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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7.04 16:30

한국의 근대건축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그동안 건축학계에서 기피됐다. 사실상 1960년대 1대 유학파로 꼽히는 김수근·김중업의 작업을 한국 건축의 시작점으로 보거나, 조명할 따름이었다. 건축학과에서도 국내 근대건축에 대한 강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일제 식민지 시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있다. 근대화의 물결이 전 세계에 몰아치는 1900년대, 당시 국내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일본 건축 양식의 이식(移植), 서구 모더니즘 양식의 모방과 답습의 결과물로 평가되며 연구와 보존의 필요성을 찾지 못했다. 1900년부터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일까지 약 50여년의 세월이 사라진 것이다. 실제 이 기간에 한국의 ‘건축’은 없었을까?

▲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최근 한국근대건축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도코모모 코리아(DOCOMOMO Korea·한국근대건축보존회)가 지난달 10일부터 서울 중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1층에서 전시 중인 ‘개항, 전쟁, 그리고 한국근대건축’은 개화기부터 산업화 시기까지의 한국 근대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근대건축이 단순히 일제에 의한 강압과 서양 건축 양식의 모방이 아니라 외래문화·양식과 충돌하면서 나름의 근간을 확장해갔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 개항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충돌과 확장의 발자취’

이번 전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1970년대 산업화 시기까지 한국근대건축의 사료가 되는 건축가의 기록과 사진, 도면, 설계 모형 등을 한 공간 안에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 서울대학교 농업대학 전경

전시관에 들어서면 개방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섰던 서양식 건축물의 모형과 사진이 가장 먼저 보인다. 해외 공사관과 선교사업의 하나로 조성된 성당이 주를 이룬다. 1897년에 준공된 프랑스 공사관과 현재는 종탑만 남아 있는 구 러시아 공사관 모형이 눈길을 끈다.

전시관 벽면을 따라 1910년대로 가면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병합된 이후 1914년에 들어선 조선철도호텔 사진이 나온다. 이 호텔은 수세식 화장실과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등 서구식 문화시설이 완비된 첫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지어진 미쯔코시 백화점 경성지점과 순수 민족 자본으로 건립된 화신백화점 사진도 있다. 미쯔코시 백화점은 현재 소공동 신세계 백화점으로 쓰이고 있고, 화신백화점은 철거된 뒤 현재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화신백화점은 일제 강점기임에도 국내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일제 강점기 국내 건축가들의 주체적 건축 의지도 각종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시관 벽면과 단상에 마련된 당시 메모들은 치열했던 국내 건축가들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국내 건축가들이 근대 건축 사조를 받아들이고 나름의 해석을 통해 주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미(朝鮮美)라든가 이른바 조선적인 데를 보존하고 싶다는 기분이 답보의 근원이다. 실용상 필연적인 것만을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조선 주택의 근본이념은 역사적, 전형적인 재래 양식을 깨끗이 버리고 그리고 화풍(和風)·양풍(洋風)에도 따르지 말고 기존 관점에 구애됨이 없이 생활 자체에서 짜내는 새로운 방향에서 재발족해야 한다.” -박길룡·조선주택잡감(朝鮮住宅雜感)·1941

▲ 화신백화점 전경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희정 건축전문 큐레이터는 “현존하거나 자료가 남아 있는 당시 건축물을 분석해보면 재료 사용, 구조, 디자인 양식 측면에서 한국적 특성이 드러난다”며 “한국근대건축이 단순 서양 고전적 양식의 답습이 아니라 개방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중국·일본의 문화와 충돌·소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여박물관 전경

◆ 한국 전쟁 이후, 본격 한국근대건축의 시작

1945년 해방 이후의 국내 건축계의 모습은 활기차 보인다. ‘조선건축기술단’·‘조선건축기술협회’ 등 해방 직후 결성된 건축 단체의 창립발기문 및 모임서류, 1947년 발행된 협회지 ‘조선건축’이 전시실 한쪽을 메우고 있다.

1950년부터 3년간 이어진 한국 전쟁 기간의 기록은 전무한 편이다. 국토가 황폐화되면서 그간의 기반이 와해돼 버린 것을 알 수 있다.

1953년 휴전 이후 건축계는 점(點)조직 형태로 모였다가 1957년 한국건축작가협회 결성으로 기틀을 잡은 모습이다. 휴전 이후 활발하게 활동했던 김희춘, 김정수, 이천승, 김중업, 나상진의 작품 모형과 기록들이 다수 전시돼 있다.

특히 1957년 김희춘의 설계로 준공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건물, 그랜드 호텔(1957년), 대한교과서(1958년), 새나라 자동차 부평공장(1961년),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1968년) 등을 통해 독특한 조형성을 표현한 나상진이 눈길을 끈다.

전시의 마지막은 1960년대 한국 건축계를 이끌었던 김수근과 김중업의 모형과 텍스트가 주를 이룬다. 신사(神社) 모방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부여박물관에 대해 김수근이 항변한 텍스트 ‘신사 모방 아닌 내 것’, 현존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손꼽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한 김중업의 ‘건축 수첩’은 이번 전시의 백미(白眉)다.

전시 총괄을 맡은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급격한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건축·도시 분야는 역사의식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 한국의 근대건축의 정체성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며 “한국근대건축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도시에 대한 기록과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약 30평 남짓의 소규모 기획 전시실에서 진행됐지만, 건축가 및 건축학도, 일반인까지 많은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신영재(21)은 “우리나라의 예전 건축이라고 하면 한옥만 생각했는데 근대 건축을 접하니 신기하다”고 말했고, 변상원(42)는 “국내에도 서양 건축 양식이 도입된 결과물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식민 통치와 전쟁 겪은 한국, 근대건축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