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 여러곳 피해…인근 근정전도 안심할 수 없어 문화재연구소 "조사대상 77개 목조건물 전체 피해입어" 진남관 내소사 범어사 강릉향교도…방제대책 시급
경복궁관리소는 최근 사정전(조선 임금이 정사를 보던 건물ㆍ보물 제1759호)을 둘러보다 경악했다. 사정전 행각건물 기둥 여러 곳이 흰개미 피해를 입은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현장조사를 진행한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과거 창덕궁과 종묘는 일부 피해 사례가 있었지만 경복궁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사정전 코앞에 조선 말기 건축술의 정수인 국보 제223호 근정전이 있다. 문화재연구소 측은 경복궁관리소에 긴급 방제조치를 요청했다.
우리 문화재가 흰개미 습격으로 무너지고 있다. 온난화로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문화재 관리를 맡고 있는 기관들 대응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흰개미 피해가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문화재연구소가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는 사태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 24일부터 6월 20일까지 총 77개 목조건물에 대해 흰개미 피해 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모든 조사 대상 지역이 흰개미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민석 문화재연구소 박사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피해가 없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직접 피해를 당한 사실도 확인했다. 단일 목조건축물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이면서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객사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국보 304호)은 일부 기둥이 기울어진 것으로 판명났다. 연구소 측은 전체 68개 기둥 중 90% 이상이 흰개미 피해를 입었고 그 가운데 60%는 육안으로도 그 상황이 확인될 정도로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진남관 관리기관인 여수시에 전면적인 해체보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수시도 이 같은 사실을 몇 년 전부터 파악했으나 지난해 개최된 여수엑스포에 모든 예산이 집중되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물 제214호로 지정된 강릉문묘대성전이 있는 강릉향교도 흰개미가 우글거리는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처음 드러났다. 흰개미는 현유 위패를 모신 동무와 서무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 동무와 서무는 대성전 좌우에 위치한다. 연구소 측은 "기둥 안에도 흰개미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전남 부안 내소사도 피해가 컸다. 보물 291호 내소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 사찰건축 가운데 대표작품으로 꼽히는데 이곳과 인접한 지장암 건물이 흰개미로 인해 붕괴 직전에 처했다고 연구소 측은 평가했다. 연구소는 해체해 수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부산 범어사에서도 흰개미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가고 있다. 스님들 거처인 일로향각이 큰 피해를 입은 데 이어 이번 조사에서 보물 434호인 대웅전 옆 관음전까지 흰개미가 덮쳤다는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보은 법주사, 김천 직지사, 고창 선운사 등 1500년 이상 된 국내 대표급 고찰들 역시 피해가 감지됐다.
지속적인 방제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목재를 먹이로 삼는 흰개미는 온도ㆍ습도가 맞아야 활동하는 만큼 온도ㆍ습도만 잘 조절해도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