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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옆이라 재건축이나 개·보수가 힘들어 허물어질 때까지 그대로 사는 수밖에 없어요.”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 돌담 부근에서 35년간 거주해 온 박형배(59) 씨는 “지은 지 오래돼서 위험하고 낙후한 집들이 많은데 문화재법에 묶여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라며 “마땅한 대책 없이 이 상태로 세월이 더 지나가면 주민들이 모두 제 발로 떠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일 찾아가본 창덕궁 서측의 주거지들은 창덕궁 돌담에 시멘트를 발라 세계문화유산 일부분을 집 벽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종로구 등에 따르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과 종묘 일대는 1962년부터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대다수 주민들이 건물을 새로 짓지 못해 기둥은 두고 내부구조만 변경하며 거주해왔다. 마땅한 주거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세월이 흐르면서 인근 주거지들은 점점 낙후되고 거리도 정비되지 않아 슬럼화돼 가고 있는 상태다. 궁 돌담에는 쪽방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었다.

종묘 서측 서순라길의 경우에는 유동인구가 적어 상권도 거의 쇠락했다.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야간 순찰을 돌던 유서 있는 돌담길이지만 현재는 쇠락해가는 동네 분위기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또 주차장이 없어 골목마다 주차공간을 확보하려고 화분을 내놓았고, 불법 주차된 차들과 낙후한 도로는 보행자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창덕궁을 찾은 이규영(여·26) 씨는 “창덕궁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는데 담장 밖은 좁은 길과 낡은 집들만 있어 마땅한 볼거리가 없다”며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그 주변지역에도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2년 6월 남경필(새누리당) 등 여야 국회의원 18명은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세계문화유산의 효과적인 보존·관리·활용을 위해 주변 지역을 아우른 세계역사문화도시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 법안은 1년 6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문화유산 자체의 보존·관리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정비도 적절히 이뤄져야 문화유산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종묘와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그 주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관리하는 일에 정부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