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구호와 함께 화재에서 5년 만에 돌아왔지만 곧바로 '부실복구' 파문에 휩싸인 국보 1호 숭례문. 단청은 벗겨지고 나무엔 금이 가고..문화재청장은 옷을 벗었습니다.
'전통 기법으로 서둘러 공사를 마치라'는 애초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목표. 결국은 예견된 수순이라는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진단인데요..
시민들은 국보 1호를 잃은 상실감에 엉터리 복구라는 절망감까지 또다시 떠안았습니다. 숭례문은 이제 어찌해야 하나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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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숭례문.
부쩍 쌀쌀해진 탓인지 광장과 주변이 더욱 황량해 보입니다.
무심히 가던 길을 재촉하는 행인들,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 관광객 정도가 이따금 눈에 띕니다.
지난 5월 복원 공사 준공 이후, 주말마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됐던 문루 상부 관람.
겨울철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달부터 관람이 중단됐습니다.
최근에는 숭례문 광장 내에서의 언론사 촬영과 현장 취재마저 전면 금지됐습니다.
◀ＳＹＮ▶ 숭례문관리소 관계자
"숭례문 관련 촬영, 자료요구 일체를 지금 12월 31일까지 중단한다고 일괄로 공지를 해놨고 저희도 지침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숭례문에 다시 보이지 않는 장막이 둘러쳐지고 있습니다.
부실 복구의 정황이 점입가경으로 드러나면서 부터입니다.
정부는 당초 '전통 방식으로 완벽하게 복구하겠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참담한 결과는 화재 당시의 절망감 못지않습니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 6백년 역사.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충격은 울분으로 표출됐습니다.
◀ＳＹＮ▶ 당시 시민
"억장이 무너지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것 같아. 국보 1호인데..자존심이 무너지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국민적 염원이 담긴 복구공사.
그렇게 5년여 만에 다시 태어난 숭례문은 벅찬 감격 속에 힘차게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 뒤 6개월.
날림 공사의 흔적은 1,2층 누각에 칠해진 단청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여기저기 단청이 뜨고 벗겨진 부위가 벌써 150군데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현상은 지난 5월 준공식 직후부터 시작됐습니다.
◀ＳＹＮ▶ 김태년 민주당 의원/국회 국정감사·지난 달 17일
"5월 26일입니다. 숭례문 관리소의 방호원이 순찰하다가 발견했다는 거죠?
◀ＳＹＮ▶ 변영섭/전 문화재청장
"네."
◀ＳＹＮ▶ 김태년 민주당 의원/국회 국정감사·지난 달 17일
"청장님 언제 아셨어요?"
◀ＳＹＮ▶ 변영섭/전 문화재청장
"그렇게 오래되지 않습니다."
◀ＳＹＮ▶ 김태년 민주당 의원/국회 국정감사·지난 달 17일
"보도되고 아셨죠?"
◀ＳＹＮ▶ 변영섭/전 문화재청장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단청에 쓰인 안료에 접착제로 섞인 일본산 아교의 농도가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보통 단청은 녹색의 바탕을 먼저 칠하고 그 위에 다시 각종 문양을 채색합니다.
이 때 목재 표면과 직접 맞닿는 바탕 층의 아교 농도가 그 위에 덧칠되는 채색층보다 진해야 접착력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이번 복구에서는 위쪽 채색층의 농도가 더 짙어 단청이 벗겨진 것으로 잠정 분석되고 있습니다.
◀ＳＹＮ▶ 박미례/서경대 교수
"물감은 여기에다가 아교를 탔으면 이 물감이 마르면서 잡아당기는 장력이 있잖아요. 이게 상지도료(위쪽 채색층)의 장력이 더 강하게 된 거죠"
하지만 녹색으로만 채색된 바탕층에서도 일부 벗겨짐이 발생해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단청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각의 기둥으로 쓰인 목재에선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큰 균열이 생겼습니다.
소나무를 벤 뒤 10년 정도 말렸어야 하는데 건조 기간이 너무 짧아 벌어진 일입니다.
◀ＳＹＮ▶ 신응수 대목장/복구 공사 총괄
"그 기둥 터진 나무는 문화재청에서 베어온 거라고요. 공사 기간은 짧고 나무속까지 마르지 않은 걸 썼으니 터지는 건데..."
전통 기법으로 구웠다는 기와 역시 물 흡수율이 너무 높아 동파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관련자를 문책했고, 이어 문화재청장이 전격 경질돼, 퇴임식도 못 하고 짐을 싸는 등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단청 작업을 진행한 홍창원 단청장은 문화재 수리 자격증을 건설업체에 빌려 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복구공사를 총괄하는 도편수를 맡았던 신응수 대목장도 외부와의 연락을 사실상 끊는 등 복구공사 책임자들도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돌이켜보면, 예견된 비극이었습니다.
숭례문 화재 2주기였던 지난 2010년 2월10일.
'전통 방식 복구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돌과 나무, 기와를 다루는 작업자들이 하나같이 전통 복장을 한 채 수작업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자리를 뜬 뒤에는 가림막 안에서 굴착기로 석축을 파내고 기중기로 돌을 쌓는 장면들이 포착돼 '전통 복원'이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ＳＹＮ▶ 황평우 소장/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우리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기초 터 잡고, 그 다음에 거기 석축 쌓는거 잖아요? 석축을 크레인으로 쌓으면서 그게 무슨 전통기법이에요. 첫 날 쇼만 했지"
단청 작업의 경우 당초 문화재청은 "천연단청안료의 생산과 수급, 사용 가능성 등을 확인했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진행된 작업은 딴판이었습니다.
단청 작업의 수장조차 무슨 안료를 쓰는 지 사전에 몰랐다는 황당한 해명이 나왔습니다.
◀ＳＹＮ▶ 홍창원 단청장/단청 작업 총괄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어떤 안료를 사용하라는 지침이(미리) 정해졌어요."
'전통 기법'이란 게 대체 뭔지, 그 고증 절차부터 부실했다는 얘깁니다.
◀ＳＹＮ▶ 임영주/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이사장
"다른 분야도 다 그랬지만 전통기술이 다 맥이 끊겼거든요. 안료가 제대로 개발된 다음에 하는 게 원칙이죠. 전통적인 안료 사용법을 모르니까, 갑자기 아교를 쓰라 그러니까 문제가 생긴 거예요"
숭례문 복구공사의 당초 준공 날짜는 올해 2월 10일이었습니다.
화재 발생 5년째이자, 착공 3년째 되는 상징적 의미라는 게 정부 설명이었지만, 속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퇴임 전에 공사를 마무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3년 전 광화문 복원 당시, 공사 직후 현판 목재에 금이 갔을 때도 "G20 정상회의 전에 마치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뒷말이 나왔습니다.
정권 치적 홍보에 집착한, 무모한 조급증이 빚은 부실공사였던 것입니다.
목조 건축에 반세기 잔뼈가 굵은 중요 무형문화재 74호 전흥수 대목장.
부실 복구 논란이 불거지면서 언론의 숱한 인터뷰 요청에 좀처럼 입을 떼지 않던 그도, 개탄스런 현실을 지켜보다 못해 긴 침묵을 깼습니다.
◀ＳＹＮ▶ 전흥수 대목장/중요 무형문화재 74호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돼. 목수는 알잖아요. 전통 기법으로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기술자는 일하는 사람이 기술자지, 그러니까 맡겨놔야 돼요. 몇 월 몇 일 까지 하라고 하지 말고.."
"모든 공정에 전통 방식을 동원하겠다는 정부 계획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며 쓴 소리를 이어갔습니다.
'전통기법으로 하되 빨리 복구하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앞뒤가 안 맞는 목표라는 겁니다.
◀ＳＹＮ▶ 전흥수 대목장/중요 무형문화재 74호
"시골에서도 집 한 채 지으려면 몇 년씩 지었잖아요. 전통방식으로 하는 단가(예산)를 주면 10년, 20년 할 것 아니야, 정밀하게...시간을 제한되게 주고 전통방식으로 하라고 하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안 그래요?"
그럼 숭례문 재복원은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가장 심각한 단청의 경우, 전면적인 재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ＳＹＮ▶ 임영주/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이사장
"부분만 땜 단청하면요 색깔이 나중에 옆에 하고 다 다르게 나올 거다. 점점 박락현상이 더 넓어지면 그땐 걷잡을 수 없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다 다시 닦아내고 다시 하는 것이 낫다...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각 기둥 목재들의 갈라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안조차 거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ＳＹＮ▶ 황평우 소장/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대형 목재, 기둥이나 들보로 쓸 것, 이런 것은 국가가 미리 확보해두는 시스템이 없어요. 우리는 그때그때 수급해오잖아요. 미리 좀 수급을 해서 자연 건조시키고 있다거나 이렇게 해야죠."
현재 우리 문화재 관리 실태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악몽은 숭례문에 그치지 않을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ＳＹＮ▶ 황평우 소장/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우리나라 문화재 보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비밀주의..자기네들끼리만(논의를) 해요. 자기네들끼리 만들어놓고 자기네들끼리 진단하고 자기네들끼리 공수하고 그래요. 소위 마피아라는 거죠"
실제로 정부의 위촉을 받아 활동했던 민간 전문가들은 소신껏 일하기 어려웠다고 전합니다.
◀ＳＹＮ▶ 前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전문가)의견 수렴 한마디 없이 (숭례문 복구) 했잖아요. 결정하고.. 문화재청이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거고. 000가 잘려야 문화재청이 사는 거예요. 그럴 정도로 (공무원들이) 무소불위였어요."
어이없이 국보 1호를 잃어버린 국민적 상실감에 '헛된 구호'로 절망감을 덧씌운 정부.
문화로 치적을 쌓으려던 그릇된 욕심이 빚어낸 참사였습니다.
문화를 정치의 영역에서 놓아줘야 한다는 것, 조급하지 말라는 것, 상처투성이의 숭례문이 던지는 교훈입니다.
허유신 기자
출처: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