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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그 신명나고 구성진 여행길

글쓴이	tntv	등록일	[2013.10.28]

깡통 쓰고 상모를 돌리던 소년, 방송국 프로듀서 되다

토속 민요를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잘 알려진 최상일 PD. 그는 ‘민요전문 PD’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민요 프로그램의 기획·제작을 맡아왔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비롯해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방송대상을 수상한 <한국민요대전>, 중국 만주 일대 조선족 민요·민속 취재 프로그램인 <한민족 기행>과 전통 생활사 취재 프로그램인 <최상일의 민속기행> 등을 제작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뜻을 품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단 살아오며 줄곧 가져왔던 민요에 대한 애착이 그 순간순간에 작용했던 것 같다. “상모돌리기 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어요. 나도 한번 해보겠다고 깡통에 구멍 뚫고 끈을 달아서 하루 종일 돌리고 놀았죠. 그러곤 다음날 목이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나요.” 1957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최상일 PD는 민요를 동요처럼 불렀고 풍물 치는 광경을 일상처럼 보며 자랐다. 1970년대 후반,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유신체제 아래 험악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진로를 고민할 여유도 없었던 시절, 더더군다나 문화적인 분야에 뜻을 두기는 더 힘들었다. 졸업 후 1981년 MBC 프로듀서 공채에 합격해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다. “데모에 연루됐던 사람들은 어찌어찌 복학해 졸업을 하더라도 언론사에 취업이 되질 않았어요. 합격한 뒤에 신원조회에 걸려 쫓겨나는 거예요. 그럼 뭘 해야 하나 기웃기웃 하다가 방송국 직원채용공고를 봤는데 기자 옆에 프로듀서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 시절 프로듀서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직업이었어요. 좀 잡다한 일인 것 같긴 하지만 한번 해보자 싶어서 시험을 본거에요.” 세상일이란 때로는 차선책이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기자의 꿈을 접고 선택한 프로듀서가 그의 천직이 된 것처럼 말이다. 또 때로는 불운이 행운이 되어 돌아오는 일도 일어나곤 한다. 실습기간이 끝난 뒤 신원조회에 걸리는 바람에 프로듀서가 아닌 라디오국 레코드실 사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2년간 레코드실에 근무하면서 그곳의 수많은 음반들을 원 없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 전통민요 찾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민요 찾아 삼만 리

이후 프로듀서로 복직한 최상일 PD는 수년간 다양한 장르의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전통 민요를 찾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여러 번 기획안을 올린 끝에 수년 만에 결재를 받아냈다. 그리하여 1989년 <한국민요대전>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5~6년 동안 사라져가는 구전민요를 찾아 기록하는 일에 몰두했다. 쉽게 되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명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 이장님들에게 일일이 설문조사를 했죠. ‘우리 동네에 이런 노래를 하는 분이 있다’고 하면 3박 4일 답사를 다녀온 다음에 엔지니어랑 장비에 선물, 막걸리에 안주까지 싸들고 다시 찾아가요. 그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래판, 잔치판이 벌어지죠. 노래가 막 쏟아져 나오는데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돌아갈 때면 어르신들이 얼마나 아쉬워하시는지, 어떤 할아버진 짜장면 사먹으라며 천 원짜리 열 장을 손에 쥐어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신명나서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민요가 어마어마하게 모였다. 좋은 곡을 선별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만여 곡의 구전민요가 집대성됐고, 103장의 CD와 9권의 자료집이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오랜 노력 끝에 숙원 과제였던 북한 토속민요 녹음자료를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길이 없었어요.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니, 대안으로 연변에서 찾아보자 했죠. 2달 동안 압록강부터 두만강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이미 맥이 다 끊겼더군요. 그런데 연변에서 평양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교수 한분을 만났는데 녹음자료가 있다는 얘길 들어봤다는 거예요. 백방으로 수소문해 한 중개인을 통해 자료가 있는 곳을 알아냈죠. 녹음자료를 갖고 있는 음반사와 협상(?)을 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렇게 해서 녹음테이프를 받아들었을 때 이걸 구하려고 고생한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군요.”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감격이 복받쳐 오른다. 최상일 PD 그 자신이 꼽는 ‘일생일대의 역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어려서부터 민요를 즐겨들었지만, 사회운동 경력 때문에 자료실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연과 필연이 결합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때 녹음하지 않았더라면… 돌아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이어갈 전승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런 만큼 다행스럽기도 하다.

소년처럼 꿈꾸는 ‘민요전문 PD’

“저를 보고 자라서 전통음악 조기교육이 됐나 봐요. 아들이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국악작곡과 졸업반인데, ‘불새출’이라는 전통음악 그룹에서 곡도 쓰고 기타도 쳐요. 자랑스러워요. 한 집안에 예술가가 태어나려면 3대의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데 우리 집안에도 드디어 음악가가 나왔으니 말예요.” 민요를 수집하러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느라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는 최상일 PD. 아버지로서 마음 한 구석 미안함이 있는 그에게 전통음악 작곡가, 연주자로 자란 아들의 모습은 자랑스럽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후진 양성을 위한 국악 교육에서 창작이라는 중요한 부분이 소외되고, 전통음악이 ‘퓨전’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의 색을 잃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악기로 팝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퓨전은 아닐 것이다. 전통음악 안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이 창작돼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사람들이 전통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게 최PD의 생각이다.

“최근 좋은 일이 있었어요. DMB 라디오 채널에서 ‘세계의 전통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거든요. 열흘째 됐는데 요즘 선곡이다 뭐다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파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즐겁게 하고 있어요.” 최상일 PD는 세상에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민요가 옛날 옛적에나 불리던 노래가 아니라 지금도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정말 멋진 음악이라는 것도 말이다.

운명이란 어느 한 순간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다가와 함께 동행하는 그 무엇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명을 의지로 이끌어나갈 때 개인의 성취를 넘는 큰 가치를 이뤄낼 수 있다. 최상일 PD가 유년시절 듣고 불러온 민요를 일생의 업業으로 삼아 사라져 가는 우리의 소리를 기록해온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지금도 소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좋은 음악을 찾아 헤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즐거워한다. 여주 고향마을에서 풍물을 치던 그 시절의 풋풋함으로….

글. 성혜경 사진. 엄지민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