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연과 문화, 이 땅의 사람들을 찍는 사진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서헌강’을 검색하면‘문화재전문 사진작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에 대한 기사들이 나타난다. 정작 자신은한번도 스스로를‘문화재전문 사진작가’라고 소개한 적이 없는데, 어느날 부턴가 사람들은 서헌강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나와 잘 맞는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한국의 자연, 한국의 문화를 우리가 아닌 외국에 알리고 싶었죠.‘대한민국은 찬란한 유산을 가진 민족입니다’라고 말로 홍보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영상으로 포장해서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서헌강은 한국에서 꽤 인정받는 다큐멘터리사진가이다. 그의 사진은 이 땅의 풍경,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거수들이 드리운 청량한 누정,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궁궐 후원, 웅장하고도 비장한 종묘의 제사 풍경이 프레임에 담긴다. 그의 존재감을 더 부각시키는 요인은 문화재를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묘사해 내는데 있다.

어릴 적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던 서헌강은 꽤 일찍 사진을 시작했다. 중3 무렵 처음 사진을 접했을 땐 그저 셔터 소리가 듣기 좋았고 사진이 뭔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매체라는 걸 인식하면서 더욱 빠져들었다.“그때만 해도 천안에는 암실도 없었고 약품을 파는 곳도 없어서 양팔저울에 달아가며 전부 제가 만들어 썼어요.”그의 열정이 눈에 보였던 걸까.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아들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중앙대 사진과에 진학한 서헌강은 MT 한번 가지 않고 작업에만 열중했다. 아버지가 힘들게 번 돈으로 학교에 다니는 게 죄송스러웠다. 세부전공으로 광고나 순수사진이 아닌 다큐멘터리사진을 택한것은 그런 결핍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는 게 보도사진이라면, 다큐멘터리사진은 이 사건이 무엇에 기인해서 어떻게 일어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 면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철저함과 고민이 투영된 사진

서헌강은 실력만큼이나 인복도 타고난 편이었다. 그는 대학졸업도하기 전에 한국적 민중성을 지향했던 잡지사 뿌리깊은 나무에 들어가『샘이 깊은 물』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한국 다큐멘터리사진의 거장 강운구 선생이 중앙대에서 강의하다 눈에띈그를 자신이 사진부장으로 있던 뿌리깊은 나무로 데려온 것이다.“다른 회사들과 시스템 자체가 달랐어요. 편집부에서 의뢰한 사진을 사진기자가 그대로 찍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사진기자가 기획부터 취재, 필자 섭외까지 전부 직접 진행을 하는 거죠.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대신 자신이 맡은 기사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져야 했죠.”뿌리깊은 나무는 서헌강이 섭외, 취재, 사진, 하다못해 팩스 보내는 방법까지 사진가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운 곳이다. 덕분에 그는 도제식 훈련을 받은 장인처럼 작업에 철저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와 프리랜서를 시작한 뒤에도, 몸에 밴 철저함은 변함이 없었다.

예술가니 작가니 하는 호칭 대신 스스로를 노동자로 소개하는 그의 작업은 미련하리만큼 정석적이다. 기본과 절차를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그것은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 담겨있는 치밀함.“어떤 촬영이든 무턱대고 하지 않아요. 이 작품이 가능한지 아닌지, 이 기간 동안은 무엇을 할지, 날씨는 어떤지, 구상한 그림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계획해놓고 시작하는 거죠.”그가 작업을 할 때 가장 먼저하는 일은 기상청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다음 분 단위로 출발·도착시간과 동선을 짜고 구성, 시선 등을 정한다. 적당한 시간을 찾아야 좋은 빛과 색을 포착할 수 있고 구성, 시선도 마찬가지다. 결국 남보다 몇 배 쏟은 노력과 준비로 가장 아름다운 색감과 질감을 살려낸다.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해야 해요. 궁극적인 목적은 그 안에 휴머니즘을 표현하는 겁니다. 평범한 돌이라도 그 돌이 가진 느낌을 살리지 못하면 작품이 될 수 없어요. 외국인이 본다면‘저게 한국이야, 중국이야, 일본이야?’그럴 거란 말이죠.”서헌강의 사진이 갖고 있는 힘은 문화재의 현재 모습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정서, 문화를 회화처럼 그려내는 표현력이다. 그는 솔직하게 거창한 역사의식으로 문화재 사진을 찍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한국적인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모습인지 보여 주려는 것이다.

변화시켜 나가는 것과 변함없이 지켜가는 것

“우여곡절이 많았죠. 예상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가서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문화재를 촬영할 땐 제약이 많다. 말 그대로 보물이니 이리 저리 옮기거나 손을 댈 수도 없고, 조명도 함부로 쓸 수 없다. 그럴 때 그의 타고난 손재주가 발휘되곤 한다. 열악한 환경에도 항상 최고의 장비들을 동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기록해야 하는 순간,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사진에 담을 뿐, 대가를 계산했다면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문화재전문 사진작가’라는 특별한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예산 얼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게 맞잖아요.”

사진 아닌 다른 일을 생각해 본적은 없는지 묻는 질문에 서헌강은 전혀 주저함 없이‘한 번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신념, 의식같은 거창한 이유를 대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맞는 것,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그 일에서 가치를 느낄 뿐이다.“사실 예전제사진은 주제 자체가 어두웠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바뀌었어요. 세상을 좀 더 밝게 보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어두운 것일 지라도 어두운 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면을 담아내고 싶어요.”사진가에게 있어서 카메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이다. 좋은 장비를 갖추고 기술을 숙련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가의 시선이 살아있어서 피사체의 특징을 캐치하고 내면까지 바라볼수있어야 한다.‘일’이란 직종에 상관없이 모든 것에 노련해질수록 신선함을 잃어가기 마련이건만 사진가 서헌강은 여전히 살아있는 눈으로, 안전한길 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다.

글. 성혜경 사진. 서현강, 김병구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