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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경주의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 분관에 있던 금관총(金冠塚) 유물들이 도난당해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순금 허리띠와 귀걸이, 반지, 팔찌…. 도둑은 금관에만 차마 손을 못 댔다. 가장 큰 걱정은 귀중한 문화재가 망가진 채 단지 금덩어리로 팔리는 일이었다. 당국은 헛소문을 퍼뜨렸다. "천년 넘은 금 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무덤에서 나온 물건을 집 안에 두면 식구 중에 누가 앓는다." 여섯 달 뒤 어떤 사람이 경주 경찰서장 관사 앞을 지나다 보따리를 발견했다. 도난당한 금관총 유물이 반지 하나만 빼고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조선일보]

▶금관총은 1921년 경주 시내 노서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막을 하던 박씨라는 사람이 집을 늘리려고 뒤뜰 둔덕을 파다 보니 신라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보는 황금 왕관이 대단했다. 총독부가 출토 유물을 서울로 가져가려 하자 경주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시민들은 성금을 모아 유물 진열관을 짓고 금관총 보물들을 거기 두게 했다.

▶금관총에서 시작해 1970년대 천마총·황남대총에 이르기까지 경주 신라 고분에서 나온 금관이 모두 여섯 개다. 나뭇가지나 사슴뿔을 떠올리게 하는 신라 금관의 독특한 모양새는 북방 유목민족으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금관 여섯 개 모두 주인이 누구인지는 그동안 수수께끼였다. 짐작할 만한 단서가 무덤에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92년 전 금관총에서 나온 큰 칼을 수장고에서 꺼내 녹을 벗기고 찬찬히 살펴봤더니 ' 斯智王(이사지왕)' 네 글자가 쓰여 있다고 했다. 신라 금관 하나의 주인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다. 문제는 '이사지'라는 왕 이름이 어느 고대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라 최고 지배자가 '왕'이라는 호칭을 쓴 것은 22대 지증왕 때부터라고 알려져 왔다. 한쪽에선 '이사지'가 지증왕 직전 소지왕을 가리킨다는 얘기가 나왔다. 다른 쪽에선 최고 지배자는 아니지만 왕이라 불린 귀족일 가능성도 말한다.

▶'이사지왕'이라고 새겨진 칼은 1945년 국립박물관이 총독부 박물관으로부터 돌려받은 유물 4만여점 중 하나다. 당시 유물을 받아 간수한 이가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이다. 지금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아버지다. 60여년 전 아버지 때 알 수 없던 금관총의 비밀이 그의 딸이 관장이 돼 풀리기 시작하는 것도 재미있는 인연이다. 박물관 수장고의 녹슨 유물들 속에 또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출처:조선일보

[만물상] 금관총의 주인