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도 호텔의 위치를 보면 반대할 것입니다. 위치를 몰라서 그렇지 조감도를 보면 6층 여자중학교 건물 바로 옆에 4층 호텔이 들어섭니다. 교실에서 호텔 안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입니다."
25일 정부가 유해성이 없는 관광호텔에 대한 규제와 절차를 개선하는 '3차 투자활성화방안'을 발표하자 덕성여중 등 교육계와 시민단체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 판례까지 뒤엎는 건 말도 안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종로구 수송동 서머셋팰리스 서울에서 바라본 종로구 송현동 옛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숙소의 대한항공 7성급 한옥호텔 프로젝트 부지. / 사진 = 이기범 기자
개정법안의 골자는 유흥시설과 사행행위장, 미풍양속을 해치는 부대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서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경복궁과 덕성여중고 사이에 위치한 종로구 송현동 49-1 일대(옛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3만6642㎡)에도 7성급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해당 부지는 중·고등학교 인근에 위치해 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사업주인 대한항공이 2010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사업이다. 경복궁 옆 '7성급 한옥호텔'은 현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첫째 딸이자, KAL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는 조현아(39) 대한항공 부사장이 총괄하고 있다.
교육계가 우려하는 것은 호텔이 여중학교 옆에 딱 붙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 아니다. 고급호텔이 학교 옆에 위치하면 교육활동에도 지장을 많이 받게 된다는 게 주요반대 이유 중 하나다.
조용히 쉼을 얻어야 하는 숙박시설과 타종, 운동회 등의 소음이 발생하는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은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음에도 호텔이 들어설 경우 학교의 교육활동은 뒷전으로 밀릴 확률이 높다는 게 학교측 우려다.
백영현 덕성여중 교장은 "고급호텔에 국내외 고위층이 오게 되면 경호 등으로 학생들이 등하교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처음에는 짓는 것만 중요해서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나중에는 교육활동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층이 아니더라도 쉼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소란스러움을 좋아할 리 없으니 나중에는 학교가 '눈엣가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교육상 반대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개정안이 설사 국회에서 통과된다 하더라도 종로구청과 서울시 역시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호텔 건립 추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해당 법 개정안은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제출됐으나 자동폐기된 바 있고 특정 기업 특혜 시비를 비켜갈 수 없어서다.
안재홍 종로구의원은 "법개정을 해서라도 특혜를 주겠다는 건데 큰 틀에서 적절치 않다"면서 "법령체계들이 힘의 논리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세균 국회의원(민주·서울 종로)도 송현동 호텔 건립 재시도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북촌문화마을가꾸기 등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들도 적극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민주당에서 반대하는데 대법원 판결까지 뒤엎고 입법할 수 있겠냐"면서 "법적인 문제를 떠나더라도 여학생의 교육권 문제여서 헌법소원 제기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7성급 한옥호텔' 건립은 개정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서울시의 도시건축공동위원회의(이하 도건위) 심의 절차를 한번 더 통과해야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건위 심사에서 부결되면 5년간 재상정하지 못한다"며 "이 때문에 부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보류를 통해 보완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이때 여론을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도건위에서도 주민열람공고에서 나온 의견(여론)을 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한다는 게 시 관계자 설명이다.
한편 대한항공 측은 "숙박시설을 짓는 게 아니라 숙박시설이 있는 복합문화단지를 세우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닌 복합문화 시설로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대한항공은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