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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1483호 <이채 초상화>(왼쪽)와 보물 제1494호 <황현 초상>(가운데)을 짜깁기해 만든 위작(오른쪽). 얼굴은 이채, 의복은 황현이다. 공아트스페이스는 위작을 <매천 황현 초상화>라고 표기해 걸었다가 문제가 되자 뒤늦게 내렸다.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공아트스페이스 제공 |
위작 의혹에 베낀 도록…유명화랑 버젓이
이채와 황현 초상 짜깁기한 작품 검증없이 걸었다가 문제되자 치워
작품해설도 저자 동의 없이 도용
화랑 “저자들한테 사과하겠다”
서울 인사동 고미술 전문 화랑인 공아트스페이스(대표 공상구)에서 ‘한양유흔’전(9월15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의 일상부터 궁궐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한양이 남긴 흔적을 옛그림을 통해 보여준다는 취지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왕비들의 인장, 왕실병풍, 초상화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대부분이 개인 소장가들의 소유인데다 고려대박물관 소장품 20여점을 더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품’을 친견할 기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상업화랑에서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의욕적으로 펼친 이 전시는 몇 가지 점에서 석연찮다. 우선 출품작 가운데 위작이 섞여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3층에 전시한 <매천 황현 초상화>(190×97㎝)가 그것이다. 화랑 쪽은 이 작품이 개화기 초상화가인 채용신이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보물 제1483호 <이채 초상화>의 얼굴과, 보물 제1494호 <황현 초상>의 의상 부분을 짜깁기해 만든 가짜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본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명지대)는 “100년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두 명품을 합성해 의복에는 구한말, 얼굴은 조선후기 화풍이 뒤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전북도립미술관의 채용신 관련 전시를 두 차례 기획한 미술평론가 조은정씨는 “채용신 후기작과 유사하지만 격이 한참 떨어진다”며 “1940년대 위작을 양산한 공방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채 초상화>는 1802년 조선말기의 문신 이채(1745~1820)의 58살 때 모습을 그렸는데, 정면을 또렷이 응시하는 눈매와 입체감 있는 얼굴, 품위있는 수염이 생생해 ‘조선 초상화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황현 초상>은 한말 우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 사후 1년 뒤인 1911년 초상화 전문화가인 채용신(1850~1941)이 1909년에 천연당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렸다.
화랑 쪽은 “소장자의 설명에 따라 <황현 초상화>라고 표기했다. 개인소장자는 자신의 소장작품이 보물 <황현 초상>의 의복과 흡사해 황현 초상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하더라”고 해명했다. <한겨레>의 취재가 시작되자 화랑은 “<매천 황현 초상화>의 명칭을 <이채 초상화>로 바꾸고 ‘전 채용신 작’이란 설명을 달겠다”고 밝혔다.
전시회 개막과 동시에 발간한 도록도 문제다. 도록 <한양유흔>은 250여쪽에 걸쳐 작품사진과 함께 유명 필진의 글을 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경기대 정양모 석좌교수의 축사,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의 머리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와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정혜 교수의 해제를 실었다. 하지만 권말에 붙인 개별작품 해설은 상당수가 해당 전문가의 글을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겸재 정선의 <청풍계>, <장동팔경>에 대한 해설은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 <이기양 초상>은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 <권협 초상>은 강관식 교수의 글을 지은이 이름을 생략한 채 오자까지 그대로 전재했다.
최완수 실장은 “이런 일이 하도 많아 일일이 시비하기 힘들다”며 “이런 풍토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호 교수는 “사전에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도록을 보고 항의하자 공식사과하고, 해설문에 지은이 이름을 따서 붙이겠다고 말하고는 아직까지 후속조처가 없다”고 말했다.
공아트스페이스는 공화랑의 후신으로, 1970년 공창호씨가 개업해 2010년에 지금의 자리에 이전개업하면서 2세 체제로 바뀌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