이와 어른을 높이 받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단군왕검의 팔조교八條敎에서도 부모 섬김을 하느님 섬김처럼 여겼다. 결국 우리 조상을 낳아준 이가 하느님이기 때문에 천손민족인 우리 민족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 것이다.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왕검으로 전승되어 온 우리의 효문화는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로 이어졌으니, 중원에서도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이라 칭하였던 것이다.

한국교육사를 회고해 볼 때 공식적인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기원전 372) 때 공자의 사상이 전해졌고, 그해에 국립대학 격格으로 태학太學이 세워져 문文, 사史, 철哲교육이 비롯되었다. 태학에서는 오경五經중심의 경학經學교육을 실시했는데 현대로 말하면 곧 철학교육으로, 그 핵심은 인효仁孝가 중심이 된 교육이었다. 이러한 인효사상은 삼국시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고구려 태학에서부터 백제, 신라 등 삼국시대로 전승되었으며, 고려 말에 주자학이 도입되면서 한말韓末까지 성균관을 중심으로 한 관학의 중심사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효사상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큰 수난을 겪게 된다. 중국의 역사왜곡과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 교육정책이 우리 효사상의 원原뿌리와 정맥을자르더니, 조국이 광복되자 이번에는 서구사상의 강한파도가 밀려들어와 효사상과 노인공경사상을 흐려놓았다. 이로 인해 인효사상의 부재 속에 근대화가 진행된 한국 사회는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율이 세계적으로 높고, 부모를 부양하지 않고, 패륜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4대악(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이 극성하니 국민들의 삶이 불안하고 미래가 암담하다고 이구동성으로 걱정하고 있다.

효행의 실천방법

우리 조상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은 몸을 모시는 양구체養口體의 효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정신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양지養志의 효도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효도를 하다보면 자신의 심성心性도 더욱 착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격이 건전하게 성장되기 마련이며 어느덧 지도자적 인성仁性도 함께 길러진다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효사상의 본질을 들여다보자면 안충安衷의 효, 쇄우鎖憂의 효, 순지順志의 효, 양체養體의 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안충安衷의 효라 함은 안安은 온순하고 절도에 맞는 것이며, 충衷은 마음의 곡진曲盡함이다. 요컨대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하느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단군왕검의‘팔조교八條敎’의 인효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쇄우鎖憂는 부모의 근심걱정을 막기 위해 좋지 않은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즐겁지않으면 마땅히 평화롭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즐겁지 않은 원인이 생긴 다음에 근심을 없애려 하는 것 보다는 부모님의 귀에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순지順志의 효란 부모님 뜻을 잘 헤아려 순종하는 것이다. 즉 어버이의 뜻과 기질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양체養體의 효는 부모의 몸을 살펴서 무병하게 봉양하는 것을 이른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分身이니 지성으로 봉양함이 도리이다. 이러한 효정신이 유교교육을 통해 계승되었으니 율곡의『격몽요결』에 보면‘지금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양육되고서 자기의 힘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 만일에 이와 같이하여 문득 세월만 보낸다면 끝끝내 정성껏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몸소 집안일을 주간하여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갖춘 다음에야 자신의 직책을 다했다고 하겠다. 만일에 부모께서 굳이 들어주지 않아서 비록 집안일을 주간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당연히 일을 주선하고 보조해서 힘을 다하여 맛있는 음식을 갖추어 얻어서, 이로써 부모의 구미에 맞도록 하는 것이옳다. 만일에 마음과 생각이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있다면, 맛있는 음식을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적고 있어 상고시대의 효행이 잘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주어도 부모봉양은 잘하지 못하고있다. 독거노인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의지할 곳 없이 곤궁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노인이 속출하고 있으니 조상의 효사상의 정맥이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고 여겨진다.

경로문화 정착을 위한 과제

조선 세종대왕은 나라에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모든 조신朝臣들을 모이게 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은가를 논의하였다. 예조판서가 그 아들의 목을 쳐서 세종로에 걸어 두면 이러한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건의하자 세종대왕은 화를 내면서 교화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설순을 시켜『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저술케하였다. 그 내용은 한중韓中역사에서 가장 모범된 효자, 충신, 열행자의 전범을 보여 미풍양속의 뿌리를 심고자 한 것이다. 그 효과가 매우 커서 중종13년에는 장유長幼와 형제의 전범을 모은『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가 편찬되고, 정조21년에는 삼강三綱과 이륜二倫을 합친『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가 편찬됐다. 모범적인 효자, 충신, 열녀의 행실을 등재하여 전범으로 삼아 국가정책에 반영하니 저절로 미풍양속이 바로잡히고, 법法또한여기에 맞춰 제정되었으니 도덕의 가치가 절대적인 사회가되었다.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민족말살 정책도 호주제를 폐지하지 못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늘날 청소년 인성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단적으로 말해서 자녀양육의 원原뿌리를 망각하고 일만 년에 가까운 한국 전통사상의 정맥正脈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폐륜행위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세종대왕의 인효교육을 위한 결단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국정과제로 효교육을 위한 결단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효문화와 교육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공자로 계승되어 공자의 인효仁孝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말韓末까지 뿌리가 지켜졌고 유교가 발달했던 조선조에는 삼강과 오륜으로 정치와 교학의 체계를 삼았으니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세찬 서구사조의 비판 없는 수용으로 규범이 무너지고 본질이 망각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의 국정과제와 교육정책방향은‘효문화와 인성’에 역점을 두어야 할 때이다.

글. 김익수 ((사)동양효문화연구원 이사장, 철학박사) 사진. 문화재청, 호암미술관, 서울대 규장각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