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보다 더 많은 남해 거북선 `방만재정 현주소`

호화청사·경전철…지자체 씀씀이부터 구조조정 나서야  

청사 신축에 1500억여 원이 투입돼 `호화 청사` 논란을 빚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용산구청 건물. 최근 몇 년간 경쟁하듯 들어선 지자체 호화 청사들은 방만한 지방재정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재훈 기자＞\n

선조 30년인 1597년 7월 15일 원균(元均)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지금의 경남 거제시 하청면)에서 왜군에게 참패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온갖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온 거북선들도 바닷속으로 가라앉거나 도주했다. 이때 출전한 거북선은 5~7척으로 학계는 추정하는데, 이게 임진왜란 당시 건조된 전체 거북선 규모다. 특유의 방어력과 침투력 때문에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板屋船)과 달리 많은 척수가 필요하지 않고 건조의 어려움 때문에 많이 만들기도 힘들다. 그런 거북선이 지금 경상남도에만 9척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거북선 모형은 노량해전 격전지인 경남 남해군 노량리 거북선전시관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 옥포만의 거북선이었다.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이 승리한 해역에 가까운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거북선 복원 사업에 뛰어들면서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경남도가 2005년 서울시에서 인수한 거북선을 제외하고 추가로 6척의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123억원. 하지만 일부는 수입 목재 사용으로 구설에 오르는 등 원형을 제대로 복원했다고 평가받는 거북선은 없다. 오는 9월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재지인 전남 여수에 또 다른 거북선(26억원 투입)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경상남도는 2007년 1590억원을 투입해 칠천량해전 때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거북선 4척을 찾아내는 이른바 '거북선 찾기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임진왜란 때 음식을 재현한 식당도 이 명목의 예산 지원을 바탕으로 문을 열었지만 개장 14개월 만에 폐점했다. 명량해전 격전지인 전남 해남군에서 2009년 9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관광용 거북선은 지난 1~6월 운행횟수가 11차례에 불과하다.

남해안 일대 지자체들의 거북선 건조 경쟁은 우리나라 지방재정의 현주소를 잘 드러낸다. 바로 지자체 간 중복 투자와 그에 따른 공멸이다. 정부의 한 예산 전문가는 "지자체장들이 선거 공신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업을 몰아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문화재 복원 사업과 지역 축제 사업이 대표적인 지방재정 낭비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역 실정에 걸맞은 사업을 발굴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에서 참여정부 시절 도입된 광특회계(광역시도의 특별회계)의 폐해가 선거철을 전후해 반복되는 셈이다.

박근혜정부는 광특회계에서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중복 사업은 더욱 많아질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중복 사업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와 기존 중복 사업에 대해서는 지자체들이 세출을 강하게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당장 중앙정부가 실시하는 복지 사업과 유사한 지자체 독자적 복지 사업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국민 세금의 중복 사용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장 스스로를 위해 호화 청사를 지은 곳들도 세출 구조조정이 필요한 부문이다. 2008년 이후 완공된 지자체 청사는 모두 14개인데, 사업비가 9681억원 들었다. '호화 청사' 논란이 일었던 성남시를 비롯해 서울 용산구청, 금천구청 등이 1000억원이 넘는 국민 세금으로 청사를 짓는 데 썼다. 사업성을 제대로 따지지는 않고 일단 지자체장들이 폼을 낼 수 있는 국제행사도 경비가 많이 들었다. 2010년 기준 지자체의 국제행사 총사업비는 7146억원이었고 이 중 국비는 1122억원이었다. 2008~2010년 심의 시 계획 수익은 3115억원이었으나 실제 수익은 1917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지자체들도 경상비 조정 등을 통해 세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포기하면서 복지 예산을 늘렸던 것과 같은 형태의 세출 구조조정은 아니다. 중앙정부는 향후 5년간 135조원의 박근혜 대통령 국정과제 이행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85조원(약 63%)을 세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방공약 이행을 위한 향후 5년간 재원 125조원(단순 추계치)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세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힌 예산 규모는 없다. 중앙정부 수준으로 세출을 구조조정한다면 78조원(125조원의 63%)이 마련되는데, 이렇게 되면 복지 사업에 대한 국고보조율 인상, 지방소득세 인상 등 각종 지방정부의 요청이 필요 없어지는 수준이다.

[신현규 기자 / 정석우 기자 /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