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와 준법

법치는 법이 지배하는 원리로서 국민 모두가 민주적인 입법절차에 따라 제정한 법을 존중하고 준수할 때 달성된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고 법의 지배 아래 있다는 상식이 통하면 권력자나 일반 국민 모두가‘법의 지배’라는 법치를 존중함으로써 준법은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된다. 그럴 때 준법은 힘없는 사람이, 탈법은 힘 있는 사람이, 합법은 뜻있는 사람이 행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지도층의 준법정신

우리 사회의 법치와 준법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법치는 물과 같아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법을 다루는 국가기관인 입법, 사법, 행정 영역에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법치는 가능하지 않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장관 후보자들은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세금미납, 의료보험료미납, 미심쩍은 병역면제 등 위법, 불법, 탈법, 반칙의 불명예를 줄줄이 달고 살아왔으면서도 거짓말, 축소, 왜곡, 은폐로 덮어서 교묘하게 빠져나오려다 사실이 노출되면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인사청문회를 무색하게 한다. 이런 인물들이 장관이 되니 법치와 준법이 먹혀들어 가겠는가?

국회에서는 의원들 간의 난투극과 강행처리, 저질발언 등이 횡행하고 불법시위현장에는 의원들이 한가운데 서서 포퓰리즘Populism을 행한다. 경제민주화 입법경쟁이 시끄러운 요즘에 그 법안들이 진정 미래에 국가와 국민의 보편적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법안을 다루는지, 당과 의원들 이익추구 내지 포퓰리즘에 매몰돼 있지 않은지? 적어도 국민들 눈높이에서 볼 때 정치는 수준 이하이고 결국 정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오염된 윗물이 아랫물을 흐려놓고 있으니 사회 곳곳에서는 법치와 준법의 실종 소리가 요란하다.

유전무죄 유권무죄

사법 기능은 어떤가? 유전무죄 내지 유권무죄 판결은 사법 불신을 가져왔다. 한 예로써 모기업회장의 부인에 의해 지난 2002년 청부 살해된 이화여대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법당국은 살인교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모기업회장 부인을 형집행정지로 풀어줘 6년간 병원특실에서 호의호식을 해오다 방송국의 보도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검찰은 형집행정지를 취소했다. 이 사건을 두고 이화여대생들은‘대한민국에서 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가 용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게 심판받는 그날까지 이화가 지켜보겠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몇 개의 일간신문에 게재함으로써 법집행의 불공정을 고발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서도 전 국정원장과 전 서울경찰청장의 불구속 기소문제를 놓고 여론이 좋지 않다. 사정기관은 공평한 법집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반성하고 각성해야 한다. 재작년 미국워싱턴 DC 빈센트 그레이 시장과 크웸브라운 시의회 의장의 가두시위가 집회금지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수갑이 채워지는 광경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을 때 미국 경찰의 법집행은 고위직 권력자들에게도 성역 없이 단행되고 있고 권력 실세들 또한 특별대우를 기대하지 않는 점은 한국의 실정과 비교할 때 참으로 놀라웠다. 법 앞에 평등과 성역 없는 법치와 준법이 살아있는 공권력 집행현장이다.

우리 경찰은 위법, 불법, 탈법을 일삼는 국회의원들과 권력실세들에게 공권력을 집행한 적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권력실세들은 불법시위현장에서 법집행을 하려는 경찰에게 막말을 하거나 거칠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며 공권력 집행을 무시한다. 법치가 추락하고 도전받는 광경을 곳곳에서 보고 있다. 국민은 흔히 고위직 부정부패보다 하위직 비리가 더 중한 처벌을 받으며 고위직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준법은 손해를 보고 위법은 이득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의 법의식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2011년 4월 5일부터 2주간 전국 대학생 대학원생 등 성인남녀 2937명 대상) 우리 사회에서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76.6%(2251명)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였고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1.5%가 되니 가히 충격적이다. 이제 한국의 법치와 준법정신은 고양돼야 한다. 준법은 이득이고 위법은 손해라는 인식이 각인되게 가르치고 법과 제도를 철저히 운용하여야 한다.

기업의 준법경영과 엄격한 법집행

기업경영자도 준법경영을 기업문화로 정착시켜 가야 한다. 과거의 탈세, 탈법, 위법, 불법 경영에서 탈피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요즘 기업 경영자들이 준법이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공정한 하도급거래질서와 담합방지 등 공정거래 원칙 준수, 개인정보보호와 관련 법규준수, 환경안전과 보호 등의 실천의지의 천명을 통해 준법경영이 재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영국의 버진아일랜드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한 것은 위법은 아닐지 몰라도 국민 정서상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알려져 있다. 더욱이 소위 원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마피아처럼 연결된 원전비리는 국민 전체의 스트레스 가중은 물론 모든 사회 시스템의 블랙아웃 상태를 염려케 하는 공포를 가져왔다. 이러한 권력실세, 사회지도층의 반법치, 위법, 불법에 대해서는 엄벌하고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법이 엄정하여 합법은 보장하고 불법은 벌을 받는다는 법의식이 확고할 때 법치와 준법정신이 생활화 된다. 법치는 준법정신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개개인이 이를 준수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는 생활규범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생활상의 불이익과 불편을 주는 멍에가 아니라 생활의 편익과 사회의 평화를 보장한다고 인식돼야 한다. 법이 생활 그 자체이고 생활이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법치야말로 성숙한 선진국으로 가는 토대이며 국민행복과 안전을 가져다준다.

기초질서 준수

이 밖에 일반 국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본, 즉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많아 이웃에게 불쾌감을 주고 피해를 입히고 있다. 기초질서를 지키려는 준법정신은 사회를 맑고 바르게 다듬는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고 생활의 행동기준이다. 차창 밖으로 담뱃재를 털고 꽁초를 버리는 사람, 위험한 새치기 운전을 하는 사람, 좌회전차량이 차선을 위반하여 우회전 차선을 막고 있는 사람, 공원에 쓰레기를 버려놓고 가는 사람, 산책로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배설하게 하는 사람, 음주 운전하는 사람, 자전거 전용도로에 차량을 주차해 놓는 사람, 시민산책로에서 야간에 라이트를 켜고 자전거 타는 사람, 주택가와 도로변에 야간 무단 주차하는 사람, 보기에 아슬아슬할 정도의 화물을 싣고 도로를 무법 질주하는 과적차량, 소음과 배기가스 과다배출 차량, 야간 오토바이 폭주족, 아파트 층간소음을 야기하는 사람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초질서의 준수야 말로 시민준법 수준의 척도요 선진국으로 가는 바로미터Barometer이자 국민 개개인이 행복하고 평온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실종된 법치와 준법정신의 선진화를 위해 사회지도층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각성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 이승길 (중부대학교 경찰법학과 교수, 교육대학원장) 사진. 연합콘텐츠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