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에 남겨진 첫 번째 보물 신안 난파선, 해상교역의 흔적을 찾다

난파선은 인류 문화와 교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76년부터 1984년에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바다에서 세계가 놀랄만한 난파선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 발굴은 우리나라 수중 발굴 역사상 최초의 발굴이며, 한국, 중국, 일본 등을 비롯해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신안 해저유적 발굴은 1975년 한 어부의 우연한 신고가 계기가 되어 무려 8년이라는 기간 동안 발굴이 진행되었다.

발굴 결과, 난파된 후 650년 동안 깊은 개펄에 묻혀 있었던 신안 보물선의 실체가 드러났다. 신안선은 14세기 초 중국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원양무역선으로 밝혀졌으며, 선박에서는 중국 용천요, 경덕진요, 정요, 균요, 건요, 길주요 등에서 14세기 전반에 생산된 20,661점의 도자기가 쏟아져 나왔다. 특희 신안선에서는 출항지가 경원(현재 중국 浙江省寧波)임을 밝히는‘청동 저울추’와 신안선의 출항 시기가 1323년이고 최종 목적지가 일본 교토의 도후쿠지(東福寺)라는 단서가 적힌‘목간’이출토되었다. 목간에는 화물의 목적지 이외에 항해시기, 무역품의 선적 날짜, 소유주, 상품의 종류, 상품의 수량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신안 보물선”이란 타이틀에 알맞게 28톤(약 800만점)의 중국동전과 중국에서 생산된 금속정, 목제품, 금속공예품 등과 열대산 자단목(고급 원자재로서 가구 등을 만들거나 태워서 향을 내는 재료로 사용), 후추, 산수유, 여지, 매실, 호두, 개암, 계피 생강 등 26종류의 향신료와 약재가 발견되었다. 향신료나 약재 중에는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것도 포함되어 있어 해상 교역의 범위를 짐작케 한다. 이외에 고려에서 생산된 고려청자 7점, 청동숟가락 1점이 있으며 일본산 나막신, 장기말, 칠기대접, 청동거울, 도자기 등도 출토되어 신안선이 국제 무역선임을 입증하였다.

바닷길에 남겨진 두 번째 보물 고려시대 난파선, 고선박 복원으로 다시 태어나다

지금까지 수중 발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고려시대 난파선은 9척이 있다. 수중에서 발굴된 우리나라 선박은 모두 고려시대 선박으로 발굴지역의 지명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우리나라 전통 선박을‘한선’이라고 한다. 한선의 구조는배밑이 평평한 형태의 평저선으로 우리나라 근해의 복잡하고 수심이 낮은 해안선의 특성을 고려하여 설계된 과학적인 구조이다. 발굴된 고려시대 고선박을 요소별로 분류하면 몸체(저판, 외판, 선수, 선미), 추진구(돛, 치, 노), 보조구(가룡, 멍에, 차가룡, 구례짝), 연결구(장삭, 피삭, 장부이음, 맞댄이음, 반턱이음, 홈붙이 클링커 이음, 쪽매방식), 수밀구(대나무와 나무껍질, 석회), 정박구(닻, 호롱, 닻돌, 엄말)로 나눌 수 있다. 한선 건조의 핵심기술은 부재와 부재를 연결하고 이어주는 이음방식에 있다. 마도 1호선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배밑(저판)은 각 부재 이음방식으로 턱걸이 장부이음, 반턱이음, 맞댄이음 방식이 사용되고, 저판을 관통하는 장삭을 측면에서 박고 산지로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발굴된 고선박의 복원은 우리나라 한선 구조를 실체화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고선박 복원을 위해서는 복원 전문가의 구조 분석을 통한 연구가 가장 기본이 된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선형의 도면(CAD), 설계(Maxsurf), 3D 모델링(Rhino) 작업 등도 실물 복원을 위한 기본 데이터이다. 이런 기본 데이터가 마련되면 실물 복원을 위한 전단계로 모형 제작에 들어간다. 모형제작을 통해 실물 복원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찾아 해결하는 것이다. 또한 선박의 저항(회류수조실험)과 항해성능(예인수조실험), 선박의 복원력(사각수조실험)을 판단하기 위해 각종 수조 실험을 실시한다.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 고선박의 실물 복원이 이루어진다. 실물복원에는 복원연구자와 함께 전통선박을 직접 지었던 조선장에 의해 선박 제작과정이 재현되기도 한다. 선박의 복원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박은 움직이는 교통수단이다. 그러므로 선박의 항해 기술도 선박 복원 과정 중에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고려시대 배의 항해 기술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일제 강점기 이후 평저형의 우리나라 전통 한선의 구조는 사라지고 개량식 선형 구조인 첨저형으로 선박의 구조가 급격히 변화되지만 돛을 이용한 선박이 근대 이후 1970년에서 1980년대(강진 칠량 옹기배)까지 우리 연안을 항해하였다. 하지만 이런 돛단배조차도 사라지고 항해하던 전문가들도 고령화되어 돛단배 항해기술은 단절의 위기에 처해있다.

고선박 항해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전통선박을 운영하던 항해 전문가를 직접 찾아내 구술조사나 자문을 통하여 전통 항해기술을 전수 받고 기록화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고선박 복원은 단순한 선박의 구조 복원을 뛰어 넘어 고선박의 제작과 항해 기술의 원형을 복원해 전통기술을 이어주는 가치 있는 작업이다. 바다에서 건져진 난파선은 유형의 가치도 크지만 여기에 담겨진 무형의 가치가 진정한 보물인 것이다.

바닷길에 남겨진 세 번째 보물 목간木簡, 고려의 유통, 운송, 항로를 밝히다

2000년대 들어와 한국 수중발굴에 있어 커다란 업적으로 태안 대섬의 태안선 발굴과 태안 마도 해역에서의 마도 1호선·2호선·3호선의 발굴을 들 수 있다.

도자기 운반선으로 밝혀진 태안선과 곡물 등 화물을 운반하던 마도 1·2·3호선 발굴에서는 도자기, 곡물, 수산물, 광물 등과 함께 고려시대의 운송의 비밀을 밝히는 목간이 출토되어 고려시대 역사를 추론이 아닌 문자로 확인 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배와 조운선이 운항하던 안흥항 일대와 가까운 해역에 위치하고 있다.

안흥항은 예로부터 해난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조운선의 침몰이 빈번한 곳으로 당시 이 지역에 운하를 착공하려 하였을 만큼 험난한 항로였다.

목간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죽찰:竹札)으로 물건의 발신과 수신 등 운송관계, 지방 향리의 역할과 관직명, 세금으로 바친 물건들의 유통망과 유통연대, 서체 등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목간은 도자기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태안선 출토 목간에는 제작지와 배가 향하던 목적지, 수령인 등이 기록되어 태안선에 실린 청자의 생산지가‘탐진(현재의 강진)’임을 밝히는 단서가 되었다. 또한 마도 2호선에서는 청자매병 2점과 죽찰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판독한 결과 매병에 담겼던 것은‘꿀’과‘참기름’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마도 해역에서 출토된 여러 목간과 죽찰을 통해서‘정묘년’이 1207년이고‘무진년’이 1208년임이 밝혀졌다. 마도 해역에서 출토된 목간은 타임캡슐과도 같은 고려시대 해양 유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바닷길에 남겨진 네 번째 보물 도자기, 바닷길에서 꽃피다

우리나라 바다 속은 역사의 보물창고이자 도자기 수장고이다. 수중 발굴 유물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도자기는 신안 해저유적에서 출토된 20,661점의 중국도자기와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명문이 새겨진 중국 상단商團의 도자기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고려청자이다.

수중 발굴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청자는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제작연대가 매우 다양하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중국의 도자기술을 받아 들여 10세기경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청자 제작 기술로 발전시켜 고려의‘비색청자’와‘상감청자’를 탄생시키며 세계 최고 도자기 생산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고려는 뛰어난 도자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청자를 보급시켰다. 바닷길은 당시 청자 유통의 고속도로였다. 청자유통의 국내 흔적은 1985년 전남 완도 어두리, 전북 군산 비안도·십이동파도·야미도, 충남 보령 원산도, 태안 대섬과 마도, 진도 오류리 등에서 수중 발굴된 8만점 이상의 청자에서 찾을 수 있다.

수중 발굴 고려청자는 발굴된 많은 양 만큼이나 종류와 질도 다양하다. 수중에서 동일한 기종과 문양의 청자들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시대 도자기는 상업적인 측면이 강했을 것으로 판단되고 일부 공예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들도 함께 생산되었다. 수중 발굴 도자는 육상의 도자 관련 유적에서 밝힐 수 없었던 도자기 유통의 비밀을 풀어주고 편년 자료 설정에 기준이 되고 있다. 고려청자는 국내유적 뿐만 아니라 중국의 영파·항주·양주·상해·산동과 일본 본토를 비롯한 오키나와 일대와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지역의 외국 유적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고려청자가 언제 어떤 루트를 통해서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자료 수집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국외유통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면 바닷길에 꽃피운 고려청자의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애경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연구사)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